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최초’ 국립공원박람회의 허상…8억 혈세 투입 영암군 ‘준비 미흡’ 논란
선호성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2024년 10월 26일(토) 10:01

전국 23개 국립공원 중 처음으로 시도되는 ‘2024 월출산국립공원박람회’가 준비 과정에서부터 심각한 문제점들이 드러나고 있다. 7억 8천 300만 원의 예산을 전액 군비로 투입해 오는 11월 초 사흘간 개최되는 이번 박람회는 행사 정체성부터 추진체계, 인프라, 재정 문제까지 곳곳에서 구조적 결함이 확인됐다.

본말이 전도된 국립공원 박람회…4km 떨어진 운동장이 주무대

이번 박람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국립공원 박람회’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정작 행사는 월출산국립공원과 동떨어진 곳에서 진행된다는 점이다. ‘월출산, 달빛 넘나들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박람회는 월출산국립공원 천황사지구가 아닌 4km나 떨어진 영암군종합운동장이 주무대다.

특히 주요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국립공원 박람회보다는 일반적인 지역축제에 가깝다. 개막식의 ‘에코 음악회’, 행사 기간 내내 이어지는 4차례의 ‘푸른 음악회’, 폐막식의 ‘포레스트 뮤직 콘서트’, ‘달빛뮤직 페스티벌’ 등 대중가수들의 음악공연이 행사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국립공원 홍보·체험관과 23개 국립공원 체험부스, 국제학술세미나 등이 준비되어 있지만, 이마저도 실제 국립공원과 동떨어진 장소에서 진행된다는 점에서 현장성과 교육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국립공원의 환경적, 생태적 가치를 직접 체험하고 이해하는 프로그램은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전문성 결여된 추진조직…전국 단위 행사 맡기에는 역부족

행사 준비를 위한 전문 조직과 인력 구성도 심각한 문제로 지적된다. “국립공원 23곳 중에서 우리가 처음으로 박람회를 개최하는데, 과연 준비는 제대로 되고 있습니까?” 영암군의회에서 제기된 이 질문은 현재 박람회 준비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전국 단위 행사를 앞두고 영암군은 당초 영암문화재단을 통해 박람회를 준비하려 했다. 그러나 “행정이 할 일을 재단에 넘기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군의회의 제동이 걸리면서 준비 조직 구성부터 차질을 빚었다. 결국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조직위원회 구성은 무산됐고, 급조된 자문위원회는 실효성마저 의문시되는 상황이다.

현재 자문위원회는 10명으로 구성됐으나, 이 중 4명이 영암문화재단과 월출산국립공원사무소 직원들이며, 나머지도 박람회와의 연관성이 낮은 인사들로 채워졌다. 더욱 심각한 것은 실무 추진단인 TF팀의 구성이다. 팀장 1명이 모든 실무를 전담하는 구조로, 전국 규모 행사의 기획과 운영을 담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인력이다.

기반시설 전무한 채 강행…주변 지자체에 ‘퍼주기’ 우려

“월출산 관광객들이 강진으로 다 빠져나가고 있다. 우리 지역에는 쓰레기만 남기고 가는 실정이다.” 영암군의회에서 제기된 이 지적은 현재 영암군의 관광 인프라 실태를 여실히 보여준다.

특히 7억 8천 300만 원의 박람회 예산에는 기반시설 정비 예산이 전무하다. 숙박시설과 음식점 등 기본적인 관광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에서 시설 보완 없이 행사 운영비용만 책정된 것이다. 주차공간 부족으로 행사장을 공설운동장과 천황사 주차장으로 분산 개최하기로 한 것은 이러한 현실을 방증한다.

현재 주변 강진군에 비해 관광 인프라가 현저히 부족한 상황에서, 박람회로 인한 경제적 효과마저 인근 지자체로 유출될 가능성이 크다. “행사 준비가 미흡한 상태에서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는 박람회가 혈세만 낭비하지 않을까 우려된다”는 지역사회의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위태로운 재정구조…“세수는 줄고 축제는 늘고”

재정 운용의 위험성은 더욱 심각한 수준이다. 7억 8천300만 원에 달하는 이번 박람회 예산은 국·도비 지원 없이 전액 군비로 충당된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영암군은 전남지역 지자체 중 유일하게 세입 감소나 재난·재해 발생 등 재정 위기 상황에 대비한 ‘통합재정안정화기금’조차 조성하지 않은 것으로 지적받았다.

특히 영암군은 이미 왕인문화축제, 국화축제 등 상당한 예산이 투입되는 지역축제들을 운영하고 있다. “요즘 농촌에선 한창 바쁜 농사철인데 무슨 축제행사가 그리 많은지 헷갈릴 정도”라는 한 주민의 지적처럼, 새로운 대형 행사의 추진은 재정적 부담은 물론 행정력 분산이라는 이중고를 초래할 수 있다.

더욱이 지방재정법 개정으로 지자체 주요재정사업 심사가 의무화(2024년 6월)되는 상황에서, 이처럼 무리한 재정 투입은 향후 군 재정운영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관광 인프라 확충도 없이 단발성 행사에만 예산을 쏟아붓는다면 ‘전국 최초’라는 타이틀만 좇다가 자칫 ‘전국 최초의 실패한 국립공원 박람회’라는 오명을 남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준비 부실이 핵심 문제…“정체성 확립, 단계적 접근 필요”

전국 최초라는 수식어에 급급해 무리하게 추진되는 국립공원 박람회의 준비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들은 결코 가볍지 않다. 국립공원 박람회라는 타이틀에 걸맞지 않은 행사 내용과 장소 선정, 전문성이 결여된 추진 조직, 기반시설 부재, 재정 건전성 우려까지. 각각의 문제들은 개별적으로도 심각하지만, 이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경우 행사의 성공적 개최는 물론 지역사회에도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준비 과정에서 드러난 이러한 문제점들은 단순히 보완이나 개선으로 해결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다. 국립공원 박람회라는 이름에 걸맞은 행사의 정체성 확립과 내실있는 준비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지역사회의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선호성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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