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전 약속은 헌신짝 꼴?…군 “공용주차장 쓰면 되잖아”

2012년 궁도장 부지 제공하며 주차장 사용권 보장
반다비 체육센터 건립하며 사전 협의 없이 일방 철거
설계변경 불가 통보 후 ‘알아서 하라’는 무책임 대응
13년 사용 묵인하고도 ‘통행권일 뿐’ 축소해석 논란도

선호성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2025년 07월 04일(금) 14:59
▲ 김씨의 컨벤션 건물로 연결되던 계단 모습. 현재 반다비 체육센터 건립 공사로 인해 펜스가 설치되어 있으며, 13년간 사용해온 주차장이 철거된 상태다.

영암군이 13년 전 군민과 맺은 주차장 사용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해 논란이 일고 있다. 군 발전을 위해 토지를 제공한 대가로 보장받았던 사업장 전용 주차장이 반다비 체육센터 건립을 이유로 사전 협의 없이 철거됐다. 약속의 존재조차 몰랐다가, 확인 후에도 “공용주차장 쓰면 된다”는 안일한 대안만 제시한 영암군의 행정편의주의적 대응이 군민과의 신뢰를 무너뜨렸다는 지적이다.


단체 고객 많은 컨벤션…“주차장은 생명줄”

영암읍에서 ‘ㄱ’컨벤션을 운영하는 김연자 씨(60대)는 결혼피로연장, 펜션, 식당을 함께 운영하는 복합시설 사업자다. 단체 고객이 주를 이루는 사업 특성상 안정적인 주차공간 확보는 필수다.

김 씨는 원래 건물 뒤편 자신의 토지를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던 2011년 10월, 영암군이 궁도장 건립을 추진하면서 해당 토지가 필요하다며 매입을 요청했다.

“주차장이 없으면 누가 건물을 사겠습니까?” 김 씨가 우려를 표하자, 당시 김일태 군수는 직접 현장을 방문해 “여기 주차장 다 쓰고 계단도 연결해 줄게”라고 약속했다고 한다.


문서로 남긴 약속…13년간 아무 문제없이 사용

김 씨는 영암군 발전을 위해 429㎡(약 130평)의 토지를 공시지가로 제공했다. 대신 영암군은 232㎡의 토지와 교환차액 4,037만 원을 지급했고, 김 씨는 양도세 500만 원을 부담했다.

중요한 것은 영암군이 작성한 ‘토지협의승낙서’다. 이 문서에는 “체육시설 주차장과 귀하의 소유토지로 연결하는 계단을 설치하여 통행이 가능하도록 한다”는 조건이 명시됐다. 또한 토지교환계약서 제6조에는 “이 계약조항에 대하여 이의가 있을 때는 갑과 을이 합의 결정한다”고 적혀있다.

이후 13년간 김 씨는 약속대로 조성된 주차장을 아무런 문제없이 사용해 왔다. 영암군도 그동안 어떤 이의제기도 하지 않았다.

▲ 2012년 영암군이 작성한 토지협의승낙서와 토지교환계약서. 문서에는 ‘체육시설 주차장과 귀하의 소유토지로 연결하는 계단을 설치하여 통행이 가능하도록 한다’는 조건이 명시되어 있다.


지난 4월, 사전통보 없이 주차장 철거 시작

문제는 지난 4월 시작됐다. 영암군이 해당 부지에 반다비 체육센터를 건립하면서 주차장을 철거하기 시작한 것이다. 김 씨는 어떤 사전 통보도 받지 못했다.

5월 8일 이명돈 공영개발단장을 찾아간 김 씨는 토지협의승낙서를 제시하며 문제를 제기했다. 놀랍게도 영암군은 13년 전 약속의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처음엔 자기들도 서류가 없다고 했어요. 내가 토지협의승낙서를 보여주니 그제야 인정했죠.” 김 씨의 증언이다.

약속을 확인한 후에도 영암군의 대응은 미온적이었다. 김태홍 현 공공건축팀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사전에 알았으면 미리 민원인께 공사를 한다고 얘기했을 텐데, 이 내용을 사업 시행 부서에서도 몰랐다”고 인정했다.


“공용주차장 쓰면 되잖아”

영암군도 처음부터 무시한 것은 아니었다. 5월 중순까지는 “검토하겠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BF(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인증 문제로 설계 변경이 불가능해지자,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 건물 건너편 공설운동장 공용주차장이었다.

김태홍 공공건축팀장은 “맞은편에 가까운 주차장이 있으니, 그쪽을 원하는 방향으로 조율해 드리겠다고 했는데, 조율이 안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사업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제안이었다. 13년간 사용해 온 사실상의 전용 주차장과 운동장 이용객들과 공유해야 하는 공용주차장을 같은 조건으로 본 것이다.

김 씨가 13년간 사용해 온 것은 계단으로 연결돼 언제든 이용 가능했던 사실상의 전용 주차장이었다. 이를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공용주차장으로 대체하겠다는 제안은 애초 약속과는 전혀 다른 조건이었다. 특히 컨벤션 사업을 하는 김 씨 측 입장에서 전용 주차장 확보 문제는 사업 운영에 중요한 사항이었다.

이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영암군의 태도는 달라졌다고 한다. 김 씨에 따르면 “일방적으로 약속을 파기했으니 내 땅을 돌려달라”는 요구에는 “못 돌려준다”, 그럼 “손해배상을 해 달라”는 요구에는 “왜 해줘야 하냐”는 식이었다고 한다.

다만, 김태홍 팀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피해보상 관련해서 얘기를 하신 건 없다”고 말해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기도 했다.

▲ 영암군이 김연자씨에게 제시했던 반다비 체육센터 설계도면. 군은 BF(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인증 문제로 설계변경이 불가능하다며 공용주차장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법적 쟁점도 제기…“신뢰보호원칙 위반”

이번 사안은 여러 법적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먼저 행정법상 신뢰보호원칙 위반 소지가 있다. 영암군은 정식 문서로 주차장 사용을 약속했고, 13년간 이를 묵인해왔다. 김 씨는 이 약속을 믿고 토지를 제공했으며, 주차장을 기반으로 사업을 운영해 왔다. 이렇게 장기간 형성된 신뢰관계를 영암군이 일방적으로 파기한 것이다.

절차적으로도 문제가 제기된다. 영암군은 단순한 공사로 인식했을지 모르나, 13년간 유지된 주차장을 철거한 것은 사실상 김 씨의 주차장 이용권을 박탈하는 처분이다. 이에 대한 사전통지나 의견청취 없이 진행됐다. 대법원은 “침해적 행정처분을 함에 있어 당사자에게 사전통지나 의견제출 기회를 주지 않은 경우 위법하다”고 판시한 바 있다(2003두9770).

영암군의 계약 해석을 둘러싼 논란도 있다. 영암군은 토지협의승낙서를 단순한 ‘통행권’ 보장으로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문서에는 ‘주차장 조성 및 통행 보장’이라고 명시돼 있고, 실제로 13년간 주차장으로 사용되어 왔다. 이런 상황에서 ‘통행권일 뿐’이라는 영암군의 주장에 대해 김 씨 측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다음엔 누가 군에 협조하겠나”

김 씨는 40년간 사업하면서 이렇게 무시당한 건 처음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영암군수 앞으로 내용증명을 발송하고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이다.

“메타세쿼이아는 보상까지 해주면서, 13년 된 약속은 헌신짝 취급입니까? 영암군 발전을 위해 손해 감수하고 협조했는데, 앞으로 누가 군에 협조하겠습니까?”

이번 사태에서 영암군은 13년 전 약속의 존재를 파악하지 못했고, 확인 후에도 실질적 해결보다는 ‘공용주차장이 있다’는 형식적 대안만 제시했다.

‘전용’과 ‘공용’의 차이를 무시한 채 ‘주차장이 있으니 됐다’는 식의 대응은 전형적인 행정편의주의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 씨의 사례는 향후 영암군이 추진할 각종 사업에서 군민 협조를 끌어낼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남기는 대목이다.
선호성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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