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군 폐지 어르신 10명→18명…노인 빈곤 ‘적신호’

3년 새 8명↑…‘마지막 생계수단’ 택한 노인들 증가
체면보다 생존…그마저도 자녀 몰래 숨어서 하는 처지
가시화된 빈곤은 빙산의 일각…숨은 빈곤층 더 많아

선호성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2025년 07월 25일(금) 11:01

영암군에서 폐지를 수집하는 어르신이 3년 만에 10명에서 18명으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단순히 숫자가 늘었다는 문제가 아니다. 폐지 수집은 노인 빈곤의 가장 절박한 생계수단이자 가시적인 형태로, 체면과 자존심마저 내려놓을 만큼 막다른 상황에 내몰린 어르신들의 최후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영암군이 18일 배포한 자료에 따르면, 폐지 수집 어르신은 2023년 10명에서 2024년 14명, 2025년 18명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특히 올해 조사된 18명 중 절반인 9명이 ‘생계유지’를 위해 폐지를 줍는 것으로 파악됐다.


“소일거리라고 해도 결국은…”숨겨진 빈곤의 실체

영암군 조사에서 18명 중 9명은 ‘소일거리’ 목적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영암군 주민복지과 서선미 주무관의 설명을 들어보면 실상은 다르다. “어르신들이라 기본적으로 기초연금만으로 생활하시니까 거의 비슷비슷하다”는 그의 말처럼, 생계형이든 소일거리형이든 경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소일거리’라는 표현 뒤에는 체면을 중시하는 노인 세대의 현실이 숨어있었다. “날씨도 덥고 위험하다고 자녀들이 반대해서 몰래 하시는 분들도 계신다”는 증언처럼, 일부는 가족에게조차 자신의 어려움을 숨기고 있었다. 폐지를 줍는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최후의 생계활동인데, 그마저도 ‘소일거리’라고 포장해야 하는 현실이 노인 빈곤의 심각성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서 주무관은 “18명 모두 읍면 직원들이 방문해 욕구조사를 실시했다”며 “소득 기준에 맞춰 지원할 수 있는 부분들은 다 지원했다”고 밝혔다. 결국 목적과 상관없이 모두가 지원 대상이었다는 것은, 폐지를 줍는 행위 자체가 곧 복지의 손길이 필요한 신호였음을 의미한다.


21건 맞춤형 지원…그러나 3~4명은 거부

영암군은 전수조사를 통해 ▲경제 지원 8건 ▲정서·건강·돌봄 지원 6건 ▲주거개선 2건 등의 복지 욕구를 파악하고, 총 21건의 맞춤형 지원을 실시했다. 구체적으로는 기초수급 신청 1건, 긴급복지 4건, 주거개선 6건, 냉·난방비 지원 6건, 노인일자리 연계 3건, 마음치유 프로그램 1건이다.

하지만 이런 지원에도 불구하고 18명 중 3~4명은 지원 자체를 거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 주무관은 “관심받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고, 방문 자체를 꺼려하시는 분들도 계셨다”며 “처음에는 마음 열기가 힘드신데, 막상 지원해 드리면 고맙다고 하신다”고 말했다.

심리·정서적 지원의 한계는 더욱 뚜렷했다. 보건소의 마음치유 프로그램에는 단 1명만 참여했다. 서 주무관은 “참 좋았다고 하시는데 어르신들이 시간 내서 보건소를 방문하기가 어려우신 것 같다”고 설명했다.


폐지 업체 통한 전수조사…빙산의 일각일 수도

영암군은 2023년부터 11개 읍면의 폐지 수집 업체를 통해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파악된 18명이 전부일까. 업체를 거치지 않고 개인적으로 활동하거나, 자녀 몰래 다른 지역에서 활동하는 어르신들까지 고려하면 실제 규모는 더 클 가능성이 높다. 폐지 수집은 노인 빈곤의 가장 가시적인 형태일 뿐, 근근이 생활하는 더 많은 빈곤 어르신들이 통계 밖에 존재할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군은 사업 효과를 측정할 구체적인 지표를 마련하지 못한 상태다. 지원을 통해 폐지 수집을 중단한 어르신이 있는지, 실질적인 생활 개선이 이뤄졌는지에 대한 추적 조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또한 이번 사업의 예산 규모도 명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서 주무관은 “한국에너지재단 등 외부 기관 지원도 포함돼 있어 통합 예산을 산출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영암에 살길 잘했다”…그러나

우승희 영암군수는 지난 16일 영암읍의 한 폐지 수집 어르신(85) 가정을 방문했다. 이 어르신은 영암읍지역사회보장협의체의 안전 손잡이 설치, 우리동네복지기동대의 도배 시공, 자원봉사단의 보일러 수리 등을 지원받았다.

“그동안 폐지를 수거하며 외롭게 살아왔는데, 많은 사람들이 집을 고쳐주는 활동으로 내 곁에 누군가가 함께 살고 있다는 믿음을 줬다. 영암에서 살길 잘했다”는 것이 이 어르신의 소감이다.

우 군수는 “폐지 줍는 영암군민 전수조사는 모니터 복지에서 현장복지로 전환하는 대표 사례”라며 “끊임없이 복지현장으로 찾아가 모니터의 수치 넘어 영암군민의 삶을 살피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폐지를 줍는 어르신이 매년 증가하고, 여전히 지원을 거부하는 어르신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현재의 접근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기초연금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워 폐지를 주울 수밖에 없는 노인 빈곤 문제, 자녀에게 부담 주기 싫어 도움조차 거부하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영암군의 작은 통계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선호성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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