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마 전하지 못한 밥 (1) 영암군 민간인 희생사건(5) #04 이민정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
| 2026년 07월 03일(금) 10: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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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 민간인 학살 희생에 관한 자세한 얘기들을 좀체 찾아볼 수 없었다. 영암 민간인 희생사건 관련 결정문 안에 제법 세세한 당시 상황들이 기록돼 있었다. 보도자료로 어림짐작한 것보다 훨씬 참혹한 진실들을 마주하게 됐다. 적어도 결정문에 담긴 내용만큼은 전부 게재할 요량이다. 연재 내용은 결정문에서 발췌해 정리한 것이다.<편집자주>
영암면 서남리 영암경찰서 희생 사건
1951. 1. 25.(음력 1950. 12. 18.) 영암경찰서에 감금되어 있던 사람들이 군서면 월곡리 호동마을 뒷산으로 끌려가 경찰에 의해 희생되었다.
진실규명대상자들의 시신이 모두 군서면 월곡리 호동마을 뒷산에서 수습된 점, 호동마을 뒷산에서 진실규명대상자의 시신을 직접 수습한 신청인 최○자의 진술, 진실규명대상자들의 제삿날이 희생 전날인 음력 12. 17.이거나 희생일인 음력 12. 18.인 점, 족보에 기재된 사망일이 1950. 12. 18.이거나 1950. 12. 20.인 점 등을 통해, 사건이 실재하였음을 확인하였다. 희생자는 문○금, 황○수, 정○채, 이○태 등 4명이다.
진실규명대상자 문○금(2다-1635-67, 신청인 최○자)
진실규명대상자 문○금(文○金, 여, 1915년생, 가사)은 영암경찰서에 끌려가 감금되었다가 1951. 1. 25.(음력 1950. 12. 18.) 군서면 월곡리 호동마을 뒷산에서 경찰에 의해 희생되었다.
신청인 최○자(1941년생, 딸)의 진술에 따르면, 문○금은 영암면 학송리 363번지 학송마을에서 시어머니, 남편, 자녀들과 거주하였다. 1951. 1. 초, 아침밥을 준비하던 문○금은 집에 찾아온 경찰에 의해 영암경찰서로 끌려갔다. 문○금의 남편은 이질에 걸려 집에 누워 있었고, 문○금은 딸 최○○(1948년생)을 업고 경찰을 따라갔다. 다음날 누군가가 최○○을 집으로 데려다 주었으나 문○금은 돌아오지 않았다. 며칠 후, 문○금의 시어머니가 최○자(신청인)에게 영암경찰서로 밥을 가져다주라고 해서 최○자가 영암경찰서로 갔지만, 문○금을 만나지는 못하고 경찰에게 밥만 전해주고 돌아왔다.
1951. 1. 26., 문○금과 함께 영암경찰서에 갇혀 있다가 풀려난 여자(문○금 또래)가 학송마을에 와서 ‘영암경찰서에 갇혀 있던 사람들이 1951. 1. 25.(음력 1950. 12. 18.)에 줄줄이 묶여 군서면에 있는 냇가로 끌려가서 경찰에게 총살됐다’라고 전해주었다. 소식을 들은 문○금의 시어머니와 시동생, 최○자가 군서면 월곡리 호동마을 뒷산에 있는 계곡으로 가서 문○금의 시신을 수습하였다.
문○금이 입은 윗옷에 피가 가득했고, 문○금의 시신 양옆으로 남자 시신이 10구 이상 있었다. 문○금의 시신을 수습하여 부근에 매장하였다가 나중에 문○금의 남편이 학송리에 있는 선산으로 이장하였다.
문○금의 제삿날은 음력 12. 17.로, 희생 전날이다. 신청인은 자신의 생일이 음력 12. 18.이라 어머니 문○금이 돌아가신 날을 평생 잊지 않고 살아왔다. 학송마을에서 이날 제사 지내는 집은 문○금의 집뿐이었지만, 영암면에서는 같은 날 제사 지내는 집이 많았다.1)
제적등본에는 문○금이 ‘1952. 9. 9. 본적지에서 사망(1955. 7. 3. 신고)’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2007년 피해자현황조사에 ‘문○○, 여, 30대, 영암읍 학송리, 1950. 10.경, 군서면, 경찰’로 기재되어 있다. 문씨 성만 기재되어 있지만, 학송리에 살던 30대 여성이고 군서면에서 희생되었다고 기재된 점으로 보아, 문○금과 동일인으로 보인다.
이상의 내용을 검토한 결과 (1) 진실규명대상자 문○금의 시신이 군서면 월곡리 호동마을 뒷산에서 신청인 등 가족들에 의해 수습된 점, (2) 신청인이 할머니, 작은아버지와 함께 문○금의 시신을 직접 수습하였고, 그곳에 있는 10구 이상의 시신을 목격한 점, (3) 문○금이 영암경찰서에 감금되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신청인이 직접 밥을 가지고 영암경찰서에 갔던 점, (4) 문○금과 함께 감금되었다가 풀려난 사람이 문○금의 집에 와서 문○금이 희생된 일자와 장소를 알려준 점, (5) 문○금의 제삿날이 희생 전날인 음력 12. 17.인 점 등을 종합해 볼 때, 진실규명대상자 문○금은 영암경찰서에 끌려가 감금되었다가 1951. 1. 25.(음력 1950. 12. 18.) 군서면 월곡리 호동마을 뒷산에서 경찰에 의해 희생되었다고 판단된다.
진실규명대상자 황○수(2다-6872, 신청인 황○섭)
진실규명대상자 황○수(黃○洙, 남, 1914년생, 농사)는 영암경찰서에 끌려가 감금되었다가 1951. 1. 25.(음력 1950. 12. 18.) 군서면 월곡리 호동마을 뒷산에서 경찰에 의해 희생되었다.
신청인 황○섭(1948년생, 아들)의 진술에 따르면, 황○수는 영암면 용흥리 484번지 새실마을에서 부모, 부인, 자녀들, 형제들과 거주하였다.
1951. 1. 24.(음력 1950. 12. 17.) 황○수는 황씨 일가 중에 좌익활동하는 사람이 있다는 이유로 영암경찰서로 끌려가 감금되었고, 황○수의 부인이 영암경찰서에 가서 황○수에게 먹을 것을 주고 왔다. 황○수가 끌려가고 약 3일 후에 경찰이 새실마을에 와서 황○수가 군서면 월곡리 호동마을 뒤에 있는 샘(현재 호동저수지) 부근에서 총살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소식을 들은 황○수의 부인과 동생, 마을주민이 호동마을로 가서 황○수의 시신을 수습하였다. 그날이 양력 1월 한겨울이라 매우 추운 날씨였는데, 황○수의 부인은 수많은 시신 속에서 자신이 직접 만든 황○수의 옷을 보고 황○수의 시신을 확인하였다. 군서면 마산리 오산마을 뒷산에 시신을 매장하였다가 나중에 그곳이 개간되면서 영암면 학송리 월송정마을 황씨 선산으로 이장하였다. 황○수의 제삿날은 끌려간 날 전날인 음력 12. 16.이다.
다음에 계속
1) 신청인 최○자 진술조서(2022. 5. 27.); 신청인 최○자 전화진술청취(2023. 8. 21.) 신청인은 아버지가 재혼하여 함께 살게 된 새어머니가 음력 12. 17.에 문○금의 제사를 지내줬고, 그때마다 자신의 생일 미역국도 끓여주었다고 진술하였다.
이민정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