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은 언덕 위에, 한 발은 아래에

영암군 민간인 희생사건(3) #06

이민정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2026년 01월 16일(금) 11:12

위 이미지는 생성형 AI를 활용하여 제작되었습니다



영암 민간인 학살 희생에 관한 자세한 얘기들을 좀체 찾아볼 수 없었다. 영암 민간인 희생사건 관련 결정문 안에 제법 세세한 당시 상황들이 기록돼 있었다. 보도자료로 어림짐작한 것보다 훨씬 참혹한 진실들을 마주하게 됐다. 적어도 결정문에 담긴 내용만큼은 전부 게재할 요량이다. 연재 내용은 결정문에서 발췌해 정리한 것이다.<편집자주>


신○범 희생 사건(2다-1635-34)

진실규명대상자 신○범(愼○範, 남, 22세, 농사)은 덕진면 노송리 239번지 노노동마을에 거주하던 중, 1950. 10. 26.(음력 9. 16.), 덕진면 노송리 노노동마을에 들어온 경찰을 피해 옆 마을로 피신하는 과정에서 경찰에게 총살되어 희생되었다고 판단된다.

신청인 신○욱(신○범의 조카, 남, 1947년생)의 진술에 따르면, 신○범은 부모, 형수, 조카 신○욱과 함께 노노동마을에 거주하고 있었는데,1) 1950. 10. 26.(음력 9. 16.), 노노동마을에 경찰들이 총을 쏘며 마을에 들어오자, 가족들과 함께 피신하던 중 경찰에게 총살되었다. 신○범 외 다른 가족들은 다른 방향으로 피신하여 생존하였다. 신○범의 시신은 노노동마을과 옆 마을 영보리와의 경계 부근에서 발견되었고, 가족들이 시신을 수습하여 노노동마을 뒷산에 매장하였다.

참고인 최○○(이웃, 남, 1936년생)은 사건 당일 자신의 바로 앞에서 경찰이 쏜 총을 맞고 쓰러지는 신○범의 모습을 목격하였는데, “신○범은 바로 내 앞에서 죽어서 직접 봤다. 총 맞고 바로 픽 쓰러져서 죽어버렸다.”라고 진술하였다. 그리고 사건 당일 마을 뒷산으로 피신하여 생존한 참고인 이○○(이웃, 여, 1929년생), 참고인 신○범(이웃, 남, 1936년생)은 신○범이 피신하는 과정에서 경찰에게 총살된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제적등본에는 신○범이 ‘1951. 1. 8. 본적지(전남 영암군 덕진면 노송리 239번지)에서 사망’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고, 족보 『거창신씨세보(居昌愼氏世譜)』에는 신○범이 등재되어 있지 않다. 신○범의 제삿날은 양력 10. 14.인데, 이는 사망일 기준이 아니라 당시 생활이 어려워 신○범의 제사를 바로 지내지 못했다가 나중에 생활이 안정된 후에 임의로 정한 날짜라고 한다. 이에 신○범의 희생일은 같은 사건으로 희생된 진실규명대상자들의 제삿날은 근거로 하여 1950. 10. 26.(음력 9. 16.)로 판단하였다.

진실규명대상자 신○범의 희생과정을 목격한 참고인 최○○의 진술, 사건 당일 피신하여 생존한 참고인 이○○, 참고인 신○범이 신○범의 희생 경위를 인지하고 있는 점, 신○범의 시신이 노송리 노노동마을과 옆 마을 영보리와의 경계 부근에서 수습된 점을 통해 볼 때, 진실규명대상자 신○범은 1950. 10. 26.(음력 9. 16.), 덕진면 노송리 노노동마을에 들어온 경찰을 피해 옆 마을로 피신하는 과정에서 경찰에게 총살되어 희생되었다고 판단된다.


이○순 희생 사건(2다-2124-67)

진실규명대상자 이○순(李○順, 여, 29세, 가사)은 덕진면 노송리 237번지 노노동마을에 거주하던 중, 1950. 10. 26.(음력 9. 16.), 덕진면 노송리 노노동마을에 들어온 경찰을 피해 마을 뒷산 언덕으로 피신하는 과정에서 경찰에게 총살되어 희생되었다.

신청인 신○용(이○순의 남편 신○○의 아들, 1953년생)의 진술에 따르면,2) 이○순은 시아버지, 남편, 딸 1명과 함께 노노동마을에 거주하였는데, 1950. 10. 26.(음 9. 16.), 마을에 경찰들이 오자 가족들과 함께 피신하는 그 과정에서 노노동마을 뒷산 언덕(일명 밥몰잔등)에서 경찰에게 총살되었다. 이○순의 남편 신○○이 이○순의 시신을 수습하여 노노동마을 뒷산에 매장하였다.

사건 당일 이○순의 시신을 목격한 참고인 이○○(이웃, 여, 1929년생)는, “이○순은 밥몰짝으로 올라가려다가 발 하나는 올라가 있고 발 하나는 아래에 있고, 그런 상태로 총 맞아 죽어 있었다.”라고 진술하였다.

참고인 최○○(신청인 신○용의 어머니, 여, 1930년생)는 이○순의 제삿날은 음력 9. 15.로, 매해 자신이 이○순의 제사를 지내왔고, 사건 당일 남편 신○○의 집이 불타버려 신○○과 혼인 후 한동안 작은 오두막집에서 살았다고 진술하였다. 사건 당일 마을 뒷산으로 피신하여 생존한 참고인 최○○(이웃, 남, 1936년생), 참고인 신○범(이웃, 남, 1936년생)은 이○순이 피신하는 과정에서 경찰에게 총살된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제적등본에는 이○순이 ‘1950. 10. 9. 본적지(전남 영암군 덕진면 노송리 237번지)에서 사망’한 것으로, 족보 『거창신씨세보(居昌愼氏世譜)』에는 ‘○범(○範), 배(配) 함평이씨(咸平李氏), 기일(忌日) 9. 25.’로 기재되어 있다.

이○순의 제삿날은 사망 전날인 음력 9. 15.이다. 이에 제적등본과 족보상 사망일은 상이하나, 제삿날을 근거로 이○순의 희생일을 1950. 10. 26.(음력 9. 16.)로 판단하였다.

사건 당일 이○순의 시신을 목격한 참고인 이○○의 진술, 이○순의 시신이 덕진면 노송리 노노동마을 뒤 언덕에서 수습된 점, 사건 당일 피신하여 생존한 참고인 최○○, 참고인 신○범이 이○순의 희생 경위를 인지하고 있는 점, 족보에 이○순의 기일이 9. 25.로 기재되어 있으나 이○순의 제삿날이 사망 전날인 음력 9. 15.인 점을 통해 볼 때, 진실규명대상자 이○순은 1950. 10. 26.(음 9. 16.), 노노동마을에 들어온 경찰을 피해 마을 뒷산 언덕으로 피신하던 중에 경찰에게 총살되어 희생되었다고 판단된다.


유○동, 양○하 희생 사건(2다-2749-32)

진실규명대상자 유○동(兪○洞, 여, 52세, 가사), 유○동의 아들 양○하(梁○河, 이명 양○수, 남, 16세, 농사)는 덕진면 노송리 노노동마을에 거주하던 중,3) 1950. 10. 26.(음력 9. 16.), 덕진면 노송리 노노동마을에 들어온 경찰을 피해 마을 뒷산으로 피신하는 과정에서 경찰에게 총살되어 희생되었다.

신청인 양○규(유○동의 손자, 1951년생)의 진술에 따르면, 유○동과 양○하는 노노동마을에 경찰이 들어와 총을 쏘자 가족들과 함께 노노동마을 뒷산으로 피신하였는데, 유○동은 노노동마을 뒷산에 있는 모시밭(현 노송저수지)에, 양○하는 모시밭 부근에 숨어 있다가 경찰에게 총살되었다. 유○동의 아들 양○○(신청인 양○규의 아버지)는 다른 곳에 숨어 있어서 생존하였고, 나중에 유○동과 양○하의 시신을 수습하였다.

다음에 계속


1) 진실규명대상자 신○범의 형 신○○(신청인 신○욱의 아버지)는 1950. 7. 22.(음력 6. 8.), 금정면 연보리 차내마을에서 보도연맹사건으로 희생되었다. 2기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실규명 신청되어 보도연맹사건으로 조사 진행 중에 있다.(2다-1635-33)
2) 이○순은 신청인 신○용의 아버지 신○○의 첫 번째 부인이다. 신○○은 이○순이 사망한 후 1951. 11.경 최○○와 혼인하였고, 이후 태어난 아들이 신청인 신○용이다.
3) 진실규명대상자 양○하의 제적등본에는 출생연도가 1937년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1935년생이라고 하여, 양○하의 당시 나이를 16세로 기재하였다. 양○하의 본적지는 전남 영암군 덕진면 금강리 817번지의 2이나, 실제 거주한 곳은 덕진면 노송리 노노동마을이었다고 한다.
이민정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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