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어도 좋으니

영암군 민간인 희생사건(5) #03

이민정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2026년 06월 26일(금) 10:25

위 이미지는 생성형 AI를 활용하여 제작되었습니다



영암 민간인 학살 희생에 관한 자세한 얘기들을 좀체 찾아볼 수 없었다. 영암 민간인 희생사건 관련 결정문 안에 제법 세세한 당시 상황들이 기록돼 있었다. 보도자료로 어림짐작한 것보다 훨씬 참혹한 진실들을 마주하게 됐다. 적어도 결정문에 담긴 내용만큼은 전부 게재할 요량이다. 연재 내용은 결정문에서 발췌해 정리한 것이다.<편집자주>



영암면 학송리, 개신리 희생 사건

진실규명대상자 윤○덕(2다-7544, 신청인 박○례)

진실규명대상자 윤○덕(尹○德, 여, 1909년생, 가사)은 1951. 1. 1.(음력 1950. 11. 24.) 영암면 학송리 반송마을 야산에서 군인에 의해 희생되었다.

신청인 박○례(1940년생, 딸)의 진술에 따르면, 윤○덕은 영암면 학송리 287번지 반송마을에서 남편, 자녀들과 함께 거주하였다. 윤○덕의 남편 박○영은 집에 거의 들어오지 않아 생사를 알 수 없었다.1) 윤○덕은 남편이 집에 거주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딸 2명(신청인 박○례, 막내딸 박○○)과 함께 경찰서로 끌려가 조사를 받았다. 윤○덕이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는 동안 딸들은 밖에서 기다렸는데, 신청인은 그때마다 윤○덕이 구타당하는 소리 등을 들었다. 막내딸은 아파서 곧 집으로 돌아갔고, 윤○덕은 딸 박○례와 함께 약 1달 동안 경찰서에 갇혀 있다가 1950. 11.경 집으로 돌아왔다.

1951. 1. 1.(음력 1950. 11. 24.), 반송마을에 온 군인이 마을주민들에게 마을회관 앞으로 나오라고 했고, 윤○덕도 자녀들을 데리고 마을회관 앞으로 나갔다. 그날 군인은 학송리 부근 개신리에 갔다가 반송마을로 왔고, 마을주민 중 젊은 사람들을 골라 차에 태웠는데, 윤○덕의 자녀 3명(딸 1명, 아들 2명)도 태워졌다. 그러던 중 마을주민 김○○가 군인에게 귓속말을 하자, 군인이 윤○덕, 연산댁(성명 미상)을 붙잡아 반송마을 야산으로 끌고 갔다.2) 윤○덕은 끌려가면서 ‘나는 죽어도 좋으니 아이들은 살려달라’고 군인에게 애원하였고, 군인은 야산에 도착하자 윤○덕과 연산댁을 총살하였다. 윤○덕은 총을 맞고 쓰러지며 바위에 머리가 부딪혔고, 머리가 깨져 벌어진 채 사망하였다. 여동생을 업고 어머니를 따라가던 신청인 박○례가 그 모습을 모두 목격하였다. 박○례를 본 군인 중 1명이 박○례와 그 여동생도 죽이려고 하자, 다른 군인 1명이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냐면서 말렸고 이후 다른 곳으로 갔다.

신청인은 집으로 돌아가 이불을 챙겨가서 어머니 윤○덕의 시신에 묻은 피를 닦았고, 시신 위에 이불을 덮어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틀 정도 후 군인에게 끌려갔던 윤○덕의 자녀들이 돌아와 윤○덕의 시신을 수습하여 그 자리에 매장하였다. 그때가 겨울이어서 윤○덕의 피가 얼어 있었다. 10여 년이 지난 후 영암면에 있는 선산으로 이장하였다. 윤○덕의 제삿날은 음력 11. 23.이다.3)

참고인 박○자(1941년생, 이웃)의 진술에 따르면, 1951. 1. 1.(음력 1950. 11. 24.) 군인이 영암면 개신리 쌍정마을에서 주민들을 총살한 후 영암면 학송리 반송마을로 가서 반송마을 주민들을 총살하였다. 그날 희생된 쌍정마을 주민들, 반송마을 주민들의 제삿날은 음력 11. 23.이다.4)

윤○덕의 사망일이 제적등본에는 ‘1960. 3. 16. 본적지에서 사망(1962. 4. 10. 신고)’으로, 족보에는 ‘기(忌) 11월 23일’로 기재되어 있다.5)

이상의 내용을 검토한 결과 (1) 진실규명대상자 윤○덕의 시신이 학송리 반송마을 야산에서 신청인 및 자녀들에 의해 수습된 점, (2) 윤○덕이 군인에게 끌려가 총살되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고, 이후 윤○덕의 시신을 직접 수습한 신청인 박○례의 진술이 구체적인 점, (3) 윤○덕의 제삿날이 희생 전날인 음력 11. 23.인 점, (4) 같은 날 개신리 쌍정마을에도 군인이 와서 마을주민을 총살하였고, 이후 군인이 학송리 반송마을에 와서 마을주민들을 총살한 사실을 참고인 박○자가 인지하고 있는 점 등을 종합해 볼 때, 진실규명대상자 윤○덕은 1951. 1. 1.(음력 1950. 11. 24.) 영암면 학송리 반송마을 야산에서 군인에 의해 희생되었다고 판단된다.


진실규명대상자 박○도, 김○성, 박○식, 박○현, 박○칠(2다-2124-29, 신청인 박○자)

진실규명대상자 박○도(朴○道, 족보명 박○환, 남, 1883년생, 농사), 박○도의 부인 김○성(金○星, 여, 1897년생, 가사), 박○도의 아들 박○식(朴○植, 남, 1932년생, 농사), 박○도의 아들 박○현(朴○炫, 남, 1935년생, 농사), 박○도의 아들 박○칠(朴○七, 남, 1941년생) 등 5명은 1951. 1. 1.(음력 1950. 11. 24.) 영암면 개신리 쌍정마을 부근에서 군인에 의해 희생되었다.

신청인 박○자(1940년생, 박○도의 손녀)의 진술에 따르면, 박○도는 영암면 개신리 53번지 쌍정마을에서 부인, 아들 3명(박○식·박○현·박○칠), 손녀(신청인 박○자)와 함께 거주하였다. 신청인 박○자의 부모는 한국전쟁 발발 이전 병환으로 사망하였다. 1951. 1. 1.(음력 1950. 11. 24.) 아침, 박○도의 부인이 밥을 하고 있는데, 군인이 쌍정마을에 와서 마을주민들에게 도로로 나오라고 하였다. 신청인 박○자는 가족들과 함께 도로로 나가고 있었는데, 친구 강○○(고인)이 잠깐 와보라고 해서 친구에게 갔고, 가족들은 먼저 도로로 갔다. 마을주민들이 모이자 군인이 박○도 가족 5명을 도로 뒤쪽으로 끌고 갔고 이후 총소리가 한참 들렸다. 얼마 후 마을주민이 신청인에게 와서 가족들이 모두 사망하였다고 알려줬다. 신청인은 영암면 학송리 반송마을에 사는 고모 박○○의 집으로 가서 소식을 알렸고, 고모가 다른 고모들과 함께 가서 시신을 수습하였다. 박○도, 김○성, 박○식, 박○현의 시신은 한곳에 있었고, 박○칠의 시신은 약 300m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 시신은 도로 근처에 매장되었고, 나중에 강진군 성전면 오산마을에 있는 선산으로 이장되었다. 제삿날은 음력 11. 23.이다.

박○도 가족이 군인에게 총살된 이유는 같은 마을에 살던 군인 박 대위의 가족이 원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인민군 점령기에 박 대위의 어머니가 군인 가족이라는 이유로 반동 가족으로 몰리자, 박○도 가족이 박 대위의 어머니를 자신의 집에 며칠간 숨겨 주었는데, 그렇게 있다가는 다 같이 위험해질 것으로 보여 박 대위의 어머니를 집 뒷산에서 숨어 지내도록 하였다. 그래서 박 대위의 어머니는 피해를 입지 않았는데, 나중에 자신의 아들에게 자신이 박○도의 집에 있지 못하고 뒷산에서 숨어 지냈다는 이야기만 전달하였다.

참고인 박○례(1940년생, 학송마을 주민)의 진술에 따르면, 영암면 개신리 쌍정마을에 살던 박○자의 가족들이 군인에게 총살되었다. 같은 날 반송마을에 살던 참고인의 어머니 윤○덕도 군인에게 총살되었다. 신청인이 나중에 알고 보니 그날 군인이 영암면 개신리에 갔다가 학송리 반송마을로 왔던 것이었다.6)

참고인 오○○(1939년생, 이웃)의 진술에 따르면, 박○도 가족들이 군인에게 끌려갈 때 박○도의 아들 박○현이 군인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살려달라고 애원하였지만 결국 끌려가 희생되었다. 옆집에 살았던 참고인이 그 모습을 목격하였다.7)

이상의 내용을 검토한 결과 (1) 진실규명대상자 박○도 등 5명의 시신이 영암면 개신리 쌍정마을 도로변에서 박○도의 딸들에 의해 수습된 점, (2) 박○도 등 5명의 제삿날이 희생 전날인 음력 11. 23.인 점, (3) 박○도 등 5명이 군인에게 끌려가는 모습을 신청인 박○자가 목격하였고 이후 총소리가 들렸던 점, (4) 박○도 등 5명이 군인에게 끌려가는 모습을 참고인 오○○이 목격한 점, (5) 족보에 기재된 박○도의 사망일이 1950. 10. 22.로 실제 사망일의 음력 일자인 음력 11. 24.과 약 1달 차이로 근접한 점 등을 종합해 볼 때, 진실규명대상자 박○도 등 5명은 1951. 1. 1.(음력 1950. 11. 24.) 영암면 개신리 쌍정마을 부근에서 군인에 의해 희생되었다고 판단된다.

다음에 계속


1) 신청인 박○례는 어머니 윤○덕에 대한 진실규명신청서(2다-7544)를 제출한 이후 아버지 박○영에 대한 진실규명신청서(2다-17005)를 제출하였다. 박○영에 대해서는 조사 진행 중에 있다.
2) 한국전쟁 발발 이전, 마을주민 김○○와 윤○덕의 남편이 마을 일로 다툰 적이 있었고, 김○○의 아내는 연산댁과 다툰 적이 있었다고 한다.
3) 신청인 박○례 진술조서(2022. 10. 19.) 박○례는 주민등록상 1942년생이나 실제로는 1940년생이다.
4) 신청인 박○자 진술조서(2022. 9. 21.) 박○자는 2다-2124-29 사건의 신청인이다.
5) 『밀성박씨충헌공파족보(密城朴氏忠憲公派族譜)』권지2
6) 신청인 박○례 진술조서(2022. 10. 19.) 박○례는 2다-7544 사건의 신청인이다.
7) 『한국전쟁 집단희생 등 피해사실 구술채록사업 최종보고서』(2022. 12.) 중 오○○ 구술채록 녹취문(2022. 10. 18.)
이민정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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