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산 너머, 돌아오지 못한 가을

영암군 민간인 희생사건(3) #04

이민정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2026년 01월 02일(금) 11:12

위 이미지는 생성형 AI를 활용하여 제작되었습니다



영암 민간인 학살 희생에 관한 자세한 얘기들을 좀체 찾아볼 수 없었다. 영암 민간인 희생사건 관련 결정문 안에 제법 세세한 당시 상황들이 기록돼 있었다. 보도자료로 어림짐작한 것보다 훨씬 참혹한 진실들을 마주하게 됐다. 적어도 결정문에 담긴 내용만큼은 전부 게재할 요량이다. 연재 내용은 결정문에서 발췌해 정리한 것이다.<편집자주>


신○범, 유○종, 신○진 희생 사건 (2다-2124-58)

진실규명대상자 신○범(愼○範, 남, 32세, 농사, 서당 운영), 신○범의 부인 유○종(劉○鍾, 여, 31세, 가사), 신○범의 셋째아들 신○진(愼○眞, 남, 3세, 유아)은 덕진면 노송리 295번지 노노동마을에 거주하던 중, 1950. 10. 26.(음력 9. 16.), 덕진면 노송리 노노동마을에 들어온 경찰을 피해 마을 뒷산으로 피신하는 과정에서 경찰에게 총살되어 희생되었다.

신청인 신○이(신○범의 둘째 아들, 족보명 신○원, 1945년생)의 진술에 따르면,1) 신○범은 부모, 부인, 아들 3명[신○○(제적등본상 신○○), 신○원(제적등본상 신○이), 신○진(제적등본 미등재)]과 거주하던 중, 1950. 10. 26.(음 9. 16.) 아침, 경찰들이 총을 쏘며 마을에 오자 가족들과 함께 노노동마을 뒷산으로 피신하였다. 신○범의 부모와 첫째․둘째 아들은 마을 뒷산 언덕으로 피신하였고, 신○범은 부인 유○종, 셋째 아들 신○진과 함께 언덕에서 조금 더 올라간 곳으로 피신하였다. 언덕으로 피신한 3명은 생존하였으나, 신○범은 부인, 셋째 아들과 함께 경찰에게 총살되었다.

신○범과 신○진은 머리에, 유○종은 가슴에 총을 맞았다. 사건 당일, 마을 뒷산에서 신○범 등 3명의 시신을 발견한 마을 주민이 신○범의 가족에게 그 사실을 알려 주었으나, 그날은 가족들이 시신을 수습하러 가지 못하고 며칠 후에 친척들이 시신을 수습하여 그 자리에 매장하였다.2) 그리고 사건 당일 신○범의 집은 마을의 다른 몇 집과 함께 불에 탔다.3)

사건 당일 마을 뒷산으로 피신하여 생존한 참고인 최○○(이웃, 남, 1936년생), 참고인 이○○(이웃, 여, 1929년생), 참고인 신○범(이웃, 남, 1936년생)은 신○범, 유○종, 신○진이 피신하는 과정에서 경찰에게 총살된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4)

제적등본에는 신○범과 유○종이 ‘1950. 9. 25. 본적지(전남 영암군 덕진면 노송리 295번지)에서 사망’으로, 족보 『거창신씨세보(居昌愼氏世譜)』에는 ‘○범(○範), 경인(庚寅) 1950. 9. 16. 종(終)’으로, ‘○범(○範), 배 강릉유씨(配 江陵劉氏), 경인(庚寅) 1950. 9. 10. 종(終)’으로 기재되어 있다.

신○범과 유○종의 제삿날은 사망 전날인 음력 9. 15.이다.5) 신○진은 당시 3세 유아로, 제적등본과 족보에 등재되어 있지 않다. 이에 제적등본과 족보상 사망일이 상이하나, 제삿날을 근거로 신○범, 유○종, 신○진의 희생일을 1950. 10. 26.(음력 9. 16.)로 판단하였다.

사건 당일 마을 뒷산으로 피신하였다가 생존한 신청인이 진실규명대상자 3명의 시신을 직접 목격한 점, 사건 당일 마을 뒤로 피신하여 생존한 참고인 최○○, 참고인 이○○, 참고인 신○범이 신○범 등 3명의 희생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점, 족보에 기재된 신○범의 사망일이 1950. 9. 16.(음력)인 점, 신○범과 유○종의 제삿날이 사망 전날인 음력 9. 15.인 점, 시신이 덕진면 노송리 노노동마을 뒷산에서 수습된 점을 근거로 할 때, 진실규명대상자 신○범, 신○범의 아내 유○종, 신○범의 셋째아들 신○진 등 3명은 1950. 10. 26.(음 9. 16.), 노노동마을에 들어온 경찰을 피해 마을 뒷산으로 피신하는 과정에서 경찰에게 총살되어 희생되었다고 판단된다.


최○호, 최○진, 최○순 희생 사건(2다-1129-14)

진실규명대상자 최○호(崔○鎬, 족보명 최○호, 남, 43세, 농사), 최○호의 아들 최○진(崔○鎭, 남, 21세, 학생),6) 최○호의 딸 최○순(崔○順, 여, 18세, 가사)은 덕진면 영보리 431번지 내동마을에 거주하던 중, 1950. 10. 26.(음 9. 16.) 오전, 덕진면 노송리 노노동마을에 들어온 경찰을 피해 노노동마을 옆 마을로 피신하다가 마을 경계 언덕에서 경찰에게 총살되어 희생되었다.

신청인 최○원(최○호의 아들, 남, 1941년생)의 진술에 따르면, 최○호는 부인, 자녀 7명과 함께 덕진면 영보리에 거주하였는데, 덕진면 노송리 노노동마을에 거주하는 장인어른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첫째 아들 최○진, 첫째 딸 최○순을 데리고 1950. 10. 25., 노노동마을에 있는 처갓집에 가서 식사를 하고 그날 밤 처갓집에서 잤다. 최○호의 장인은 앞서 살펴본 진실규명대상자 신○범의 아버지로, 신○범은 최○호의 부인 신부연의 남동생이다. 다음날인 1950. 10. 26.(음력 9. 16.) 오전, 노노동마을에 경찰들이 총을 쏘며 들어오자 이를 피하기 위해 최○호는 아들 최○진과 딸 최○순을 데리고 피신하다가 노노동마을 옆 마을의 경계에 있던 언덕(일명 구새기 잔등)에서 경찰에게 총살되었다. 최○호와 최○진은 가슴 위쪽에, 최○순은 가슴 아래쪽에 총을 맞았다. 최○호의 형과 친척들이 최○호 등 3명의 시신을 수습하여 덕진면 영보리에 있는 문중 산에 매장하였다.7) 신청인은 사건 당일 영보리 자택에 있었고, 노노동마을에서 총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것 때문에 아버지 최○호 등 가족들이 희생되었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고 한다.

사건 당일 마을 뒷산으로 피신하여 생존한 참고인 최○○(이웃, 남, 1936년생), 참고인 신○범(이웃, 남, 1936년생)은 최○호, 최○진, 최○순이 피신하는 과정에서 경찰에게 총살된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제적등본에는 최○호가 ‘1963. 11. 4. 본적지(전남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 431번지)에서 사망’, 최○진이 ‘1968. 12. 5. 본적지에서 사망’, 최○순이 ‘1967. 4. 15. 본적지에서 사망’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족보 『전주최씨중랑장공파세보(全州崔氏中郎將公派世譜)』에 최○호는 ‘○호(○鎬), 기(忌) 경인(庚寅) 1950. 10. 4.’로, 최○진은 ‘○진(○鎭), 기(忌) 경인(庚寅) 1950. 9. 18.’로 기재되어 있고, 최○순은 족보에 등재되어 있지 않다. 최○호 등 3명의 제삿날은 사망 전날인 음력 9. 15.이다.8) 이에 제적등본과 족보상 사망일이 상이하나, 제삿날을 근거로 최○호, 최○진, 최○순의 희생일을 1950. 10. 26.(음력 9. 16.)로 판단하였다.

사건이 발생한 노노동마을 부근 마을에 거주하며 사건 발생 상황을 인지했던 신청인 최○원의 진술, 사건 당일 피신하여 생존한 참고인 최○○·참고인 신○범이 진실규명대상자 최○호 등 3명의 희생 경위를 인지하고 있는 점, 최○호 등 3명의 시신이 노송리 노노동마을과 영보리 경계 언덕에서 수습된 점, 제삿날이 사건 발생 전날인 음력 9. 15.인 점을 통해 볼 때, 진실규명대상자 최○호, 그의 아들 최○진, 그의 딸 최○순은 1950. 10. 26.(음력 9. 16.), 덕진면 노송리 노노동마을에 들어온 경찰을 피해 노송리 노노동마을과 영보리 경계에 있는 언덕으로 피신하는 과정에서 경찰에게 총살되어 희생되었다고 판단된다.

다음에 계속


1) 본 사건의 신청인은 신○범의 첫째아들 신○○이었으나, 신○○의 건강이 좋지 않아 병원에 입원하여 신○○의 동생 신○이가 진술조사에 참석하였고, 진술조사 종료 후 신청인을 신○이로 지위승계하였다.
2) 신청인 신○이 진술조서(2021. 12. 17.) 나중에 신○범과 유○종의 시신은 영암면 학송리에 있는 선산으로 이장하였고, 신○진의 시신은 마을 뒷산에 평장(平葬) 형태로 매장하였다.
3) 당시 노노동마을에서 신○범의 집이 가장 크고 좋은 집이었는데, 그날 집이 모두 타버렸다고 한다. 신청인 신○이 진술조서(2021. 12. 17.)
4) 참고인 최○○ 진술조서(2022. 4. 1.); 참고인 이○○ 진술조서(2022. 3. 31.); 신청인(참고인) 신○범 진술조서(2021. 12. 24.)
5) 1949. 광주지방검찰청 장흥지청에서 생산된 『형사사건부』에서 진실규명대상자 신○범이 국가보안법, 포고 2호, 법령 19호 위반으로 1949. 2. 25. 불기소 처분된 사실이 확인되나, 그 외 자료는 존재하지 않아 해당 내용만으로는 구체적인 사건의 경위를 확인할 수 없었다.
6) 진실규명대상자 최○진(2다-1129-14)이 배재중학교 학생이었다는 신청인의 진술을 확인하고자 배재중학교에 관련 자료를 요청하였으나, 학적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회신을 받았다. 배재중학교-10524(2022. 11. 7.)「배재중학교 학적 조회 결과 회신」
7) 신청인 최○원 진술조서(2022. 2. 16.) 나중에 진실규명대상자 최○순은 같은 사건의 희생자 신○범(2다-1129-29)과 ‘영혼결혼식’을 하였다고 한다. 족보 『거창신씨세보(居昌愼氏世譜)』에 ‘○범(○範), 배(配) 전주최씨○호녀(全州崔氏○鎬女)’로 기재되어 있다.
8) 현재는 제사를 따로 지내지 않고 음력 10월 첫째주 주말에 시제를 지낸다고 한다.
이민정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이 기사는 영암열린신문 홈페이지(www.openmedia.co.kr)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URL : http://www.www.openmedia.co.kr/article.php?aid=3391949234
프린트 시간 : 2026년 09월 29일 03:20: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