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몰라서야
영암열린신문 opennews@openmedia.co.kr
2026년 03월 13일(금) 10:29


자기 나라 역사에 대해 모르는 것을 옛날의 군자들은 부끄러워하였다.

不知本國之史者 古之君子耻之
부지본국지사자 고지군자치지


- 한치윤(韓致奫, 1765~1814), 『해동역사(海東繹史)』 「해동역사 서문 [海東繹史序] 유득공」





윗글은 한치윤이 저술한 『해동역사』의 「해동역사 서문」에 나오는 구절로 그의 벗인 유득공(柳得恭, 1748~1807)이 지었습니다. 유득공 자신도 『발해고(渤海考)』라는 발해의 역사서를 저술할 정도로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관심이 깊었던 분입니다.

한치윤의 조카인 한진서(韓鎭書)는 『해동역사』의 속집에 해당하는 「지리고(地理考)」를 저술하며 “나의 숙부께서 우리나라 역사를 징험할 곳이 없는 것을 근심하여 중국 서적에 실려 있는 우리나라에 대한 기록들을 추려 내고, 아울러 일본 서적에 실려 있는 것들까지 남김없이 채록”하고 “십수 년의 공력을 들여” 『해동역사』를 완성하였다고 적고 있습니다.

한편 유득공은 서문에서 “나의 벗 한대연(韓大淵 대연은 한치윤의 자)은 문을 닫고 들어앉아 옛 일을 탐구하였는데, 우리나라 역사에 뜻을 둔 것이 나와 서로 상의하지 않았는데도 합치하였다.”고 하고 “정사(正史) 이외의 것들까지 섭렵하여 우리나라 수천 년의 사실을 경전(經典)에서 패설(稗說)에 이르기까지 이곳저곳에 흩어져 보이는 것들을 모두 찾아내어 베끼고 손수 잘라내고 붙이면서 나누어진 것을 합하거나 합쳐진 것을 나누기도 하였다. 거의 밥 먹는 것마저 잊은 채 5, 6년이나 힘을 쏟아 비로소 유별로 나누고 조목을 세워 한 부(部)의 책을 만들었는데 모두 몇 권이나 되었다.”고 하여 한치윤이 『해동역사』의 저술에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해동역사』에 기록된 인용서목을 보면 중국서가 523종이고 일본서가 22종으로 모두 545종에 이르는 많은 양입니다. 거기에 우리나라에서 나온 역사서까지 참고하여 상호 검토를 통해 틀린 부분을 바로잡았다고 하니 한치윤이 객관적인 역사서를 기술하기 위해 쏟은 정성을 생각해 보면 놀라울 뿐입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은 역사 기록 국가입니다. 사관(史官)에게 알리지 말라는 내용까지도 기록해 놓은 '조선왕조실록'과 왕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상세하게 기록한 『승정원일기』는 모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지요.

『삼국사기』 진흥왕 6년에 “나라의 역사라는 것은 임금과 신하들의 선악을 기록하여, 좋고 나쁜 것을 만대 후손들에게 보여 주는 것입니다.”*라고 한 이사부의 말이 실려 있습니다. 비판이나 미화만을 위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정확하게 기록하여 후세에서 올바른 역사를 알고 교훈으로 삼을 수 있어야 좋은 역사서가 아닐까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이정욱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한국고전번역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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