‘테스형’의 변명 몰라도 상관없는 이야기 선호성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2021년 12월 31일(금) 12:18

프랑스 신고전주의 화가인 자크 루이 다비드(1748~1825) 작 소크라테스의 죽음(1787년) 독배를 건네받는 소크라테스는 초연하나 지인들은 아주 슬퍼한다. 친구 크리톤은 소크라테스 무릎에 손을 얹고 응시하고, 침대맡 플라톤은 고개를 숙였다. 아내 크산티페가 작별하며 계단을 오른다. 소크라테스는 근육질로 그려졌는데 실제 강건했다. 그림 속 소크라테스는 추남이 아니고 키도 작아 보이지 않는다.

대선 레이스가 한창인 지금 유력 대선 후보자들의 행보가 언론매체를 통해 여기저기서 주목을 받고 있다. 이와 함께 후보 검증에 대한 열망이 높아질수록 후보자들 간 사회 전반에 대한 식견과 인식 수준의 차이는 물론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무지함도 함께 엿볼 수 있어서 보는 재미도 있다.

어떤 후보자를 보자면 분명 대한민국 최상위 학벌 출신에 자신의 분야에서만큼은 나름 최상의 경력도 이어왔음에 불구하고 필자가 보며 느낀 바로는 학교 윤리 시간에 들어본 소피스트의 전형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의 전문 분야에서만 능통할 뿐 인간의 본질적인 내면에 대해선 의문부호가 붙는 유형들. 이런 유형들이 의외로 많다.

문득 테스형이 떠올랐다. 해서 이참엔 그리스 델포이 신전 기둥에 기록된 “네 자신을 알라”는 말로 무지의 자각을 설파하신 테스형에 관한 얘기를 간단히 해보고자 한다. 정확하게는 플라톤 옹이 지으신 《소크라테스의 변명》에 관한 얘기다.

무지의 자각을 부르는 문답법

기원전 399년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법정에 섰고, 재판 결과 처형을 당했다. 그 일을 기술한 플라톤의 저서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법정 변론을 재현한 대화편이다. 내용은 ‘최초 변론’, ‘유죄 선고 후 변론’, ‘사형 선고 후 변론’의 3부로 구성돼 있다.

자신이 무죄라고 주장했던 소크라테스는 법정 변론에서 델포이 신탁을 언급했다. 어느 날 소크라테스의 신봉자가 델포이 신전에서 “소크라테스보다 지혜로운 자는 없다”라는 신탁을 받았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소크라테스는 놀람과 동시에 당혹스러워했다. 그래서 신탁을 반박하고자 당대의 지혜로운 자라고 불리는 소피스트들과 문답을 하며 자신보다 지혜로운 사람을 찾으려 했다. 문답을 해서 지면 신탁을 부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문답을 해본 결과,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들이 자신의 전문 분야에는 능통하지만, 인간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을 모르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난 아무것도 모르지만,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은 안다. 그 점에서 나는 그들보다 뛰어나다”라며 신탁을 받아들였다.

이런 문답은 ‘무지의 자각’을 촉구하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종종 미움을 사게 된다. 모르는 것을 솔직하게 모른다고 자각하게 만든 다음, “그럼 무엇이 진짜일까?”하고 진리를 끌어내는 방식으로, 산파술이라고도 부른다. 이로 인해 소크라테스는 여러 사람의 공분을 샀으며 훗날 그가 법정에 서는 원인 중 하나가 됐다.

훌륭하게 사는 방법

일상생활에서 대부분 사람은 수입이나 재산을 늘리는 일, 평판이나 명예를 얻는 일을 중시한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그런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훌륭함’을 추구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흔히 사람을 ‘훌륭하다’라고 할 때는 돈벌이를 잘하거나 명예가 있다는 뜻이지, ‘영혼이 훌륭하다’라는 뜻을 의미하진 않는다. 즉, 결과의 효율성이 좋을 뿐, 본질적인 마음의 중심이 훌륭하다는 뜻은 아니니깐.

그렇기 때문에 소크라테스는 육체나 물질을 챙기기보단 내면의 ‘영혼’을 돌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혼을 돌보고 훌륭하게 살기 위해서는 돈과 권력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에 소크라테스의 이러한 주장 역시 사람들의 반감을 샀다.

비록 재산과 명예를 잃을 때도 있지만, 진정으로 돌봐야 할 것은, 깊게 고민하며 진리를 추구하는 곳, 즉 ‘훌륭한 영혼’이라는 것이다. 거기서는 쾌락을 얻을 수 있는지 따지지도 않고 선악의 가치만을 중요하게 여기게 된다고 한다. 돌봄이 미치는 영혼이 곧 나 자신이며, 그 훌륭한 본연의 모습이 최고 능력을 발휘하는 상태가 바로 ‘덕(아르테)’이라고 일컬었다.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신념을 바탕으로 여러 사람과 대화를 이어갔지만, 결국 ‘청년들을 타락시키고 나라에서 믿는 신을 믿지 않으며 다른 신령을 신봉했다’는 터무니없는 죄목으로 사형 선고를 받게 된다. 사형 방식은 스스로 독을 삼키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사형을 선고받아도 옥지기에게 뇌물을 주고 외국으로 도망치면 그만이었지만, 소크라테스는 고지식하게 형을 받아들였다. 유죄에 표를 던진 사람들에게 그는 “날 죽여서 ‘음미하는 인생’, 즉 철학에서 해방됐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 자신을 날파리에 빗대며, 아무리 때려잡아도 후대에 또다시 자신과 같은 사자(使者)가 나타날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러한 소크라테스의 사상은 훗날 철학사의 출발점이 됐고,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내가 안다고 믿는 것에 ‘그건 뭘까? 왜일까?’라고 질문을 던짐으로써 지식을 확인할 수 있었고, 모호했던 지식이 더욱 날카롭게 다듬어지면서 사물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었다.

테스형,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