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열정을 다시 깨운 한 권의 책
영암열린신문 opennews@openmedia.co.kr
2026년 04월 24일(금) 10:33

삶에 특별한 고통이 없어 보이는데도, 어떤 사람은 이유 없는 허무 속에서 생의 의미를 잃어버린다. 어린 시절에 입은 상처와 오래된 좌절은 마음 깊은 곳에서 열망과 꿈을 잠재우기도 한다. 그러나 한 권의 책, 한 번의 공감이 마음속에 잠들어 있던 열정을 다시 깨우기도 한다.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던 사람이 독서를 통해 다시 살아갈 이유를 발견해가는 과정을 따라가 본다.


열정을 쏟아낼 나만의 일이 없어

“삶을 더 이어가야 할지, 이쯤에서 딱 접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 중이에요.”

독서 집단 프로그램에 오는 분들은 저마다 마음에 상처 하나씩은 갖고 있다지만, 처음부터 그런 극단적인 말을 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그럼에도 프로그램에 참여할 때마다 쉽게 자기 마음을 개방하니까 ‘왜 자살을 생각하느냐?’고 묻기가 오히려 이상했다.

그녀가 털어놓은 이야기는 어머니가 너무 현실적인 이해관계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어서 자기와는 맞지 않았다는 것, 아버지를 구박하는 어머니가 보기 싫었다는 것 정도다. 거기에 하나 더, 자기가 인간관계에 소극적이고 비혼주의자이며 사회에서 요구하는 모습에서 조금은 벗어난 삶을 산다는 것만으로 비정상 취급을 받는다는 데 불만이 있다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이야기는 거기까지다.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조만간 자살이라도 할 것처럼 비탄에 잠길 만한 사연은 아니다. ‘그 정도로 죽는다면 세상에 살아남을 사람 하나도 없겠네?’ 누군가는 이렇게 비아냥거릴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람은 바로 이런 것으로 죽는다. 남은 알 수 없는 것, 남은 이해해주지 않는 것 때문에 죽는다. 그 무렵 유명 여배우가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똑같은 잣대를 그 여배우에게 갖다댈 수 있다. 유명하고 돈 많고 단짝 친구도 많으면서 왜 죽어? 안타까워서 그런 말을 할 수는 있겠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의 절박한 심정은 아무도 모른다. 흔히 ‘남모를 아픔’이라 말하는데, ‘남은 모른다’는 것이 가장 아픈 일이다. 사람이 생을 포기할 때는, 남모를 아픔이 있을 때이다.


어머니에게 받은 부정적 영향

몇 회를 거듭하며 알아간 그녀는 어머니에게 엄청난 영향을 받았고, 그 부정적 영향으로 무엇인가를 열망하고, 추구하고, 꿈꾸는 법을 잊어버렸다는 것을 알았다. 아니, 처음부터 배우지 못했다. 어차피 자신이 그리는 세상은 쓸데없는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며 희망보다는 좌절감을 먼저 배웠다. 원죄 의식이다. 나는 잘못 태어났나 봐. 나는 무언가 잘못된 사람인가 봐. 이런 원죄 의식이 소녀의 가슴에서 생기를 빼앗아 적막한 곳에 움츠리게 만들었다. 그러다가 삶에 대한 기대감도 내려놓은 것이다. 허무는 별것이 아니다. 하고 싶은 일이 없으면 허무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에게 조롱과 야유를 받으며 가치지향적인 자기 품성을 봉쇄당했다. 자아실현의 욕망이 없는 삶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되면 산다는 일이 무의미할 수밖에 없다. 매일 매일이 비슷한 날들의 반복일 뿐이다. 죽은 듯이 사는 거나 그냥 죽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내일은 차라리 죽어버리면 어떨까?’

무지막지한 고통 때문이 아니라 그저 의미가 없어서, 권태로워서, 딱히 희망을 품고 기다릴 일이 없어서 죽음을 생각해본다.


상처받기 쉬운 어린 시절

나는 교사였던 그녀에게 가브리엘 루아의 《내 생애의 아이들》이라는 소설을 권했다. 열여덟 살의 젊은 여교사와 시골 학교 아이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이야기 여섯 편을 엮은 단편집이다.

이 책에는 아이들이 겪는 다양한 슬픔과 함께 교사로서 아이들을 좋은 방향으로 인도하는 일이 얼마나 아름답고 해볼 만한 일인지가 애틋하게 묘사되어 있다. 선생님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줄 수 없어 슬퍼하는 아이에게 환한 미소를 선물해 달라고 말하는 선생님. 다른 교사들은 모두 멸시하는 아이에게서 반짝이는 재능을 찾아내 자랑거리로 만들어주는 선생님. 교실에서 처음 만난 아이를 보며 ‘지칠 대로 지친 나머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하는 수 없이 이곳으로 들어왔다는 인상’을 느낄 줄 아는 섬세하고 따뜻한 선생님.

나는 한 줄기 작은 오르막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거기에, 아이들이 하늘 저 밑으로 가벼운 꽃 장식 띠 같은 모양을 그리며 하나씩 하나씩, 혹은 무리를 지어 나타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는 매번 그런 광경을 바라보면서 가슴이 뭉클해졌다. 광활하고 텅 빈 들판에 그 조그만 실루엣들이 점처럼 찍히는 것을 볼 때면 이 세상에서 어린 시절이 얼마나 상처받기 쉽고 약한 것인가를 마음속 깊은 곳에서 절감했다.


책에서 찾은 진정한 자신의 모습

전에도 성실한 교사이기는 했으나 그 성실은 타고난 성품으로 자기 직분에 충실했던 것 이상은 아니었다. 그녀가 책을 읽으며, 차츰 직업일 뿐이던 교사로서의 일에서 자발적인 열정과 기쁨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공부하는 게 즐겁고, 저녁이면 자기 반 아이들에게 힘내라고 문자도 보낸다고 했다.

그녀가 책을 읽으며 감동받는 모습이 눈에 선히 그려졌다. 자기가 가르치는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기에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열정과 그런 열정이 만들어내는 인생의 참된 의미도 느꼈으리라. 동시에 자기 안에 억눌려 있던 열망도 느꼈으리라. 그녀가 그 책에서 감동받은 시간은 말하자면 자기 안에서 꽃을 만나는 시간이었다. 이제부터 진정한 사랑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하겠다고 다짐하는 그녀, 동료들과도 친하게 지내며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행복했다. 열정에 가득 찬 모습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도 행복하게 만드는 법이다. 그녀가 책을 읽으며 앉아 있는 방 안에 꽃향기처럼 퍼지는 열정이 나에게도 전해졌다.

그녀에게 그것은 얼마나 행복한 독서였을까?

김영아 그림책심리성장연구소 소장
건강소식 2026년 04월호 中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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