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사람들 대신 쓰러진 사람들 영암군 민간인 희생사건(3) #03 이민정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
| 2025년 12월 26일(금) 10:16 |
![]() 위 이미지는 생성형 AI를 활용하여 제작되었습니다 |
영암 민간인 학살 희생에 관한 자세한 얘기들을 좀체 찾아볼 수 없었다. 영암 민간인 희생사건 관련 결정문 안에 제법 세세한 당시 상황들이 기록돼 있었다. 보도자료로 어림짐작한 것보다 훨씬 참혹한 진실들을 마주하게 됐다. 적어도 결정문에 담긴 내용만큼은 전부 게재할 요량이다. 연재 내용은 결정문에서 발췌해 정리한 것이다.<편집자주>
덕진면 노송리 노노동마을 희생 사건
진실규명대상자 신○범 등 14명은 덕진면 노송리 노노동마을에 거주하던 중, 1950. 10. 26.(음력 9. 16.), 덕진면 노송리 노노동마을 뒷산 등에서 빨치산 토벌작전을 하러 온 경찰에게 총살되어 희생되었다.
1950. 10. 26.(음력 9. 16.) 오전, 경찰이 덕진면 노송리 노노동마을에 들어왔다. 그날 영암경찰서 및 덕진지서 경찰은 덕진면 노송리 너머 금정면에 입산한 빨치산을 잡기 위해 덕진면 노송리에서 금정면으로 넘어가는 고개인 여운재 아래에 위치한 노노동마을에 들어왔다. 영암경찰서 경찰은 영암면 대신리를 지나, 덕진지서 경찰은 덕진면 영등리를 지나 덕진면 노송리로 들어왔다. 덕진면 노송리는 덕진면에서 금정면으로 넘어가는 고개인 여운재 아래에 위치해 있어 금정면에 입산한 빨치산 등이 밤이면 자주 내려와 주민에게 먹을 것을 요구하는 등의 일이 잦았고, 그럴 때마다 노송리 주민들은 그에 협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1) 그러한 연유로 경찰들이 덕진면 노송리 노노동마을에 들어와 빨치산 토벌작전을 벌이게 됐고, 그 과정에서 마을 주민들이 희생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노노동마을 주민들은 경찰들이 총을 쏘며 마을에 들어오자 총소리에 놀라 마을 뒷산 방향으로 피신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일부 주민들이 경찰이 쏜 총에 맞아 희생되었다. 본 보고서에서 확인된 이 사건의 희생자는 노노동마을과 옆 마을에 거주하던 주민들로 남녀노소가 모두 포함되어 있었고, 빨치산은 없었던 것으로 판단된다.2)
사건 당일 마을 뒷산으로 피신하여 생존한 참고인 최○○(노노동마을 주민, 남, 1936년생)은, “차라리 그날 다들 가만히 숨어 있었으면 살았을 것이다. 그날 움직이는 사람들은 경찰들이 다 쏴버렸다. 누가 누구인지 확인하고 그런 것도 아니었고 움직이는 사람들을 쏴버렸다.”라고 진술하였다.
총소리는 약 2시간 동안 이어졌다. 이후 경찰은 노노동마을 뒷산 등 여기저기에 숨어 있는 사람들에게 모두 나와 영보초등학교로 가라고 지시하였다. 경찰의 지시에 따라 영보초등학교 운동장에 모인 노노동마을 주민들은 그곳에 모여 있던 인근 마을 주민들과 함께 ‘빨치산에게 먹을 것을 주는 등 도움을 주지 마라’는 내용의 연설을 들었고, 이후 마을로 돌아가라는 경찰의 지시에 따라 마을로 돌아갔다. 노노동마을에 도착했을 때 마을 입구에 위치한 집을 포함한 집 몇 채가 불타고 있었는데, 그중에는 진실규명대상자 신○범, 신○범, 신○범, 이○순의 집도 있었다.3)
노노동마을로 돌아온 주민들과 희생자들의 가족 및 친척은 노노동마을 뒤편 언덕, 뒷산 등에서 희생자들의 시신을 발견하여 수습하였고, 마을 부근 야산, 선산 등지에 매장하였다. 이 사건은 사건 당일 노노동마을 뒷산 등으로 피신하여 생존한 신청인 신○범, 신청인 신○이, 참고인 이○○, 참고인 최○○, 참고인 신○○ 등 5명의 진술, 이웃 마을에 거주하여 사건 당일 노노동마을에서 총소리가 나고 마을의 집 일부가 불타는 모습을 목격한 신청인 최○원, 신청인 신○재, 신청인 최○○ 등 3명의 진술을 통해 사건의 경위가 파악되었다. 사건 발생 시기는 진실규명대상자의 제삿날이 사망 전날인 음력 9. 15.인 점을 근거로 하여 1950. 10. 26.(음력 9. 16.)로 판단하였고,4) 사건 발생 장소는 희생자들의 시신이 노노동마을 뒷산 등에서 수습된 점을 근거로 하여 덕진면 노송리 노노동마을 뒷산 등 마을 인근으로 판단하였다.
이 사건의 진실규명대상자 14명의 명단을 정리하면 다음의 <표 5>와 같고,4) <그림 4>는 덕진면 노송리를 포함한 덕진면과 영암면의 지도이다.
![]() |
신○범 희생 사건(2다-1129-29)
진실규명대상자 신○범(愼○範, 남, 20세, 농사)은 덕진면 노송리 235번지 노노동마을에 거주하던 중, 1950. 10. 26.(음력 9. 16.), 덕진면 노송리 노노동마을에 들어온 경찰을 피해 마을 뒷산으로 피신하는 과정에서 경찰에게 총살되어 희생되었다.
신청인 신○범(신○범의 동생, 남, 1936년생)의 진술에 따르면,6) 신○범은 아버지, 어머니, 동생 6명과 함께 노노동마을에 거주하던 중, 1950. 10. 26.(음 9. 16.) 아침, 경찰이 총을 쏘며 노노동마을로 들어오자 남동생 신○범과 함께 마을 뒷산으로 피신하려고 집을 나갔다. 그러나 집에 남아있던 부모 등 가족들이 걱정되어 집으로 돌아가 부모를 만난 후 다시 마을 뒷산으로 나가던 중 경찰에게 총살되었다. 희생된 장소는 집에서 300m 정도 떨어진 곳이었고, 그 모습을 집에 있던 신○범의 어머니가 목격하였다. 신청인 신○범은 마을 뒷산에 피신해 있다가 총소리가 멈추고 경찰이 떠난 후 집으로 내려왔고, 형 신○범의 희생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신○범의 시신은 어머니와 집안 당숙이 수습하여 수습한 자리 부근에 매장하였다.
사건 당일 마을 뒷산으로 피신하여 생존한 참고인 최○○(이웃, 남, 1936년생), 참고인 이○○(이웃, 여, 1929년생)의 진술에 따르면, 신○범은 동생 신○범을 먼저 도망가게 하고 자신은 가족들을 챙긴다고 조금 늦게 마을 뒷산으로 가다가 희생되었다.
제적등본에는 신○범이 ‘1958. 10. 15. 본적지(전남 영암군 덕진면 노송리 235번지)에서 사망’한 것으로, 족보 『거창신씨세보(居昌愼氏世譜)』에는 ‘○범(○範), 경인(庚寅) 1950. 9. 16. 종(終)’으로 기재되어 있다. 신○범의 제삿날은 사망 전날인 음력 9. 15.이다. 『2007 피해자현황조사 용역사업』에는 ‘신○범, 남, 20, 덕진면 노송리, 1950. 10. 25., 마을 인근, 총살, 경찰’로 기재되어 있다.
이에 제적등본 상 사망일이 상이하나 족보와 제삿날을 근거로 신○범의 희생일을 1950. 10. 26.(음력 9. 16.)로 판단하였다.
사건 당일 마을 뒷산으로 피신하여 생존한 신청인이 형 신○범의 시신을 목격한 점, 신○범이 총살되는 모습을 목격한 어머니로부터 희생 과정을 전해 들은 신청인의 진술, 족보에 기재된 신○범의 사망일이 음력 1950. 9. 16.이고 제삿날은 사망 전날인 음력 9. 15.인 점, 사건 당일 마을 뒷산으로 피신하여 생존한 참고인 최○○과 참고인 이○○가 신○범의 희생 경위를 인지하고 있는 점, 신○범의 시신이 마을 뒷산에서 수습된 점을 근거로 할 때, 진실규명대상자 신○범은 1950. 10. 26.(음 9. 16.) 아침, 경찰들이 총을 쏘며 노노동마을에 들어오자 이를 피하고자 노노동마을 뒷산으로 피신하는 과정에서 경찰에게 총살되어 희생되었다고 판단된다.
다음에 계속
1) 참고인 신○○은, “그 시절에는 밤사람들이 밤이면 마을에 내려와서 먹을 것을 달라고 하면 안 줄 수가 없었다. 대창을 들고 와서 달라고 하면 안 줄 수 없었다. 우리 집에는 온 적이 없었지만 우리집이 고샅 옆이어서 그 사람들이 밤이면 와서 소란스러웠던 것을 들었다.”라고 진술하였다. 참고인 신○○ 진술조서(2022. 3. 31.)
2) 참고인 이○○는, “그날 경찰들이 우리 마을에 ‘그쪽 머리’ 쓰는 사람들 잡으러 왔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죽은 사람들은 아무 관련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억지죽음으로 죽었다고 그렇게 말했었다. 정작 머리 썼던 사람들은 이미 다 산으로 들어가 버려서 마을에는 없었다. (중략) 머리 썼던 사람들은 다들 산에 갔다가 행방불명되어 버렸고 또 몇은 경찰한테 잡혀서 죽었다.”라고 진술하였다. 참고인 이○○ 진술조서(2022. 3. 31.)
3) 노노동마을 주민들이 영보초등학교 운동장에 모여있는 사이 경찰들이 집에 불을 질렀는데, 경찰 중 높은 사람이 그만두라고 하여 몇몇 집만 불타고 나머지 집들을 불타지 않았다고 한다. 신청인 신○범 진술조서(2021. 12. 24.)
4) 본 사건 관련 신청인과 참고인들은 음력 9. 15. 제삿날이 되면 노노동마을이 마치 명절 같았다고 진술하였다. 제삿날이 다른 진실규명대상자는 양○행과 신○사로, 이들의 제삿날은 음력 9. 14.로 하루 차이가 난다. 또 신○범의 제삿날은 양력 10. 14.인데 이는 사건과 관련 없는 임의로 정한 날짜이다.
5) 이 사건의 희생자는 진실규명대상자 14명 이외에도 더 있었으나, 진실규명 신청되지 않았거나 조사 진행 중이거나 등의 이유로 본 조사결과보고서에 포함되지 못하였다. 향후 진실화해위원회는 본 사건의 희생자를 계속 조사할 예정이다.
6) 신청인 신○범은 주민등록상 1937년생이나 실제로는 1936년생이다.
이민정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