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년 미암면 환경갈등, 첫 공식 대화 테이블…‘불신의 벽’ 넘을까 조업시간 기준 버너점화 vs TMS 18%, 2시간 차이 대립 선호성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
| 2025년 08월 22일(금) 14:03 |
![]() ▲ 지난 12일 영암군청에서 열린 ‘미암면 대기배출시설 운영 제1차 갈등조정협의회’에서 폐기물처리업체 관계자와 미암면 공해추방대책위원회 주민대표들이 12년 만에 처음으로 공식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지난달 9일 35도 폭염을 뚫고 영암군청 앞에서 시위를 벌였던 미암면 주민들과 폐기물처리업체 간의 12년 갈등이 처음으로 공식 대화 테이블에 올랐다. 그러나 첫 만남부터 양측의 입장차는 뚜렷했고, ‘불신의 벽’은 여전히 높았다.
영암군은 지난 12일 군청에서 ‘미암면 대기배출시설 운영 제1차 갈등조정협의회’를 개최했다. 이날 협의회는 영암군 갈등 예방과 해결에 관한 조례에 따라 구성된 공식 협의체로, 한국갈등조정가협회 장동혁 사무국장이 의장을 맡아 중재에 나섰다.
Y환경 윤○○ 대표와 윤○○ 이사, 미암면 공해추방대책위원회 최부길 위원장과 최옥실 주민대표가 처음으로 한자리에 마주 앉았다. 동신대 이상근 환경공학과 교수와 홍현수 변호사도 전문가로 참여했다.
“새벽 6시 가동” vs “연간 총량만 지키면 돼”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최부길 위원장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지금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조업시간입니다. 허가 기준은 연간 250일, 하루 8시간으로 총 2,000시간인데, 명절 때는 24시간 풀가동하고 있습니다.”
최 위원장은 직접 촬영한 사진을 제시했다. “7월 31일 오전 6시 17분에 가동을 시작해서 같은 날 밤 9시 27분까지 돌아갔습니다. 이게 하루 일과입니다.”
이에 윤○○ 대표는 “연간 2,000시간 총량만 지키면 법적 문제가 없다”며 “하루 24시간 가동해도 연간 총량만 맞추면 된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작년에 총량 초과로 과태료를 낸 적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영암군이 주민 민원 때문에 가동시간 연장을 허가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조업시간을 둘러싼 해석도 엇갈렸다. 최 위원장은 “버너에 불이 붙는 순간부터가 조업시간”이라고 주장한 반면, 김경원 환경지도팀장은 “TMS(굴뚝자동측정기기)상 산소농도가 18% 미만으로 떨어져야 가동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영암군은 이것이 “TMS 설치 사업장 모두에 적용되는 규정”이라는 입장이다.
이 두 기준 사이에는 약 1~2시간의 차이가 발생한다. 최 위원장은 “새벽 6시 17분에 보일러와 스티로폼 공장이 동시 가동됐는데, 영암군 기록은 8시”라며 “2시간 차이가 나는데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느냐”고 따졌다.
더욱이 작년 스티로폼 공장 조업일지가 3개월간 누락된 사실도 드러났다. 최 위원장은 “3개월간 기록이 제로인데 실제로는 가동했다”며 불신을 표했다.
종 상향 피하려 3개 법인 쪼개기 의혹
업체의 법인 구조도 도마에 올랐다. Y환경(대표 김○○), S업체(대표 윤○○), J산업(대표 윤○○) 등 3개 법인으로 나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윤○○ 대표 가족이 운영하는 한 회사라는 게 주민들 주장이다.
최 위원장은 “500㎡ 이하로 3개 업체로 쪼개 운영하면서 대기환경보전법상 종 상향을 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3종에서 2종으로 상향되면 영암군이 아닌 전라남도가 직접 관리하게 된다.
특히 이번 갈등조정협의회가 열리게 된 직접적 계기인 J산업 공장 증설 문제를 두고 양측은 정면 충돌했다.
윤 대표는 “A장소에서 B장소로 기계 하나 옮기는 것뿐”이라고 주장했지만, 최 위원장은 “새로운 법인 J산업에 신규 등록하는 것이지 단순 이전이 아니다”라고 맞섰다.
최 위원장은 2023년 12월 14일 박종필 당시 미암면장 주재로 열린 간담회를 상기시켰다. “5개 마을 이장과 주민대표 15명이 참석한 자리에서 윤 대표가 ‘더 이상 공장증설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6개월 만에 약속을 뒤집었다”고 성토했다.
“빈집 10채, 5년째 못 팔아”
이날 가장 주목을 끈 것은 최옥실 주민대표의 증언이었다. 10년 전 마을 이장을 지냈던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마을의 실상을 전했다.
“우리 마을은 60호인데 빈집이 10채입니다. 그중 양옥집이 8채나 되는데, 정원주택으로 정말 좋은 집들이에요. 하지만 내놓아도 팔리지 않습니다. S업체 바로 옆 김창근 씨 집은 5년째 팔리지 않고 있어요.”
그는 구체적 사례도 들었다. “한전에 다니던 분이 귀촌해서 친환경 무화과 농사를 지었는데, 공장 가동 1년 만에 ‘도저히 살 수 없다’며 떠났습니다. 그 부지가 지금 J산업 자리예요.”
최 씨는 “법을 따지기 전에, 욕심만 조금 줄이면 주민도 편하고 회사도 편하고 행정도 편할 텐데”라며 “12년째 이런 고통이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하느냐”고 호소했다.
최옥실 씨의 증언에 이어 최부길 위원장도 악취 피해를 토로했다. “비 오는 날은 매연이 가라앉아서 300m 떨어진 내 하우스(1,400평)에서 농작업을 할 수 없다”며 “과거에도 작업하다가 악취 때문에 중단하고 나온 적이 여러 번”이라고 말했다.
계량기 설치·탄력 운영 대안 제시
양측의 입장차가 컸지만, 일부 진전의 신호도 포착됐다.
이상근 교수는 중재안을 제시했다. “연료 투입구에 계량기를 설치하면 사용량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며 “날씨가 좋지 않거나 무화과 수확철에는 가동시간을 줄이는 탄력 운영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홍현수 변호사는 “향후 10년간 증설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서면으로 작성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지만, 윤 대표는 “그럼 J산업은 뭘 하라는 말이냐”며 “사업할 때마다 주민 동의를 받아야 하느냐”고 난색을 표했다.
그래도 업체 측에서 일부 개선 의지를 보였다. 윤○○ 이사는 “소각 보일러 가동시간, 연료 사용량, 냄새 개선 방안에 대해 내부 협의를 거쳐 다음 협의회에서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겠다”고 약속했다.
영암군도 중재 의지를 보였다. 김경원 팀장은 업체의 동의를 받아 조업시간 자료를 주민들에게 공개하기로 했다.
2차 협의회로 공은 넘어갔지만
장동혁 의장은 “오늘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며 “양측이 요구안을 서면으로 정리해 2차 협의회에서 합의안을 만들자”고 제안했고, 양측이 이를 수용했다.
회의를 마치며 최부길 위원장은 “우리는 영업을 방해하려는 게 아니라 최소한 법의 허가 범위 내에서 운영해 달라는 것”이라며 “아들에게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땅을 물려주고 싶은 마음은 사장님도 같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12년 만에 마련된 첫 공식 대화 자리. 양측이 한자리에 앉았다는 것만으로도 진전이지만, 넘어야 할 ‘불신의 벽’은 여전히 높아 보인다.
2차 갈등조정협의회에서 실질적 합의가 도출될 수 있을지, 미암면 주민들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선호성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