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월리, 끝나지 않은 제삿날 (2) 영암군 민간인 희생사건(4) #08 이민정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
| 2026년 04월 30일(목) 10:32 |
![]() 위 이미지는 생성형 AI를 활용하여 제작되었습니다 |
영암 민간인 학살 희생에 관한 자세한 얘기들을 좀체 찾아볼 수 없었다. 영암 민간인 희생사건 관련 결정문 안에 제법 세세한 당시 상황들이 기록돼 있었다. 보도자료로 어림짐작한 것보다 훨씬 참혹한 진실들을 마주하게 됐다. 적어도 결정문에 담긴 내용만큼은 전부 게재할 요량이다. 연재 내용은 결정문에서 발췌해 정리한 것이다.<편집자주>
김○진 가족 희생 사건
진실규명대상자 김○길, 박○산(김○진의 모친), 김○진, 이○임(김○진의 처), 김○열(김○진의 손자), 강○순(김○진의 며느리), 김○임(김○진의 손녀), 김○심(김○진의 딸), 김○열(김○진의 아들), 김○열(김○진의 아들), 김○열(김○진의 아들), 김○열(김○진의 아들) 등 김○진 가족 12명, 진실규명대상자 김○제, 김○심(김○제의 처), 김○만(김○제의 아들), 김○근(김○제의 아들), 김○단(김○제의 딸), 김○단(김○제의 딸), 김○순(김○제의 며느리) 등 김○제 가족 7명 등 총 19명이 경찰 가족이라는 이유 등으로 1950. 11. 26.(음 10. 17.) 빨치산에 의해 상월리 유천마을 앞산, 상월리 앞 냇가 등지에서 희생되었다.1)
진실규명대상자 김○진 가족은 상월리에서 가장 부자라고 할 정도로 부유한 편이었고, 김○길의 형 김○○(金○○)이 경찰이었다.2) 가족 중 경찰이 있다는 사실이 동생 김○길뿐 아니라 사촌 김○진 가족과 숙부 김○제 가족의 희생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김○○은 큰집 가족(김○진 가족)과 작은 집 가족(김○제 가족)이 희생된 뒤 토벌 작전을 벌이던 경찰과 함께 마을에 들어왔다고 한다.
사건 발생 전 군경이 토벌 작전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빨치산들의 피해가 컸기 때문에 그 보복으로 상월리 유천마을로 들어온 빨치산에 의해 주민들이 희생된 것으로 판단된다.3) 당시 경찰이었던 김○○ 가족은 모두 피신해서 살았으나 피신하지 않은 김○길과 김○진 가족, 김○제 가족이 모두 희생당했다. 당시 김○문(김○진의 6촌, 당시 9세, 신청인) 가족은 박○○(참고인, 당시 10세, 이웃) 가족, 박○○의 숙부 가족과 함께 상월리 산에 피신해 있었다. 빨치산이 마을 주민에게 피신한 사람들을 데리고 오라고 했고, 김○문의 아버지 김○○와 박○○의 아버지가 마을에 내려가자 빨치산이 죽창으로 찔러 몰살시킨 김○진 가족과 김○제 가족 시신을 매장하라고 지시하였다.
김○길은 부인이 아기를 낳았다는 소식을 듣고 아기를 보러 미암면 신기마을의 처가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빨치산에게 끌려가 희생되었다.4) 후일 김○길의 부인은 “방에 들어와서 아기를 보고 가라고 붙잡기라도 했으면 안 죽었을지도 모르는데 방에 들어오라는 말을 왜 못했는지 모르겠다.”라고 하소연하였다고 한다.5)
마을 주민 신○오(당시 18세)는 ”김○제 가족이 해가 질락 말락 할 때 손이 뒤로 묶여서 유천마을 산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봤다. 구덩이를 크게 파서 대창과 몽둥이로 치면서 구덩이로 집어넣어 버렸다. 그곳에서 사람들이 너무 많이 죽어서 냄새가 나서 지나다니지도 못할 정도였다. 김○제의 셋째 아들 김○만이 무리 속에서 탈출했다가 100m도 못 가서 다시 잡혀서 몽둥이와 죽창에 찔려 희생당했다.“라고 진술하였다.6) 시신은 금방 수습하지 못하고 ‘숫태(아기들이 죽은 뒤 묘를 쓰지 않을 때 대충 묻어 두는 곳)’에 묻었다가 후에 이장했다고 한다.
가족과 마을 주민들이 시신을 수습하였고, 제삿날은 사건 발생 전날인 음력 10. 16. 이다. 진실규명대상자의 제적등본상 사망일과 장소는 김○길은 ‘1950. 11. 17, 학산면 상월리 전 천변’이고, 김○길을 제외한 18명은 ‘1950. 11. 17, 학산면 상월리 후등’이다. 『영암 피해자 현황조사(2007)』에는 ‘김○진 씨 일가족 4대 총 18명이 마을의 최대부호이자 사촌 동생이 경찰에 근무했다는 이유’로 희생당했고, ‘김○진 씨 모, 김○진, 김○진 씨 처, 김○렬, 김○렬, 김○진의 삼남, 김○진의 장녀, 김○진의 차녀, 김○재(김○제의 오기), 김○재의 처’ 등이 ‘영암군 학산면 상월리 마을 앞에서 1950. 11. 24.(음력 10. 15.)’ 희생당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제적등본과 기록, 제삿날이 일치하지 않으나 시신을 수습한 가족들이 사건 발생 전날 제사를 지낸다는 진술을 토대로 제삿날을 기준으로 희생 시기를 판단하였다.7)
상월리 신○운 희생 사건
진실규명대상자 신○운은 군인 가족이라는 이유 등으로 1950. 11. 29.(음 10. 20.) 상월리 유천마을 뒷산에서 빨치산에게 희생되었다. 마을 주민들이 신○운의 시신을 수습하였다.
신○운의 제적등본상 사망일과 장소는 ‘1950. 1. 10, 학산면 상월리 274’이고, 제삿날은 신○운이 끌려가서 희생된 날인 음력 10. 20.이다. 진술과 제삿날을 토대로 희생 시기를 판단하였다.
신○운의 동생 신○오(당시 14세, 신청인) 진술에 따르면 신○운의 동생 신○○가 15연대 소속 군인이었고 작전 중에 총을 맞아 광주보훈병원에 입원 중이었다.8) 당시 신○운의 부모는 집에 있고 신○운, 신○오 형제는 피신을 다녔다. 신○오는 산에 돌담을 쌓아 놓고 5일 정도 피신 생활을 한 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어머니로부터 형 신○운이 피신 도중 집에 들렀다가 빨치산에게 끌려가 희생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신청인 신○오는 해남, 진도, 완도에서 넘어온 빨치산들이 상월리 유천마을에 주둔하고 있었고, 신○운은 그들에게 희생되었다고 진술하였다. 참고인 김○문은 상월리에서 활동하던 지방 좌익이 많았고, 신○운이 지방 좌익에 의해 희생되었을 것이라고 진술하였다.
다음에 계속
1) 신청인 김○열 진술조서(2021.11.16.), 신청인 김○문 진술조서(2021.12.23.), 신청인 윤○진 진술조서(2021.12.22.); 신청인 김○○문은 ‘당숙모(박○산)가 열심히 일구어서 상월리에서 최고로 부자라고 할 정도로 잘 살았다’라고 진술했다(2021.12.23.)
2) 「경찰 경력사항 확인 협조요청」, 진실화해위원회 조사2과-500, 2022. 4. 13.; 「경찰 경력사항 확인 협조요청 관련 회신」, 경무기획정보화장비과-8516, 2022. 4. 18. 전남 경찰청에 조회한 결과 김○○이 1950.7.1. 영암 미암지서에 공개 채용되어 1952.6.4.까지 경찰에 재직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3) 진실화해위원회, 「영암군 민간인 희생 사건(2)」, 앞의 책, 2010, 343~344쪽. 1950. 10. 15. 국군 제11사단 20연대가 광주에 들어와 1951. 3. 31.까지 ‘전남지구전투사령부’로서 전남지역 ‘공비 토벌작전’을 벌였다. 20연대 3대대는 1950. 10. 30.부터 영암 일대에서 2022. 7. 1. ~ 2022. 12. 31. ‘공비 소탕작전’을 벌였고, 1951. 3월에도 영암지역 수색 작전에 투입되었다.
4) 신청인 김○문 진술조서(2021.12.23.) 신청인 김○문은 상월리 출신 최○○이 인공 때 활동하고 다니며 여러 사람을 죽였고, 김○길도 최○○이 죽였다고 진술하였다. 전쟁이 끝나고 김○○과 김○○(김○제의 아들)이 최○○을 유천마을로 끌고 와 죽여버린다며 구타하는 것을 김○문의 아버지가 말린 적이 있다고 한다.
5) 참고인 김○문 진술조서(2021.12.23.); 그 아기가 신청인 김○열이며, 김○열은 “아버지(김○길)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라고 진술했다.
6) 참고인 신○오 진술조서(2021.12.24.); 신청인 윤○진 진술조서(2021.12.22.); 신청인은 당시 끌려가는 모습 등을 목격한 신○오로부터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 있다고 진술하였다.
7) 신청인 김○문 진술조서(2021.12.23.); 신청인 김○문은 어머니의 생일이 음력으로 10월 16일이고 당숙모인 박○산 가족의 희생 날짜가 음력 10월 17일이기 때문에 어머니 생신을 못 챙기고 살았다고 진술하였다.
8) 신청인 신○오 진술조서(2021.12.24.); 신청인은 형 신○○가 군인이고 고모의 아들(김○호)이 경찰이었기 때문에 형 신○운이 희생당했다고 진술하였다. 학산면 용산리 ‘이○구 희생 사건’ 조사에서도 김○호가 ‘경찰’이었다는 진술을 확보하였으나 김○호의 경찰재직 기록을 찾지 못했다. 신○○의 군복무기록을 조회한 결과 병적 기록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신청인인 제출한 신○○의 전역증에 신○○의 군번이 ‘2703715’이었음은 확인된다. 「경찰 경력사항 확인 협조 요청」, 진실화해위원회 조사2과-500, 2022. 4. 13.; 「경찰 경력사항 확인 협조 요청 관련 회신」, 경무기획정보화장비과-8516, 2022. 4. 18; 「군복무사실 및 경력사항 확인 협조 요청」, 진실화해위원회 조사2과-521, 2022. 4. 18; 「병적 확인 요청에 대한 회신」, ****-6025, 2022. 4. 28.
이민정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