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암 출신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 미쓰비시 상대 손배소 승소 고(故) 이상업 씨 유족 포함 6명에 최대 1억 배상 판결 선호성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
| 2024년 08월 27일(화) 18:00 |
![]() ▲영암 출신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故이상업 씨 [사진=일제강동원시민모임] |
영암군 출신 일제강제동원 피해자의 유족이 일본 전범기업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했다.
광주지방법원 민사11부(유상호 부장판사)는 27일 고(故) 이상업 씨를 포함한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 9명이 미쓰비시 마테리얼(옛 미쓰비시 광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6명에 대해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승소한 원고 중 4명(영암 출신 고 이상업 씨 유족 포함)에게 각각 1억 원을, 나머지 2명에게는 상속분에 해당하는 7,647만 원과 1,666만 원을 배상하라고 명령했다. 다만 3명의 청구는 기각됐다.
판결문에서 재판부는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겪은 고통과 그로 인한 정신적 손해를 인정한다”며 “피고 기업은 강제동원의 불법성을 인지하고도 이를 방조하고 적극 가담한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이번 소송은 2020년 1월 제기됐으나, 소장부본 송달 지연과 피고 측의 잦은 기일변경 요청 등으로 지연돼 4년 7개월 만에 1심 판결이 나왔다.
승소한 영암 출신 이상업 씨는 1943년, 15세의 나이로 강제 징용돼 일본 후쿠오카현 가미야마다(上山田) 탄광으로 끌려갔다. 그는 약 2년간 지하 1,000m 갱도에서 석탄 채굴과 운반 등 중노동에 시달렸고, 이로 인해 심폐질환을 얻었다.
![]() ▲ 故이상업 씨가 살아생전 일제강제동원 기억을 남긴 스케치. [사진=일제강동원시민모임] |
1945년 해방 후 고향으로 돌아온 이 씨는 ‘사지를 넘어 귀향까지’라는 회고록을 통해 당시의 참상을 기록했다. “탄광은 지옥이었다”라는 그의 증언은 강제동원의 실상을 생생히 전했다. 이 책은 후에 일본어로도 번역돼 양국에서 역사적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2017년 90세로 별세한 이 씨의 유족들은 “역사적 진실 규명과 정의 실현”을 위해 소송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국언 이사장은 “이번 판결은 미쓰비시 광업에 대한 사법적 단죄로, 역사적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이어 “아직 해결되지 않은 다른 피해자들의 보상 문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광주지방법원에는 미쓰비시를 상대로 한 유사 소송 14건이 계류 중이다. 이 중 6건은 항소심, 8건은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선호성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