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져 가자, 아버지의 마지막 말

영암군 민간인 희생사건(3) #05

이민정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2026년 01월 09일(금) 10:28

위 이미지는 생성형 AI를 활용하여 제작되었습니다



영암 민간인 학살 희생에 관한 자세한 얘기들을 좀체 찾아볼 수 없었다. 영암 민간인 희생사건 관련 결정문 안에 제법 세세한 당시 상황들이 기록돼 있었다. 보도자료로 어림짐작한 것보다 훨씬 참혹한 진실들을 마주하게 됐다. 적어도 결정문에 담긴 내용만큼은 전부 게재할 요량이다. 연재 내용은 결정문에서 발췌해 정리한 것이다.<편집자주>


신○범 희생 사건(2다-1635-51)

진실규명대상자 신○범(愼○範, 족보명 신○범, 남, 35세, 농사, 목수)은 덕진면 노송리 243번지 노노동마을에 거주하던 중, 1950. 10. 26.(음력 9. 16.), 덕진면 노송리 노노동마을에 들어온 경찰을 피해 옆 마을로 피신하는 과정에서 경찰에게 총살되어 희생되었다.

신청인 신○한(신○범의 첫째 아들, 1942년생)의 진술에 따르면,1) 신○범은 부인, 자녀 4명과 함께 덕진면 노송리 243번지 노노동마을에서 지내다가, 첫째 아들과 둘째 딸은 영암면 개신리에 있는 처갓집으로 보내고, 나머지 가족들과 노노동마을에서 거주하고 있었다. 1950. 10. 26.(음력 9. 16.), 노노동마을에 경찰이 총을 쏘며 들어오자 신○범은 가족들과 함께 피신하던 중 노노동마을과 옆 마을 영보리와의 경계에 있는 언덕에서 경찰에게 총살되었다.

참고인 신○○(신○범의 첫째 딸, 1938년생)의 진술에 따르면,2) 1950. 10. 26.(음력 9. 16.) 해 뜰 무렵 마을에서 총소리가 나자 마을 주민들이 피난을 나갔고, 신○범은 가족들에게 다 같이 가면 다 같이 죽으니 흩어져서 가자고 하여, 신○범은 옆 마을 방향으로, 신○범의 부인은 2살 된 막내아들을 업고 첫째 딸 신○○과 함께 노노동마을 뒷산에 있는 절 아래로 피신하였다. 총소리가 한참 나다가 조용해지더니 경찰이 숨어있는 사람들에게 손을 들고 나와서 영보국민학교로 가라고 지시하였고, 신○범의 부인은 자녀들을 데리고 영보국민학교로 가는 길에 노송리 노노동마을과 옆 마을 영보리와의 경계에 있는 언덕(일명 밥몰잔등)에 3명이 사망해 있는 것을 목격하였다. 참고인 신○○은 그때는 무서워서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중 1명이 아버지 신○범이었다고 한다.3) 신○범의 부인과 자녀들은 영보국민학교에 모인 덕진면 노송리 마을 주민들과 함께 경찰로부터 ‘산사람들이 왔냐 안 왔냐’, ‘그 사람들 도와주지 마라’ 등의 이야기를 들은 후 마을로 돌아왔다.

마을에 도착하니 마을 입구에 있는 집들이 불타고 있었는데, 그중 신○범의 집도 있었다.4)

신○범의 부인은 집에 돌아왔으나 남편 신○범이 보이지 않아 찾으러 다니다가 노송리 노노동마을과 영보리 경계 언덕에 있는 신○범의 시신을 발견하였다. 신○범은 목, 옆구리에 총을 맞고 엎드려져 있었다. 가족과 친척이 신○범의 시신을 수습하여 노노동마을 뒷산에 매장하였다.5)

사건 당일 마을 뒷산으로 피신하여 생존한 참고인 이○○(이웃, 여, 1929년생), 참고인 최○○(이웃, 남, 1936년생), 참고인 신○범(이웃, 남, 1936년생)은 신○범이 피신하는 과정에서 경찰에게 총살된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제적등본에는 신○범이 ‘1950. 10. 21. 본적지(전남 영암군 덕진면 노송리 243번지)에서 사망’한 것으로, 족보 『거창신씨세보(居昌愼氏世譜)』에는 ‘○범(○範), 경인(庚寅) 1950. 9. 16. 종(終)’으로 기재되어 있다.6) 신○범의 제삿날은 사망 전날인 음력 9. 15.이다. 이에 제적등본 상 사망일이 상이하나, 족보와 제삿날을 근거로 신○범의 희생일을 1950. 10. 26.(음력 9. 16.)로 판단하였다.

진실규명대상자 신○범의 시신을 직접 목격한 참고인 신○○의 진술, 사건 당일 피신하여 생존한 참고인 이○○, 참고인 최○○, 참고인 신○범이 신○범의 희생 경위를 인지하고 있는 점, 신○범의 시신이 노송리 노노동마을과 영보리 경계 언덕에서 수습된 점, 족보에 신○범의 사망일이 음력 9. 16.로 기재되어 있고, 제삿날이 사망 전날인 음력 9. 15.인 점을 통해 볼 때, 진실규명대상자 신○범은 1950. 10. 26.(음력 9. 16.), 덕진면 노송리 노노동마을에 들어온 경찰을 피해 노송리 노노동마을과 영보리 경계에 있는 언덕으로 피신하는 과정에서 경찰에게 총살되어 희생되었다고 판단된다.

다음에 계속


1) 신청인 신○한은 주민등록상 1943년생이나 실제로는 1942년생이다.
2) 참고인 신○○은 주민등록상 1940년생이나 실제로는 1938년생이다.
3) 참고인 신○○은 아버지 신○범 옆에 남자 2명이 있었는데, 그중 1명은 사촌오빠 신○○였고, 다른 1명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하였다. 신○○에 대해서는 후손이 확인되지 않는 등의 관계로 2기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실규명 신청되지 않았다.
4) 참고인 신○○ 진술조서(2022. 3. 31.) 참고인 신○○은 집이 모두 불타버려 하루 아침에 잘 곳도, 입을 옷도, 먹을 것도 없어져 버려서 한동안 영암면에 있는 친척집 등에서 지냈다고 한다.
5) 참고인 신○○ 진술조서(2022. 3. 31.) 신○범의 시신은 나중에 활성산에 있는 선산으로 이장하였다고 한다.
6) 『거창신씨세보(居昌愼氏世譜)』권4, 279쪽
이민정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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