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롭힘에 목숨 끊은 네팔 청년…농장주 검찰 송치

근로계약서 강제 수정 ‘강요’ 혐의…노동부, 21명 대상 폭행·폭언 조사
인권단체 “피해자 30여명 확인”…당국 초기대응 미흡·신고 묵살 논란도

선호성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2025년 04월 11일(금) 13:58
▲ 전남노동자인권네트워크와 이주노동자노동조합 등 23개 단체가 지난 8일 전남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영암 돼지농장 네팔 이주노동자 사망사건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본지가 지난 2월 28일 보도한 영암 돼지농장 네팔 이주노동자 사망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영암경찰서는 9일 해당 농장 사업주 A씨(40대)를 근로계약서 강제 수정 등 강요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송치했다고 밝혔다. 사망한 네팔 노동자 뚤시 푼 머거르(27)씨에게 불리한 내용으로 계약서를 수정하도록 강요한 혐의가 인정된 것이다.

경찰은 당초 폭행 혐의도 함께 수사했으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폭행 혐의가 일반 형법상 폭행보다 더 중하게 다뤄진다는 이유로 고용노동부 목포지청에 이관했다. 현재 노동부는 이 농장에서 일했던 21명의 전·현직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폭언, 폭행 여부 등을 조사하고 있다.


CCTV 없는 곳으로 데려가 폭행…본국 강제 귀국 협박도

사망 사건이 알려진 후 인권단체들은 해당 농장에서 일했던 이주노동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추가 고발에 나섰다. 전남이주노동자인권네트워크와 이주노동자노동조합 등 23개 단체는 지난 8일 전남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A씨를 강요·모욕죄·근로기준법 위반(폭행 및 협박) 혐의로 추가 고발했다.

인권단체들에 따르면 A씨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일하다 잠깐 앉았다”, “말하고 있는데 웃었다”는 등의 이유로 수시로 폭행을 가했으며, 일부러 CCTV가 없는 곳으로 데려가 폭행하기도 했다. 또한 “한국 경찰이 너희 편을 들까?”, “너를 네팔로 보내버리겠다”, “재판해서 감옥에 보내버리겠다”는 등의 협박도 일삼았다고 한다.

한 피해 노동자는 “목을 잡고 때리고, 본국으로 강제 송환하겠다는 협박을 받았다”고 증언했으며, 또 다른 노동자는 “이마를 농장주의 발에 대고 ‘제가 잘못했어요. 죄송하다’고 사과하도록 강요받았다”고 밝혔다.

인권단체들은 “지금까지 파악한 피해 이주노동자가 30여 명에 달한다”며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해당 농장을 ‘감옥’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 네팔 이주노동자 뚤시 푼 머거르씨가 사망한 영암 돼지농장 전경.


당국 초기대응 미흡 논란…“신고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이번 사건과 관련해 경찰과 노동당국의 초기 대응 미흡 논란도 불거졌다. 한 지역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한 네팔 노동자는 지난해 10월 이미 폭행을 당해 정신을 잃은 후 영암의 한 파출소를 찾아 진술서까지 작성했으나, 경찰은 “다음에 또 맞으면 오라”며 신고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올해 2월에는 다른 노동자가 고용노동부 목포지청을 방문해 폭행 피해를 알렸으나, “1건으로는 접수가 안 된다”는 답변을 받았다는 증언도 나왔다. 당시 노동청 직원이 확인차 업체에 전화하자 사업주가 혐의를 부인했고, 오히려 노동자들에게 “고용노동부, 한국 경찰이 너희 편 들까?”라며 더욱 위협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경찰은 해당 노동자가 신고를 철회하겠다고 해 돌려보냈다고 해명했으며, 노동당국은 사업장 변경을 노린 허위 신고도 많아 모든 민원을 일일이 살피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같은 해명에 대해 인권단체들은 “이주노동자들의 신고가 제대로 처리되지 않는 구조적 문제”라며 “특히 언어 장벽이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신고를 더 적극적으로 접수하고 조사했어야 한다”고 반박했다.

인권단체 관계자는 “당국이 위험 징후를 포착하고 진작 수사에 나섰더라면 뚤시 씨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초기대응 미흡 논란 속 수사 계속…사업주 혐의 부인

경찰 수사와 노동부 조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A씨는 동료들 간의 불화 때문에 고인이 힘들어했던 것이라며 폭행 등의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인권단체들은 “숙소와 사무실, 현장에 대한 CCTV 조사를 통해 증거가 훼손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A씨에 대한 구속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이주노조 관계자는 “이주노동자라는 이유로 폭력을 견디고 참아야 하는 현실이 반복되어선 안 된다”며 경찰과 노동부의 신속하고 강도 높은 조사를 요구했다.

한편, 인권단체들은 오는 16일 전남도의회에서 ‘전남 이주노동자 정책 제도개선 토론회’를 개최해 이주노동자 정책을 점검하고 제도개선 방향을 모색할 예정이다.


지역사회의 역할과 과제

이번 사건은 영암지역을 넘어 전남지역 이주노동자들의 근로환경과 인권 상황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고 있다. 특히 축산업과 농업 분야에서 이주노동자들의 의존도가 높은 영암군의 경우, 이들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과 관리 시스템이 미흡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암군 내 이주노동자는 약 2,000여 명으로 추산되며, 이들 대부분이 농·축산업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을 지원하는 공식 기관이나 지원 프로그램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이번 사건을 통해 드러난 같은 국적 관리자를 통한 이주노동자 통제 시스템의 문제점과 이주노동자 인권보호를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특히 지역사회와 지자체 차원에서 이주노동자 상담 창구 확대, 정기적인 근로환경 모니터링, 그리고 긴급 상황 발생 시 신속한 대응 체계 구축 등 실질적인 보호망 마련이 요구된다.
선호성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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