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의 조각들(1) 영암군 민간인 희생사건(2) #13 이민정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
| 2025년 11월 07일(금) 10: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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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 민간인 학살 희생에 관한 자세한 얘기들을 좀체 찾아볼 수 없었다. 영암 민간인 희생사건 관련 결정문 안에 제법 세세한 당시 상황들이 기록돼 있었다. 보도자료로 어림짐작한 것보다 훨씬 참혹한 진실들을 마주하게 됐다. 적어도 결정문에 담긴 내용만큼은 전부 게재할 요량이다. 연재 내용은 결정문에서 발췌해 정리한 것이다.<편집자주>
진실규명불능 사건 - 삼호면 사건(산호리 추단오 사건)
신청인 추단성은 ‘형 추단오(1931년생)가 1950년 10월 18일 군경합동작전 과정에서 ‘솟대봉’으로 끌려가 사살되었다’고 진실규명 신청하였다.1)
신청한 이후 신청인이 병환으로 장기간 입원하였다가 사망하여 참고인으로 추단오의 딸 추달막(여·당시 3세)과 육촌 ○○○(여·당시 16세), 일가인 ○○○(당시 22세), 주민 ○○○(당시 14세)을 조사하였다.
참고인 조사결과 추단오는 1950년 11월 20일(음력 10월 11일) 사망한 것으로 판단된다. 추단오의 제사일은 10월 10일이다.
추단오의 사망경위에 대해서 추단오의 딸 추달막은 “들은 이야기로 아버지가 총소리가 나자 무서워 도망가다 동호리 백야리 바다쪽 부근에서 발뒤꿈치에 총상을 입고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개울을 건너다 힘이 빠져 뻘 속에 쓰러졌는데 다음날 갯가로 시신을 찾으러 나간 어머니가 밀려 내려온 아버지의 시신을 찾았다고 했다”고 진술하였다.
참고인 ○○○은 “추단오가 피난을 나갔다가 영산강 갯벌2)에서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하였는데 가족과 마을사람들이 같이 시신을 수습했다고 들었다”고 진술하였다.
참고인 ○○○은 “추단오는 경찰이 총을 쏘니까 할 수 없이 뻘로 뛰어들었다가 총탄에 맞았는지는 모르겠으나 결국 뻘에서 얼어 죽었다고 들었다”고 진술하였다.
일가인 ○○○은 “추단오는 경찰이 진주할 무렵 피난을 나갔다가 얼어 죽었다고 들었다. 총에 맞지는 않았다”고 진술하였다.
조사결과 추단오가 경찰의 총격을 피하려다 사망한 것은 확인되었으나 경찰의 총격으로 사망하였는지 피난 중 뻘에 빠져 동사하였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따라서 추단오의 사망이 경찰의 불법적인 공권력 행사로 인한 것인지 여부를 확인할 수 없어 진실규명불능으로 판단된다.
다음에 계속
1) 신청인 추단성은 2008년 노환으로 병원에 입원하였다가 2009년 7월에 사망하였다.
2) 현재 영산강 갯벌은 논으로 개간되었다. 이 갯벌은 산호리 동암마을 앞 바다에서 동호리 백야마을까지 뻗어 있었다고 한다.
이민정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