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이 멈춘 마을, 삼호의 눈물 영암군 민간인 희생사건(1) #006 선호성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
| 2024년 04월 05일(금) 14: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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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 민간인 학살 희생에 관한 자세한 얘기들을 좀체 찾아볼 수 없었다. 영암 민간인 희생사건 관련 결정문 안에 제법 세세한 당시 상황들이 기록돼 있었다. 보도자료로 어림짐작한 것보다 훨씬 참혹한 진실들을 마주하게 됐다. 적어도 결정문에 담긴 내용만큼은 전부 게재할 요량이다. 연재 내용은 결정문에서 발췌해 정리한 것이다.<편집자주>
영암군 최서단부에 위치한 삼호면은 목포와 가까워 목포에 상륙한 해군에 의해서 수복작전이 시작되었다. 해군의 목포 상륙일은 10월 3일이다. 『한국전쟁사』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당시 목포지구에는 약 2만 명(북괴군 및 지방적색분자)이 집결되고 있었으며, 이들은 월출산, 국사봉 일대에 주둔하여 영암을 비롯한 장흥-함평-무안-영산포 및 나주 등지에 출몰하는 등, …(중략)… 또한 해군에서는 이러한 상황 하에서 서남해안의 교통의 요지인 목포에 해군경비부의 재설을 서두르고 아울러 목포 근방의 치안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진해지구 후방 요원들로 구성된 백부대(부대장, 백남표 소령)를 함정 편으로 목포에 파견하여 제20연대와 보조를 맞추어 잔적 섬멸에 전념하게 하였다.
1950년 10월 3일 목포에 진주한 해군(백부대)은 목포와 부근 일대, 월출산, 국사봉 등 영암지역의 공비소탕을 목적으로 목포경비부를 설치하였다.
1950년 10월 16일 목포 주둔 해군본부는 영암지역 파견대장 서복길과 고태순 삼호면장 등이 참가한 가운데 삼호면 수복을 위한 대책회의를 열었다. 그런데 이날 대책회의를 마치고 목포로 돌아가던 서복길이 매복해 있던 빨치산에게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1)
서복길(徐福吉)이 1950년 10월 16일 영암에서 사망한 사실은 전사기록물사본 에 의해 확인하였다.2) 당시 영암경찰서 소속 ○○○(당시 19세·경찰)의 진술이다.
“당시 해군이 목포에 주둔하고 있었다. 삼호에서 G23) 정보 계통으로 해군 1명이 지역 폭도들에 의해 죽었다. 그래서 해군 작전에 의해 상당히 많은 민간인이 죽었다.”
해군 서복길이 살해되고 이틀 뒤인 1950년 10월 18일 군경은 삼호면에 대한 군경합동 토벌작전을 벌였다. 목포경비부 소속 해군부대와 한청대원들은 목포에서 발동선을 타고 삼호면 용앙리 앙감마을로, 영암 경찰은 영암면 쪽에서 학산면 독천을 지나 삼호면 서창으로 진입하였다.
산호리 솟대봉4) 사건
1950년 10월 18일 오후 총소리가 울리자 산호리 대촌·중촌마을의 일부 주민들은 까치섬 장군바위 밑, 동굴 속으로 급히 몸을 숨겼다.
그러나 동굴에 숨어 있던 40여 명의 주민은 곧 군경에게 발각되었는데 이 중 김재근은 장군바위 앞에서 사살되었고5) 나머지 주민은 군경이 각자의 무명 허리띠를 풀도록 명령하여 이것으로 엮인 뒤 솟대봉으로 끌려갔다.6)
일부 군경은 대촌ㆍ중촌마을을 수색하여 붙잡은 주민들을 솟대봉으로 끌고 왔다. 주민들을 모아놨을 때는 오후 5시가 넘어 이미 어두워지고 있었다. 군경은 손으로 턱을 만져보아 수염이 길면 노인으로 간주해 여자, 아이들과 함께 내려 보내고 ‘젊은 남자’들만 남겼다. 전점호(당시 49세)는 수염을 기르고 다니다 그날 아침 수염을 깎았고 양종하(당시 50세)는 “쬐깐하고 머리를 싹 깎아 어려 보여서” 남겨졌다. ‘수염’의 여부는 이날 사살의 유일한 선별 기준이었다. 군경은 남긴 젊은이 40여 명을 사살하고 살아 있는 사람들을 칼로 찔러 확인살해하는 잔인함을 보였다.
솟대봉으로 가족과 함께 끌려갔던 김득수(당시 14세)는 “어린이, 여자, 노인은 내려가라고 했다. 그래서 어머니(임신)와 나와 동생은 내려오는데 총소리가 났다. 그래서 아버지(김정대·당시 38세)가 돌아가셨겠다 생각했다”고 진술하였다.
다음날 시신을 수습하러 솟대봉에 올라갔던 가족들은 지금은 등산로가 나 있는 사건현장의 참혹한 상황을 목격했다. 그날 두 형을 잃은 신청인 김부명(당시 16세)의 진술이다.
“다음날 시신을 수습하러 현장에 갔을 때 총을 설맞은 사람들은 아프니까 악쓰면서 돌아다녔을 것 아닌가? 그런 사람들은 칼로 입을 찢어놓아서 형제간에도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참혹했다. 그날 겁을 집어먹고 다시는 그곳에 가보지 않았다.”
솟대봉에서 희생된 주민들은 주로 산호리 중촌·대촌 주민이었다. 중촌마을 김재빈 가족의 경우, 4형제 중 장남 김재빈은 솟대봉에서, 차남 김재근은 장군바위 앞에서 사살되었고, 셋째 김재명7)은 도망쳐 살았으나 넷째 김재출8)은 솟대봉에서 총상을 입은 후 다음날 사망하였다. 김맹용·김개근 형제와 배폰담9)도 솟대봉에서 사살되었다. 또한 중촌마을 주민 중 사촌간인 정복기·정조관10)이 솟대봉에서 사살되었다. 대촌마을에서는 숙질간인 진성문·진우실11)과 윤보현이 솟대봉에서 사살되었다. 이들의 시신은 모두 수습되었다.
이날 산호리·용앙리 수색과정에서 군경에게 체포된 주민 10여 명은 현재 삼호면사무소가 있는 용앙리 중앙촌에서 사살되었다. 희생자 중 신원이 확인된 사람은 김성춘·박흥호·윤자근 3명이다. 그들의 시신은 모두 거적에 덮여 있어 가족들이 수습하였다.
솟대봉 현장에서 생존한 박길호(당시 18세)는 “부대원 중에 목포에 있을 때 알고 지낸 ○○○135)(해군 소속)을 만나 나는 살았다. 솟대봉에서 철수하는 부대를 따라 갔는데 군인들은 앙감에서 배를 타고 용당에 가서 1박을 한 후 다음날 목포로 빠졌다”고 진술하였다.
다음에 계속
1) 참고인 ○○○ 진술조서(2008.6.26.), 통화보고서(2008.9.27.). 앙감 주민 ○○○(당시 27세)은 “1950년 10월 16일 서대장이 용두리에서 목포로 복귀하려는데 빨치산이 서대장을 죽였다”고 진술하여 서대장의 사망날짜를 특정하였다.; 참고인 ○○○ 진술조서(2008.6.4.). 난전리 도음전 주민 ○○○(당시 21세)은 서복길이 해군 정보과 장교라고 이름과 소속을 특정하였고 대촌 주민 ○○○(당시 14세) 도 서복길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들 참고인의 진술을 토대로 서복길의 신원을 조사하였다.
2) 『자료조회결과회신』(대양해군 보존과-3090, 2008.9.4.); 『전사기록물사본의뢰송부』(광주지방보훈청 보상과-8137, 2008.10.28.). 『서복길 군번부』와 『전사확인증』을 통해 서복길은 해군본부 소속 계급 해2조로 참전, 1950년 10월 16일 영암지구에서 사망하였음을 확인하였다.
3) 참고인 ○○○ 진술조서(2008.8.14.). 목포지구 해군 G2 영암파견대 소속 ○○○(당시 18세·학도병)은 “목포지구 해군 G2 영암파견대는 1950년 10월에 창설, 51년 4월경에 수복이 되고 평정이 되어 해산하였다. 정보대 임무는 선무공작, 적정파악, 소병력 기습작전, 영암경찰서와 목포경비부의 지원을 받아 대규모 작전을 했다”고 진술하였다.
4) 현재 지도에는 ‘두리봉’, 실제 표식에는 ‘솔매봉’이라 표기되어 있다. 주민들은 ‘솟대봉’, ‘솔대봉’, ‘두리봉’ 등이라 불렀다. 이 보고서에서는 ‘솟대봉’으로 통일하였다.
5) 참고인 김순호 통화보고서(2008.9.23.). “김재근은 장군바위에서 끌려 나와 4형제(김재빈·김재근·김재명·김재출)가 다 죽게 되어서 사정을 하다 오히려 장군바위 앞에서 바로 사살되었다고 들었다.”; 신청인 박야홍 통화보고서(2008.9.23.); 신청인 김인호 진술조서(2008.3.24.).
6) 참고인 전문철 진술조서(2008.6.4.); 참고인 고정식 통화보고서(2008.9.23.); 참고인 박길호 통화보고서(2008.9.23.). “군경이 양쪽에서 압축하고 들어오니까 나나 마을사람들은 장군바위로 피신을 갔다. 그러나 군경에게 발각되어 솟대봉으로 끌려갔다.”
7) 신청인 김경호 진술조서(2008.3.27.) “총을 쏴서 죽이려고 하는데 아버지(김재명)는 막 구르면서 도망을 치셨단다. 그때부터 아버지는 ‘번개’라고 소문이 났다.”
8) 신청인 김재회 진술조서(2008.3.26.). “그날 저녁에 솟대봉에 가보니 사촌 동생 김재출이 총을 맞고도 살아 있었다. 총 맞은 배 안 쪽에서 꿀렁꿀렁 하는데 병원에 가볼 수도 없고 김재팔(김재출 동생)하고 둘이서 집으로 데리고 왔는데 결국 다음날 아침에 죽었다.”; 제적부에 김재출은 없고 김성문의 4남, 1929년생 김재훈으로 기록되어 있다. 신청인 김경호는 김재출이 김성문의 4남으로 23세라고 진술하였다. 신청인·참고인 모두 김재출로 진술하여 김재출로 통일하였다.
9) 신청인 김부명 진술조서(2008.3.25.). “내가 다음날 아침 솟대봉에서 형들(김맹용·김개근)과 배폰담의 시신을 수습해서 함께 야지에 묻어두었다.”; 신청인 김재회 진술조서(2008.3.26.); 참고인 이한동 통화보고서(2008.9.23.); 참고인 고정식 통화보고서(2008.9.23.); 김순호 통화보고서(2008.9.23.).
10) 참고인 정옥순 통화보고서(2008.9.24.). “윗집 박치옹 할아버지가 두리봉(솟대봉)으로 잡혀갔다가 돌아오셨는데 ‘조관(오빠)이가 세상을 떴다’ 그러셔요. 큰댁 오빠 정복기도 죽어서 아버지랑 큰어머니, 동생이 올라가서 2사람의 시신을 수습해왔다.”; 신청인 정순곤 진술조서(2008.3.25.); 참고인 정관준 통화보고서(2008.9.23.).
11) 신청인 진평기 진술조서(2008.4.14.); 참고인 진양단 진술조서(2008.6.5.); 참고인 진우섭 통화보고서(2008.9.18.). “큰매형 고길수(진양임 누나의 남편)가 총을 맞았는데도 겨우 살아 나와서 소식을 알려주었다. 형(진우실)과 작은아버지(진성문)가 돌아가셨다. 칼로 얼굴을 파서 피가 엉겨 있던 것을 보고 어머니가 며칠간 밥도 못 자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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