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녁을 겨누고 있는 화살같이 영암열린신문 opennews@openmedia.co.kr |
| 2026년 02월 13일(금) 10: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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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높은 풍도(風度)와 큰 절개 누가 공과 짝을 할까?
唯公有心, 如矢在的.
유공유심. 여시재적.
高風大節, 孰與公倫?
고풍대절, 숙여공륜?
- 박세채(朴世采, 1631∼1695), 『포옹집(抱翁集)』 권8 「묘지명(墓誌銘)」
위 구절은 박세채가 포옹(抱翁) 정양(鄭瀁, 1600~1668)을 위해 쓴 묘비명의 끝부분이다.
정양은 서인의 영수였던 송강(松江) 정철(鄭澈, 1536~1593)의 손자로서, 가문으로 보면 요즘 말로 ‘금수저’이다. 하지만 조부의 덕으로 받은 영광보다 고난이 많았다. 송강이 죽은 뒤부터 인조(仁祖)가 즉위할 때까지 30여 년간 동서(東西) 붕당의 격랑 속에 송강의 아들 정종명(鄭宗溟,1565~1626)은 관직 진출이 금지되고 생명이 위협당하는 고통을 겪었으며, 손자 정양 역시 태어나면서부터 20여 년간 엄혹한 시간을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37세 때에는 병자호란이 터져 가족을 이끌고 강화로 들어갔다가, 강화가 함락되자 부인과 함께 자결을 시도했으나 미수에 그치기도 했다. 이후 삼척, 태백산 도심리(道深里) 등에 우거(寓居)하기도 하고 비안(比安) 등의 지방관으로 일하기도 하면서, 같은 김장생(金長生) 문하의 송시열(宋時烈) 등과 교유하며 주자학 연구에 힘쓰다가 병을 얻어 69세를 일기로 삶을 마감했다.
이렇게 정쟁과 국난으로 개인의 안일함이 원천적으로 차단된 시대 속에서, 좌고우면하지 않고 마음을 닦고 학문에 침잠하다 세상을 떠난 선생을 향해, 박세채는 공이 마음을 간직한 것이 “과녁을 겨누고 있는 화살 같았다[如矢在的]”고 평가하였다. 인생의 영화와 성쇠, 세상의 평가나 논의 따위에 마음 흔들리는 일 없이, 과녁을 향해 팽팽하게 당겨졌다가 정곡을 향해 거침없이 날아가는[堅持勇往] 화살처럼 학문이라는 과녁을 정조준하며 굳건하고도 용감하게 정진했다는 것이다.
“여시재적(如矢在的)”의 ‘在’는 ‘주(注)ㆍ부(赴)ㆍ파(破)’ 등으로도 쓰이는데, ‘破’가 화살이 정곡을 ‘찌르는’ 결과에 치중한 표현인 반면, ‘注’는 화살을 활시위에 물려 ‘메기고’, ‘在’는 과녁을 향해 ‘겨누고’, ‘赴’는 과녁에 ‘다다르는’ 과정에 초점을 둔 표현들이다. 활쏘기에서는 정곡을 맞추는 결과보다 그 준비과정을 더 중시하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표현이 발달한 듯하다.
우리 모두에게도 도달하고자 세워 놓은 목표, 과녁이 있다. 연초에 세웠던 과녁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느슨해진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겨볼 때이다.
박은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전문위원
한국고전번역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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