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500명 탄원서가 드러낸 불편한 진실
영암열린신문 opennews@openmedia.co.kr
2025년 10월 31일(금) 15:21

영암군 공무원 500여 명이 송전선로 반대 대책위원장을 고소한 전직 면장을 위해 탄원서를 제출했다. 자치행정과가 나서서 실과 팀장들을 소집하고 교류후생팀이 취합 창구가 됐다. ‘공문은 없었다’지만 11개 읍면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개인 간 송사에 행정조직이 동원된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이유다. 사건은 송전선로 대책위 간담회에서 일어났지만, 공무원들은 이를 ‘농민회 문제’로 인식했다. 정당한 민원 제기를 평소 반감의 대상으로 치환한 집단 보복 심리가 작동한 것이다. 민원인을 ‘적’으로 보는 공직 사회의 뿌리 깊은 인식이 드러났다.

한전의 행태는 더 가관이다. ‘60회 이상 협의’를 주장하지만, 일반 주민 공개 설명회는 단 2회, 그마저 모두 무산됐다. 주민 없이 대책위 항의만 받다 끝난 29일 설명회를 ‘20여분간 진행’으로 기록했다. 팩트를 왜곡해서라도 실적을 만들어야 하는 관료주의의 전형이다.

2년간 은폐된 송전선로 사업의 본질도 마찬가지다. 국가기간망이라는 거창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정작 주민들은 작년 5월 사업이 시작된 지 1년 4개월이 지나서야 알게 됐다. 최적경과대역을 확정한 후에야 형식적 설명회를 여는 것을 ‘소통’이라 포장한다. 이것이 2025년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주민이 화가 나서 “아줌마”라고 했다면 모욕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분노의 원인을 만든 것은 누구인가. 밀실에서 주민의 삶을 좌우할 결정을 내리고, 뒤늦게 통보하며 ‘보상’을 운운하는 행정이 아닌가. 정당한 항의를 입막음하려는 500명의 탄원서가 오히려 더 큰 폭력이다.

민주주의는 절차다. 그 절차를 무시한 권력에 맞서는 것은 저항이 아니라 권리다. 영암군과 한전은 주민을 ‘계몽’의 대상이 아닌 ‘주권자’로 인식해야 한다. 500명의 탄원서가 아니라 50만 명이 서명해도, 정당한 민원 제기를 막을 수는 없다. 그것이 민주공화국의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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