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은 왜 호남 최고의 향약 보물창고가 되었나

영암 지역사 대기획 - 시간의 흐름 속 영암 ③

선호성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2025년 02월 14일(금) 13:36
▲ 영암 구림대동계


영암열린신문은 지난해 11월 21일 영암 한국트로트가요센터에서 개최된 ‘영암 지역사 연구의 현황과 과제’ 학술대회의 연구 성과를 5회에 걸쳐 연재하고자 한다.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이어지는 영암의 역사를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하는 이번 기획은, 청동기시대 고인돌과 영산강 유역의 선사문화, 고려·조선시대 도갑사의 역사와 위상, 조선시대 향약 자료의 특징, 일제강점기 영보정 사건의 실체, 해방 이후 영암 지역사회의 변화상까지 아우른다.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영암의 역사적 사실들을 각 분야 전문가들의 연구 성과를 통해 새롭게 살펴봄으로써, 영암의 정체성을 재확인하고 미래 발전의 방향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 1,357기의 고인돌이 말하는 영암의 선사시대
② 국가가 주목한 영암 도갑사, 그 천년의 기록
③ 영암은 왜 호남 최고의 향약 보물창고가 되었나
④ 일제강점기 영보정 사건의 진실
⑤ 해방 이후 영암의 상처와 성장

향약, 400년 전 영암의 자치규약을 만나다

조선시대 향촌사회의 자치규범이었던 향약(鄕約)이 영암 지역에서 독특한 발전을 이뤄온 것으로 확인됐다. 향약은 도덕적 질서 확립과 미풍양속 진작, 상부상조를 위한 규약으로, 향규(鄕規), 일향약속(一鄕約束), 향약계(鄕約契)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렸다.

향약 자료는 규약을 적은 책자와 회원 명단인 좌목(座目), 운영 내역이 담긴 강신안(講信案) 등 세 가지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 영보정 계헌(契憲), 구림대동계 좌목, 망호정 강신안 등이 대표적이다.

영암에 다수의 향약 자료가 남아있는 배경에는 이 지역의 풍부한 농업 기반이 자리잡고 있다. 넓은 농토를 바탕으로 각종 계(契)가 성행했으며, 일부는 3~400년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특히 영암은 호남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향약 기록들이 다수 보존된 지역으로, 조선시대부터 체계적인 자치문화가 발달했음을 보여준다.


영암의 대표적인 향약들을 살펴보다

현존하는 영암의 가장 오래된 향약 기록은 1649년에 작성된 영보정(永保亭) 계헌(契憲)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1550년경 연촌(烟村) 최덕지(崔德之)의 내외손들이 만든 목족계(睦族契)를 정유재란 이후 다시 정리한 것이다.

영보정 계헌에는 마을 공동체의 자치규범으로서 네 가지 핵심 조항이 담겨있다. 상을 당했을 때 서로 돕는 ‘부상조(賻喪條)’, 계원 가입과 운영을 다룬 ‘입약조(立約條)’, 공동 기금 운영 방식을 규정한 ‘곡물취리조(穀物取利條)’, 풍속 교화를 위한 ‘정풍속조(正風俗條)’가 그것이다.

동족마을의 결속을 보여주는 사례로는 망호정(望湖亭) 향약이 주목된다. 1680년경 경주이씨(慶州李氏) 이주남(李注南)이 정자를 짓고 마을을 형성한 후, 1785년에는 동상계(東床契)가 설립됐다. 이후 1860년에는 신분과 관계없이 모든 마을주민이 참여하는 대동계(大同契)로 발전했으며, 1935년에는 앙모계(仰慕契)까지 만들어져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 영보정


구림 대동계, 호남 명촌의 자치전통을 보다

호남의 대표적 명촌(名村)인 구림의 대동계(大同契)가 가장 체계적인 향약 자료를 보존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1560년대에 시작된 구림의 동계(洞契)는 정유재란으로 한때 자료가 소실됐으나, 1609년 중수 이후의 기록이 상세하게 전해지고 있다.

구림 대동계의 가장 큰 특징은 두 가지 원칙에서 찾을 수 있다. 거주 범위를 20리 이내로 한정했다는 점과 신분의 구별 없이 상하층이 함께 참여하는 대동(大同)의 정신을 유지했다는 점이다.

장암정(場巖亭) 대동계는 1667년 남평문씨(南平文氏) 집성촌에서 시작돼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300여 년간 35종의 문서를 남겼다. 한편 1797년에 설립된 열무정(閱武亭) 사포계(射圃契)는 무예 진작을 목적으로 한 특수 향약으로, 현존하는 17점의 문서를 통해 조선후기 향약의 다양한 발전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 장암정


영암 향약만의 독특한 특징

영암 향약의 가장 큰 특징은 동족마을별로 독자적인 향약 문화가 발달했다는 점이다. 덕진면 영보리의 전주최씨·거창신씨, 신북면 모산리의 문화유씨, 군서면 구림리의 영암최씨·해주최씨·함양박씨, 영암면 장암리의 남평문씨 등 각 동족마을이 자신들만의 특색 있는 향약을 만들어 운영했다.

또 다른 특징은 ‘상하합계(上下合契)’ 형태를 취했다는 점이다. 양반 가문이 중심이 되어 향약을 시작했지만, 실제 운영에서는 신분의 구별 없이 마을 전체가 참여했다. 이는 구림대동계 문서에서 양반부터 평민까지 다양한 계층의 이름이 함께 등장하는 것을 통해 확인된다.

이러한 포용적인 운영 방식은 영암 향약이 단순한 신분질서 유지를 넘어 실질적인 마을 자치의 도구로 기능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망호정 향약은 현재까지도 매년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 복달임과 같은 전통행사와 현대적 의미의 마을 자치활동을 함께 이어가고 있다.

▲ 망호정


영암 향약의 현재적 의미와 과제

영암의 향약 자료가 단순한 역사적 기록을 넘어 현대 지역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특히 자치의 전통, 공동체 정신, 기록 문화 등 세 가지 측면에서 의미를 찾고 있다.

400여 년 전부터 주민들이 스스로 마을의 규약을 만들고 실천해 온 자치의 전통과, 상하계층이 함께 참여하는 민주적 운영 방식이 주목받고 있다. 또한 마을의 대소사를 함께 해결하는 협력 체계를 통해 구현된 공동체 정신도 현대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분석이다.

현재 영암의 주요 향약 자료들은 합경재(合敬齋), 대동계사(大同契舍), 하정웅미술관 등에 분산 보관돼 있다. 보존 상태는 비교적 양호하나 전문 보관시설 확충과 디지털화 작업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됐다.

전문가들은 “호남에서 가장 오래되고 풍부한 자치문화의 기록인 영암의 향약 자료는 체계적 보존관리와 함께 현대적 활용 방안 모색이 필요하다”며 “마을 공동체 활성화의 모델로서 향약의 정신을 되살리고, 지역의 정체성 확립에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이 기사는 지난 2024년 11월 21일 영암 한국트로트가요센터에서 개최된 ‘영암 지역사 연구의 현황과 과제’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권수용(한국학호남진흥원) 교수의 ‘영암지역 향약자료와 그 특징’ 발표 논문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선호성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이 기사는 영암열린신문 홈페이지(www.openmedia.co.kr)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URL : http://www.www.openmedia.co.kr/article.php?aid=3114380026
프린트 시간 : 2026년 09월 29일 17:46: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