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탄 집과 남겨진 기일 (1)

영암군 민간인 희생사건(4) #07

이민정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2026년 04월 10일(금) 10:40

위 이미지는 생성형 AI를 활용하여 제작되었습니다



영암 민간인 학살 희생에 관한 자세한 얘기들을 좀체 찾아볼 수 없었다. 영암 민간인 희생사건 관련 결정문 안에 제법 세세한 당시 상황들이 기록돼 있었다. 보도자료로 어림짐작한 것보다 훨씬 참혹한 진실들을 마주하게 됐다. 적어도 결정문에 담긴 내용만큼은 전부 게재할 요량이다. 연재 내용은 결정문에서 발췌해 정리한 것이다.<편집자주>


학산면 학계리 희생 사건

배○임 희생 사건

진실규명대상자 배○임(裵○任)은 남편 현○○(玄○○)가 경찰이라는 이유로 1950. 10. 2.(음력 8. 21.) 지방 좌익에 의해 학산면 학계리 광암마을 제정골로 끌려가 총살당했고, 배○임이 희생된 뒤 학계리 소재 집은 불탔다. 시신은 수습되었고, 제사는 지내지 않지만 배○임의 기일은 음력 8. 21.이다.1)

진실규명대상자 배○임의 제적등본상 사망일자는 ‘1950. 8. 21.’로 음력으로 사망신고를 한 것으로 추정되어 기일인 1950. 10. 2.(음력 8. 21.)을 희생 시기로 판단하였다. 배○임이 희생된 장소인 학계리 광암마을 제정골은 십리바위 골짜기로 불리기도 하며, 현재 수원지가 되었다. 배○임뿐 아니라 본 사건의 학산면 학계리 ‘김○태 가족’, ‘현○호 가족’도 제정골에서 희생되었다.2)

사건 당시 학계리 주민이었던 현○○(당시 12세, 남)은 학계리 광암마을에서 현 씨 성을 가진 경찰은 현○○,3) 현○○, 현○○, 현○○ 등 6명이었고 김 씨 성을 가진 경찰은 두 명이었는데, 현 씨 경찰 가족들이 많이 희생당했다고 진술하였다. 당시 경찰 가족은 모두 광암마을 제정골(십리바위 골짜기)에 끌려가서 희생되었다고 한다. 배○임의 남편 현○○는 사건 발생 당시 집에 없었고, 사건 발생 후 현○○ 등과 함께 마을로 들어왔다. 참고인 현○○은 배○임이 제정골에서 희생되고 난 뒤 현○○의 아버지도 좌익들에 의해 창고에 감금되었고, 배○임의 남편 현○○가 가족들을 데리러 가기 위해 집에 왔다가 창고에 감금되어 있던 아버지를 구했다고 진술하였다.


김○태 가족 희생 사건

진실규명대상자 김○태, 이○안(김○태의 처), 김○갑(김○태의 아들), 김○현(김○태의 아들), 김○봉(김○태의 아들), 김○섭(김○태의 손자), 윤○남(김○태의 제수), 김○임(김○태의 조카), 김○진(김○태의 조카) 등 가족 9명이 우익인사 가족이라는 이유 등으로 1950. 11. 27.(음력 10. 18.) 학계리 광암마을 제정골에서 지방 좌익에 의해 희생되었다. 김○태의 아들 김○○이 가족들의 시신을 수습하였고, 제삿날은 10. 17.이다.

김○태 가족의 제적등본상 사망일과 사망 장소는 ‘1950. 10. 18, 학산면 학계리 106’로 제삿날이 10. 17.인 점으로 볼 때 음력으로 신고된 것으로 추정된다. 김○태의 손자인 신청인 김○섭(1960년생)은 부친 김○○이 가족들의 시신을 수습하고 사망신고를 했고, 본인 때문에 가족들이 희생되었다며 사건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아 마을 주민들로부터 희생 사건에 대해 들어서 알고 있다고 진술하였다.

김○태가 한약방을 했고, 김○태의 아들 김○○이 경찰이었다는 진술이 있지만, 김○○의 경찰재직 기록은 찾지 못했다.4) 김○○이 좌익들을 피해 숨었고, 김○○의 가족 9명이 경찰 가족이라는 이유로 희생되었으며, 가족들이 희생되고 난 뒤 김○○이 마을에 들어와 빨치산을 몰아내고 마을을 정리했다는 참고인 진술로 볼 때 김○○이 경찰을 지원하는 등 관련 일을 했다는 이유로 우익인사로 분류되어 그 가족들이 희생당한 것으로 판단된다.5)

좌익들이 가족을 잡아두고 “언제까지 김○○이 안 나타나면 다 죽이겠다.”라고 했다는 소문을 듣고 김○○이 가족들이 사는 곳에 오기는 했지만, 마을 주민이 집으로 가지 못하게 숨겨 김○○은 살아남았다.

김○태 가족의 희생 사실은 『6.25사변피살자명부』를 통해 확인된다. 『6.25사변피살자명부』에는 ‘김○태(金○泰)와 김○봉(金○鳳)이 1950. 12. 29. 학산면 학계리’에서 희생되었다고 등재되어 있다. 희생된 가족 9명 중 2명만 명부에 등재되어 있고, 제삿날 및 제적등본상 사망일과 희생 시기가 다르나 김○태 가족이 희생되었다는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데 참고하였다.


현○길 가족 희생 사건

진실규명대상자 현○길, 임○례(현○길의 처), 현○자(현○길의 딸), 현○선(현○길의 아들) 등 가족 4명은 경찰과 연루된 우익인사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1950. 11. 27.(음력 10. 18.) 학계리 광암마을 앞 하천에서 빨치산에게 희생되었다. 현○길의 딸 현○○가 가족의 시신을 수습하였고, 제삿날은 음력 10. 18.이다.

현○길 가족의 제적등본상 사망일과 장소는 ‘1950. 11. 15. 학산면 학계리 155’로 사망일이 제삿날과 일치하지 않으나 시신을 수습한 유족의 진술 등을 토대로 제삿날을 희생일로 판단하였다.

다음에 계속


1) 신청인 이○근 진술조서(2022.6.28.); 신청인은 진실규명대상자 배○임의 사위로 1945년생이다. 신청인은 결혼 후 1990년 장인의 장례식에 모인 친척과 마을 주민들로부터 장모 배○임의 희생 사건에 대해서 들었다. 신청인은 장모 배○임의 시신을 누가 수습했는지는 모르지만 수습되었고, 학산면 학계리 광암마을 소재 가족묘에 장모의 묘가 있다고 진술하였다.
2) 참고인 박○ 진술조서(2022.4.7.); 참고인 박○○은 좌익들이 학계리 제정골에 사람들을 몰아넣어 죽였고, 산에 나무하러 다닐 때 보면 사람 뼈가 굴러다닐 정도였다고 진술하였다.
3) 본 건 ‘학계리 현○호 가족 희생 사건’의 진실규명대상자 현○호의 아들이다.
4) 전남 경찰청에 김○○을 조회한 결과, 경찰에 재직한 기록을 확인하지 못했다. 「전남 경찰 재직사실 확인 협조요청」, 진실화해위원회 조사2과-479, 2022. 4. 11.; 「전남 경찰 재직사실 확인 협조요청 관련 회신」, 경무기획정보화장비과-8100, 2022. 4. 12.; 참고인 현○○은 학계리 광암마을에 현 씨 경찰은 6명이고 김씨 경찰은 2명 있었는데, 김씨 중 1명은 김○○로 기억하는데 나머지 1명의 이름은 기억이 안 난다고 진술하였다. 참고인 현○○이 기억나지 않는 김씨 성을 가진 경찰이 ‘김○○’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된다. 참고인 현○○ 진술조서(2022.6.29.)
5) 참고인 김○○진술조서(2021.12.23.); 참고인 장○○ 진술조서(2022.2.17.) 참고인 김○○은 당시 상월리에서 농사를 짓던 진○○(2마-8309~8311호 사건의 신청인 진○한의 아버지)가 당시 마차를 가지고 있었는데, 진○○ 집 안 짚더미에 좌익을 피해 도망치다가 숨은 사람이 있었고, 좌익들이 짚더미를 죽창으로 찔러대자 진○○ 씨가 ‘말이 모르는 사람을 보면 발길질을 하니 조심하라’고 하자 슬금슬금 도망갔다고 하며, 그때 짚더미에 숨어있다가 살아남은 사람이 김○○이며 광양에서 경찰을 했다고 진술하였다.
이민정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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