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월리, 끝나지 않은 제삿날 (1)

영암군 민간인 희생사건(4) #08

이민정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2026년 04월 24일(금) 10:40

위 이미지는 생성형 AI를 활용하여 제작되었습니다



영암 민간인 학살 희생에 관한 자세한 얘기들을 좀체 찾아볼 수 없었다. 영암 민간인 희생사건 관련 결정문 안에 제법 세세한 당시 상황들이 기록돼 있었다. 보도자료로 어림짐작한 것보다 훨씬 참혹한 진실들을 마주하게 됐다. 적어도 결정문에 담긴 내용만큼은 전부 게재할 요량이다. 연재 내용은 결정문에서 발췌해 정리한 것이다.<편집자주>


학산면 상월리 희생 사건

김○찬 가족 희생 사건

진실규명대상자 김○길(이명 김○○), 이○임(김○길의 처), 김○환(김○길의 아들) 등 3명은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경찰 가족이라는 이유 등으로 지방 좌익에 의해 1950. 10. 25.(음력 9. 15.) 상월리 유천마을 뒷산에서 희생되었다. 김○길의 부친 김○찬이 3명의 시신을 수습하였고, 제삿날은 음력 9. 14.이다.

사건 당시 김○길의 형 김○○이 부산에서 경찰로 재직하였고,1) 김○길은 상월리에서 산을 40만 평 소유하고 있었고, 산에서 나무하는 사람들과 다툼이 있었다고 한다. 김○길 가족은 경찰 가족이라는 이유와 산림 소유에 따른 지역 내 갈등으로 인해 희생당한 것으로 판단된다.

김○길 가족 3명이 희생되고 5일 후, 김○길의 부친인 진실규명대상자 김○찬, 박○도(김○찬의 첫째 부인), 김○봉(김○찬의 아들), 윤○련(김○찬의 며느리), 서○덕(김○찬의 손주며느리), 김○현(김○찬의 아들)2) , 김○배(김○찬의 손자), 오○례(김○찬의 둘째 부인), 문○안(김○찬의 며느리), 김○립(김○찬의 손자), 조○례(김○찬의 며느리), 김○철(김○찬의 손자), 김○욱(김○찬의 손자), 名未定(김○찬의 손자)3) 등 가족 14명도 1950. 10. 30.(음력 9. 20.)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경찰 가족이라는 이유로 지방 좌익에 의해 상월리 유천마을 뒷산에서 희생되었다. 김○찬의 아들 김○○과 마을 주민들이 가족들의 시신을 수습하였고, 제삿날은 음력 9. 19.이다.

사건 당시 상월리 마을 주민이었던 김○○(당시 13세)은 “김○○이 부산에서 경찰을 하던 사람이어서 가족이 다 죽었을 것이다. 일가족 18명이 희생당한 것으로 알고 있고, 끌려가는 모습을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이 그 집 가족들이 죽었다고 말해서 알게 되었다. 지역 출신 좌익들이 학산유격대, 리(里)단유격대를 만들어 사람들을 죽이고 다녔는데, 김○찬 씨 가족도 이 사람들이 죽였을 것이다.”라고 진술하였다.

역시 상월리 마을 주민 신○오(당시 18세)는 “상월리 마을에서 제일 먼저 김○○ 씨 가족이 죽었다. 김○○이 경찰이어서 경찰 가족이라고 죽였는데, 김○봉이 김○○의 큰 형이다.”라고 진술하였다.

제적등본에 김○길, 이○임, 김○환, 김○찬, 윤○련 등 5명의 사망일과 사망 장소는 등재되어 있지 않고, 名未定, 오○례, 문○안, 김○립, 김○욱 등 5명은 ‘1950, 10. 18. 학산면 상월리 후등산’으로, 조○례, 김○철 등 2명은 ‘1950. 10. 18’로(장소 미등재), 김○현, 서○덕, 김○배 등 3명은 ‘1950. 9. 6. 학산면 상월리 후등산’으로, 박○도, 김○봉 등 2명은 ‘1950. 9. 6.’로(장소 미등재) 등재되어 있다.

김○찬 가족의 희생 사실은 『6.25사변피살자명부』와 『영암 피해자 현황조사(2007)』를 통해 확인된다. 『6.25사변피살자명부』에는 김○길이 ‘29세, 농업, 1950. 10. 20. 학산면 상월리’에서 희생되었다고 등재되어 있다.

『영암 피해자 현황조사(2007)』에 따르면 ‘학산면 상월리에서 1950년 11월경 전세가 바뀌게 되자 지방 좌익세력에 의해서 부호와 경찰 가족이라는 이유로 6개 가족 중 48명이 구타 학살’당했고, ‘1950. 10. 20. 상월리 마을 앞에서 김○봉, 김○봉의 처, 김○배, 김○봉의 자 5명, 김○봉의 제수, 김○○의 처, 김○철, 김○○의 차남, 김○○의 삼남, 김○○(김○길)4) , 김○○의 처, 김○○의 자 1, 2, 3’이 희생되었다. 이와 같은 조사 결과는 진실규명대상자의 제적등본상 신원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지만, 김○찬 가족이 상월리 유천마을에서 집단으로 희생되었다는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데 참조하였다.


배○삼 가족 희생 사건

진실규명대상자 배○삼, 탁○리(배○삼의 처), 배○채(배○삼의 아들), 김○순(배○채의 처) 등 가족 4명은 서호면 화송리에 거주하였고,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배○채가 한청단원이라는 이유 등으로 1950. 11. 3.(음 9. 24.) 지방 좌익에 의해 학산면 상월리 앞 하천(일명 폿둠벙)으로 끌려가 죽창 등에 찔려 희생되었다. 배○삼의 외손자 이○○이 가족들의 시신을 수습하였고, 제삿날은 음력 9. 23.이다.

배○삼 가족의 제적등본상 사망일자와 장소는 ‘1950. 9. 23. 서호면 화송리 152’로 사망신고를 음력으로 한 것으로 판단된다. 『순국반공청년운동자명부』에 따르면 배○채(裵○彩)는 ‘한청원’이고, 순국년월일이 ‘1950. 10. 15.’이다. 『영암 피해자 현황조사(2007)』에 기재된 배○삼 가족의 희생시기와 장소는 ‘1950. 10. 5. 아천포’이다. 이 같은 자료를 통해 배○삼 가족의 희생사실을 확인하였고, 제삿날과 제적등본으로 희생시기를 판단하였다.

배○채·김○순 부부의 딸 배○심(당시 3세)도 가족들과 함께 상월리 앞 하천까지 끌려갔는데, 좌익들이 “딸들은 필요 없다, 저기 유천마을에 너희 외가가 있다.”라며 상월리 유천마을 외갓집으로 들어가는 입구까지 데려다주었다고 한다. 배○심은 당시 어려서 아무것도 모른 채 대나무로 만든 평상에서 놀다가 발을 다쳐 피가 난 일을 기억하고 있고, “부모님이 돌아가신 줄도 모르고 철없이 놀았다.”라고 진술하였다.

배○삼의 며느리 김○순은 상월리에서 경찰 가족이라는 이유 등으로 희생당한 ‘상월리 김○찬 가족 희생 사건’의 진실규명대상자 김○봉의 딸이다. ‘김○찬 가족 희생 사건’의 신청인 김○철은 “김○순이 서호면 화송리로 시집갔는데 친정 식구들이 다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친정으로 오다가 상월리 하천에서 남편과 함께 빨치산한테 희생되었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희생 장면을 목격한 마을 주민 이○○(당시 12세, 신청인 배○심의 남편)는 “당시 어머니와 목화밭에 목화를 따러 갔다가 수십 명이 상월리 하천으로 끌려가서 희생당하는 모습을 목격한 적이 있는데, 총이 아니라 몽둥이로 죽인 것 같았다. 당시는 결혼하기 전이었고 결혼 후 처가 가족이 그곳에서 희생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신은 처의 큰고모 아들 이○○이 수습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라고 진술하였다.

다음에 계속


1) 신청인 김○철 진술조서(2022. 2. 16.); 참고인 김○○ 진술조서(2021.12.24.) 김○○은 신청인 김○철의 아버지로 1948.8.29.~1950.9.27. 부산에서 경찰에 재직했는데, 본인이 경찰이라는 이유로 가족이 희생당했다며 그 후 경찰을 그만두고 농사를 짓고 살았다고 한다. 김○○의 경찰 재직 기록은 신청인 김○철이 제출하였다.
2) 참고인 김○○ 진술조서(2021.12.24.) 참고인 김○○은 ‘김○봉은 첫째 부인한테 태어난 아들’이고 ‘김○현은 둘째 부인한테 태어난 아들’이라고 진술하였다. 제적등본에 따르면 김○현은 ‘김○찬과 오○례의 서자남(庶子男)’이다.
3) 제적등본에 ‘名未定’으로 등재되어 있다.
4) 제적등본에 1943.2.20. 김○○(金○○)에서 김○길로 개명했다고 등재되어 있다.

이민정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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