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의 기다림, 진실을 향하여 (1)

영암군 민간인 희생사건(3) #01
1950년 영암면, 그해 가을의 기록

이민정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2025년 11월 28일(금) 14:15

위 이미지는 생성형 AI를 활용하여 제작되었습니다



영암 민간인 학살 희생에 관한 자세한 얘기들을 좀체 찾아볼 수 없었다. 영암 민간인 희생사건 관련 결정문 안에 제법 세세한 당시 상황들이 기록돼 있었다. 보도자료로 어림짐작한 것보다 훨씬 참혹한 진실들을 마주하게 됐다. 적어도 결정문에 담긴 내용만큼은 전부 게재할 요량이다. 연재 내용은 결정문에서 발췌해 정리한 것이다.<편집자주>



본 조사결과보고서는 1950. 10. 전남 영암군 영암면과 덕진면에서 발생한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 사건을 정리하였다. 1950. 10. 6. 영암군 영암면이 경찰에 의해 수복된 이후, 경찰은 영암면, 영암면과 인접한 덕진면에서 부역자 및 부역혐의자 등을 색출하기 시작하였고, 덕진면 일부 지역으로는 빨치산 토벌작전을 진행하였다. 그 과정에서 영암면과 덕진면에 거주하던 민간인들이 부역자 가족이라는 이유, 부역혐의가 있다는 이유 등으로 경찰에게 희생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본 조사결과보고서에서 정리한 1950. 10. 영암면과 덕진면에서 발생한 민간인 희생 사건은 총 14건으로, 이를 사건의 발생 시기와 장소에 따라 총 7개의 사건으로 분류·병합하였다. 관련 기록 조사, 신청인 및 참고인 진술조사를 통해 사건이 실재하였음을 확인하였고, 진실규명대상자 22명이 희생되었음을 확인하였다.


영암면 사건

1950. 10. 6., 영암면이 경찰에 수복된 이후, 영암경찰서는 수복된 지역을 중심으로 인민군 점령시기 부역자 및 부역혐의자 등을 색출하기 시작하였다.

본 조사결과보고서는 그 과정에서 1950. 10. 13~14., 영암면 회문리와 교동리에서 부역자 가족이라는 이유 또는 부역혐의가 있다는 이유 등으로 민간인이 희생된 사건을 정리하였다. 사건 발생 시기 순으로 희생 경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영암면 회문리 우○수, 우○수 희생 사건(2다-3447)

진실규명대상자 우○수(禹○秀, 남, 25세, 농사), 우○수(禹○洙, 남, 22세, 농사)는 영암면 회문리 66번지 회의촌마을에 거주하던 중, 1950. 10. 13.(음력 9. 3.), 좌익활동을 한 것으로 의심을 받아 경찰에 의해 영암면 서남리 방공호로 끌려가 총살되어 희생되었다.

신청인 우○수(우○수·우○수의 동생, 남, 1944년생)의 진술에 따르면, 1950. 10. 13.(음력 9. 3.) 아침, 영암면 회문리 회의촌마을에 들어온 경찰들이 마을 주민을 공터에 모이게 하고, 그중 좌익활동 혐의가 있는 사람 십여 명을 골라내 총살하였다.1) 이후 경찰들이 마을을 떠나려는데, 마을 이장이 경찰에게 우○수와 우○수도 좌익활동 혐의가 있다고 말하였고, 그 말을 들은 경찰은 우○수와 우○수를 데리고 마을을 떠났다. 그날 저녁이 되기 전, 우○수와 우○수의 부모는 우○수와 우○수가 영암면 서남리에 있는 방공호(현 한국전력공사 영암지사)에서 경찰에게 총살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현장으로 가서 두 사람의 시신을 수습하여 방공호가 있던 뒷산에 매장하였다.2)

우○수는 강진군에 사는 친척이 운영하는 목공소에서 근무하다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영암군으로 돌아와 거주하던 중이었고, 우○수는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었다. 신청인은 우○수와 우○수 모두 좌익활동은 하지 않았는데, 한국전쟁 이전 마을에서 논에 물 대는 일로 이장과 우○수, 우○수 사이에 다툼이 발생한 적이 있어 그 일이 원인이 되어 우○수와 우○수가 희생된 것으로 생각된다고 진술하였다.3)

참고인 하○○(이웃, 남, 1933년생)의 진술에 따르면, 우○수와 우○수는 경찰에 의해 영암면에 있던 방공호로 끌려가 총살되었다.

제적등본에는 우○수가 ‘1950. 10. 30. 본적지(전남 영암군 영암면 회문리 66번지)에서 사망’한 것으로, 우○수가 ‘1952. 12. 29. 본적지에서 사망’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고, 족보 『단양우씨예안군파보(丹陽禹氏禮安君派譜) 卷5』에는 ‘○수(○秀), 경인(庚寅) 1950. 9. 3. 졸(卒)’, ‘○수(○秀), 경인(庚寅) 1950. 9. 3. 졸(卒)’로 기재되어 있다. 『단양우씨예안군파보(丹陽禹氏禮安君派譜) 卷5』, 2004, 639~640쪽

우○수와 우○수의 제삿날은 사망일 전날인 음력 9. 2.이다. 이에 제적등본 상 사망일은 상이하나 족보와 제삿날을 근거로 하여 우○수와 우○수의 희생일을 1950. 10. 13.(음력 9. 3.)로 판단하였다.

진실규명대상자 우○수와 우○수의 시신을 직접 수습한 부모로부터 관련 내용을 전해 들은 신청인의 진술, 우○수와 우○수의 시신이 영암면 서남리 방공호에서 수습된 점, 족보에 우○수와 우○수의 사망일이 1950. 9. 3.(음력)으로 기재되어 있고, 제삿날은 사망 전날인 음력 9. 2.인 점을 통해 볼 때, 진실규명대상자 우○수와 우○수는 1950. 10. 13.(음력 9. 3.), 좌익활동을 한 것으로 의심을 받아 경찰에 의해 영암면 서남리 방공호로 끌려가 총살되어 희생되었다고 판단된다.

다음에 계속


1) 신청인은 희생자 십여 명의 신원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고 진술하였다. 2022. 11. 현재 2기 진실화해위원회에 관련 사건이 진실규명 신청되지 않았고, 1기 진실화해위원회에도 진실규명 신청되지 않았다.
2) 방공호 자리는 현재 영암면 서남리 75-2에 있는 한국전력공사 영암지사(한전MCS 영암지사) 자리이다. 1950. 당시에는 그곳이 공터였다고 한다. 나중에 신청인이 우○수와 우○수의 시신을 덕진면으로 이장하였다고 한다. 신청인 우○수 진술조서(2022. 2. 17.)
3) 신청인 우○수 진술조서(2022. 2. 17.) 신청인은 자신이 성인이 되어 그날 마을에 온 경찰이 천○○, 김○○이었고, 그중 1명은 같은 마을 주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진술하였다.
이민정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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