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도는 있었다 영암열린신문 opennews@openmedia.co.kr |
| 2026년 01월 02일(금) 13:09 |
미암면 환경 갈등이 협약 체결로 일단락됐다. 지난달 31일 군청에서 업체와 주민대표가 서명했다. 13년 만이다. 본지는 지난주 사설에서 합의 내용과 이행 여부를 다뤘다. 이번엔 다른 이야기를 하려 한다.
이번 협약의 근거는 ‘영암군 갈등 예방과 해결에 관한 조례’다. 2015년 12월 17일 제정됐다. 제정 이유는 명확했다. “갈등의 사회경제적 비용을 최소화하고 군정에 대한 군민 신뢰를 확보한다”는 것이었다. 훌륭한 취지다. 문제는 이 조례가 10년간 한 번도 쓰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미암면 갈등은 2012년에 시작됐다. 지난해까지도 주민들은 “숨을 쉴 수 없다”고 호소했다. 조례는 있었다. 그런데 왜 적용되지 않았을까.
조례 제11조는 “군수는 갈등 해결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갈등조정협의회를 둘 수 있다”고 규정한다. ‘둘 수 있다’는 임의 규정이다. 행정이 필요하다고 보지 않으면, 제도는 작동하지 않는다. 10년간 그랬다.
협의회가 처음 구성된 건 지난해 8월이다. 그 직전인 7월, 주민 50여 명이 폭염 속에 군청 앞에 섰다. 70~80대 노인들이 35도 더위를 뚫고 나왔다. 방송사 카메라가 몰렸다. 그제야 행정이 움직였다.
우승희 군수는 협약 당일 SNS에 “대화로 해결한 사례”라고 게시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외부 전문가가 의장을 맡아 중재했고, 양측이 테이블에 앉아 합의를 이뤘다. 조례가 설계한 그림 그대로다. 그러나 그 그림을 펼치기까지 10년이 걸렸다. 주민들이 거리로 나온 뒤에야 펼쳐졌다. 이것을 성공이라고만 부를 수 있을까.
제도의 가치는 존재가 아니라 작동에 있다. 갈등이 극한으로 치닫기 전에, 집회가 터지기 전에, 제도가 먼저 작동해야 한다. 그래야 제정 취지에 부합한다.
10년간 조례는 잠들어 있었다. 깨운 것은 땡볕에 선 노인들이었다. 이 순서가 바뀌어야 제도가 제도다.
영암열린신문 opennews@open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