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같은 벼를 길거리에 내놓은 날
선호성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2024년 11월 07일(목) 10:45

영암 농민들이 군청과 농협 앞에 나락을 쌓았다. 비가 올지 눈이 올지 모르는 날씨에 ‘자식 같은 벼’를 내다 놓는 심정이 어떠했을까. “이렇게라도 해야 우리 목소리를 들어줄 것 같아서”라는 말에서 절박함이 묻어난다.

정부는 얼마 전 ‘농가소득 5000만원 시대’를 자화자찬했다. 하지만 이는 농업 외 소득과 이전소득을 모두 합친 숫자다. 실제 농사로 버는 순수 농업소득은 2인 가구 기준 연 1,114만 원에 불과하다. 더구나 1인 농가(전체의 22.6%)는 아예 통계에서 제외됐다. 영암 농민들의 시위는 이런 허황된 통계가 가린 농촌의 처절한 현실을 보여준다.

올해 영암 농민들은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수확량이 20% 가까이 줄었고, 품질도 떨어졌다. 설상가상으로 40kg당 벼 시세는 5만 2,000원으로 생산비(5만 3,000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25년 전인 1999년 쌀 한 가마(80kg) 가격이 19만 원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농민들의 분노는 당연하다. 모든 물가는 치솟는데 쌀값만 제자리걸음인 셈이다.

문제는 정부와 지자체, 농협 모두 이런 농민들의 절규를 외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시장격리나 재배면적 조정 같은 임시방편만 내놓을 뿐, 수입쌀의 무분별한 식용 전환 같은 근본 문제는 손도 대지 않는다. 영암군은 “고민 중”이라는 답변만 반복하며 축제에 예산을 쏟아붓고, 농협은 ‘볏값 7만원’ 공약은커녕 최소한의 우선지급금 인상조차 거부한다.

일본은 수입쌀의 74%를 비식용으로 돌리도록 법으로 정했다. 자국 농업을 지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반면 우리는 수입쌀의 94%를 식용으로 풀어 자국 쌀 소비처를 잠식하고 있다. 농가부채는 4000만 원을 넘어섰고, 농업 R&D 예산마저 삭감되는 실정이다.

영암 농민들은 일주일의 시한을 정했다. 그 이후엔 “더 강력한 투쟁”을 예고했다. 이제 공은 정부와 지자체, 농협으로 넘어갔다. 허울뿐인 통계 자랑보다 농민의 절규에 귀 기울여야 할 때다. 쌀값 문제는 단순한 농가소득의 문제가 아니다. 식량 주권과 농업의 미래가 걸린 문제다. 농정이 실종된 자리에서 농민들의 한숨만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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