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해보험 간부도 몰랐던 ‘낙과 보상’…농가들만 당했다 “나무에 달린 것만 보상” 매뉴얼 지침에 피해 조사 왜곡 선호성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
| 2025년 02월 21일(금) 12:30 |
![]() ▲ 일소 피해로 낙과된 대봉감. 농민들은 20년간 요구해온 ‘일소피해 낙과 보상’이 2017년부터 이미 보험약관에 포함돼 있었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게 됐다. [사진=영암농민tv유튜브] |
“허공에 주먹질만 해왔다는 게 분통이 터집니다”
지난 19일 전화 통화에서 정철 금정대봉감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의 목소리는 떨렸다. 2월 초 영하의 한파 속에서 농작물재해보험 가입 거부 투쟁을 벌였던 영암 떫은감 농민들이 뒤늦게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농민들이 20년 넘게 요구해 온 ‘일소피해로 인한 낙과 보상’이 이미 2017년부터 보험약관에 포함돼 있었다는 사실이 지난 13일 농업정책보험금융원(이하 농금원)과의 면담 과정에서 밝혀진 것이다.
“보험 조사관들이 ‘나무에 달린 과실만 인정한다’며 바닥에 떨어진 건 일절 세어주지 않았습니다. 매년 여름 일소피해로 감이 떨어져도 보상을 못 받았죠”
떫은감은 일소 피해(강한 햇볕에 과일이 데는 현상)를 입으면 2~3일 이내에 낙과되고, 이후 3일 안에 부패하는 특성이 있다. 특히 떫은감 특유의 ‘탄닌’ 성분이 일소 피해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과학적 근거도 있다. 하지만 보험 조사관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피해 흔적을 확인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문제의 심각성은 NH농협손해보험 전남총국장조차 이 약관의 존재를 몰랐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정 위원장은 “농금원과 면담하는 자리에서 총국장도 ‘낙과는 인정 안 해준다’고 얘기했다가 약관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정 위원장의 증언에 따르면, NH농협손해보험 본사는 보험 피해 신고가 들어올 때마다 손해평가사들을 모아놓고 사전 교육을 실시한다. 이 과정에서 약관과 다른 ‘나무에 달린 과실만 인정’이라는 매뉴얼이 하달됐다는 것이다. 심지어 전남총국장조차 이를 몰랐다는 점은 이러한 왜곡된 지침이 본사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운영됐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 ▲ 지난 3일 금정면 금정농협 앞에서 금정대봉감대책위원회 회원들이 농작물재해보험 가입 거부 집회를 열었다. |
농작물재해보험의 손해평가를 맡는 법인은 전국에 2~3개뿐이다. 이들은 3년마다 입찰을 통해 선정되며, 보험사의 매뉴얼과 교육에 따라 현장 조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농금원은 “손해평가 매뉴얼상 나무에 매달린 과실만 인정하라는 규정은 전혀 없다”고 밝혔지만, 현장에서는 수년간 이와 다르게 운영돼 왔다.
실제 피해 규모는 심각하다. 작년 금정농협 가입 농가들의 일소 피해 보상액은 약 20억 원으로 산정됐다. 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현행 보험은 전체 피해액의 20%를 농민이 의무적으로 부담하는 ‘자기부담금’ 규정을 두고 있다. 이 기준을 채우지 못한 농가들은 실제 피해를 봐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정 위원장은 “전체 농가의 약 3분의 1은 피해가 있어도 보상을 전혀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순한 농민들이나 외지에 사는 분들이 가장 큰 피해를 봤습니다. 현장에서 조사관들과 싸워야 보상을 받을 수 있었거든요. 말 꽤나 하고 악대가리를 써야 겨우 보험금을 받았죠”
특히 최근 3~4년 사이 일소 피해는 급격히 증가했다. 작년 8~9월에는 35℃ 이상의 폭염이 42일간 지속됐고, 강수량은 121mm로 최근 3년 평균(290mm)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결국 영암군 대봉감 재배면적 809.5ha 중 250ha 이상(31%)이 피해를 입었다. 실제 농가별로 20~30%에 달하는 일소 피해가 발생했지만, 보험 조사 시점에는 대부분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정 위원장은 “누가 왜 이런 왜곡된 매뉴얼을 만들었는지, 약관에 있는 내용을 왜 숨겼는지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정대봉감대책위원회는 2월 말까지 책임소재 규명을 기다린 후, 결과가 없을 경우 서삼석 국회의원을 통해 국회 차원의 조사를 추진할 계획이다. 또한 과거 피해에 대한 소급 적용도 요구할 방침이다.
선호성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