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월 18일 냉천마을, 잊혀진 학살의 기록 (2) 영암군 민간인 희생사건(1) #012 선호성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
| 2024년 06월 07일(금) 14: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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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 민간인 학살 희생에 관한 자세한 얘기들을 좀체 찾아볼 수 없었다. 영암 민간인 희생사건 관련 결정문 안에 제법 세세한 당시 상황들이 기록돼 있었다. 보도자료로 어림짐작한 것보다 훨씬 참혹한 진실들을 마주하게 됐다. 적어도 결정문에 담긴 내용만큼은 전부 게재할 요량이다. 연재 내용은 결정문에서 발췌해 정리한 것이다.<편집자주>
마을 수색을 끝낸 군경은 주민들을 마을 앞 도로에 집결시켰다. 군경은 남녀를 구분해 따로 앉혀놓고 ‘인민공화국 만세’를 부르게 했다. 그러고 나서 군경은 남자를 먼저 사살한 뒤 여자들을 사살했다.1) 이날 부모(김내문·이만례)와 동생을 잃은 김순례(여·당시 11세)는 당시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도로에 사람들을 줄 세워놓고 ‘인민공화국 만세’를 외치라고 했다. 엄마가 ‘대한민국 만세’ 하니까 ‘너희가 뭔 대한민국 국민이냐’라고 하면서 총을 막 쏘았다. 나는 엄마 치마 속에 숨어 살았다.”
마을 앞 도로에서는 김내문 가족2), 이봉춘 가족3), 박이순(여·당시 42세)4), 김정자 자매, 윤채복 가족5), 조판종 가족6), 김학준 부녀7), 박맹임 가족8), 김순이(여·당시 33세) 가족9), 조병조 머슴 형제 2명10), 채처례 가족 3명11) 등이 사살되었다. 생존자들은 시신 아래 숨어 살아남았다고 진술하였다.
현장에서 살아난 김황기(당시 8세)는 “마을 앞 도로에서 큰누나(김정자·여·당시 15세)가 내 위에 엎드려 나를 보호하고 누나는 총탄에 맞아 죽었다. 둘째누나 김양자(여·당시 12세)도 마을 앞 도로에서 죽었다”고 진술했다.
군경은 살아남은 주민을 살려준다고 하면서 냉천마을 앞산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그러나 이들 주민들은 또다시 군경의 총격을 받게 됐고 일부 주민은 이때 사살됐다.12) 현장에서 생존한 김남례(당시 13세)는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소대장이 살려준다고 해서 따라갔는데 대장이 ‘뭐 하러 데려왔냐. 죽여버리지 않고.’ 하니까 소대장이 저쪽으로 가버리더라. 우리보고 ‘네 년들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는데 우리가 집이 다 불타서 안 내려가고 있으니까 김금석 구장의 뺨을 막 때렸다. 김금석씨 노부모가 내 아들을 왜 때리냐고 가로막으니까 김금석씨가 내뺐다. 그 사람이 내빼기 시작하니까 사람들이 웅성웅성 도망가기 시작했다. 군인들이 따라오면서 뒤에서 총을 막 쏴버렸다. 우리 식구들은 그때 산에서 도망쳐 내려오면서 다 죽고 나만 하루 종일 눈보라 치는 논두렁에 엎드려 있다가 살아남았다.”
김금석의 가족은 김금석·김삼석·김순덕 3남매를 제외한 부모(김승열·안맹금)와 김금석의 부인, 김금석의 자녀 4명, 김삼석의 부인(임신) 등 가족 8명이 모두 산에서 도망쳐 내려오다 사살됐다. 강명순(여·당시 38세)과 강명순의 자녀 4명도 이때 사살됐다.13) 하은철(당시 21세)과 윤영일(당시 16세)도 냉천마을 앞산 중턱에서 사살됐다.14)
이날 김석단(당시 53세)15), 이성례16), 김철귀 부녀도 사살됐다.
당시 빨치산으로 활동하다가 냉천마을 주민들의 시신을 수습한 김정두(당시 21세)의 진술이다.
“나는 그때 입산했는데 냉천마을에서 죽은 사람들을 묻어줄 사람이 없다고 나와 친구들 셋을 뽑은 뒤 비무장 유격대 30명을 인솔해서 구덩이를 파게 했다. 그날 묻은 시신이 100여 구가 넘었다. 마을 앞 삼밭에 묻었다. 한 여자가 애기를 보듬고 죽었는데 아무리 해도 뗄 수가 없어서 그냥 묻어주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너무 처참했다.”
희생자들의 시신은 가족·친지 등에 의해 일부 수습됐으나 한꺼번에 묻히는 바람에 나중에 가족들이 시신을 수습하려 했으나 서로 뒤엉켜 분간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제적부에 정확한 사망일자가 기록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가족 단위로 여러 명이 같은 날짜에 사망했다고 신고된 경우가 있어 한날 한 가족이 몰살되었음을 알 수 있다.17)
당시 냉천마을 30∼35호 중 피해자가 있다고 언급된 가구 수만 27호에 130여 명이다.18) 생존자 이이천(당시 11세)은 “그날 살아남은 주민이 15명에 불과했다”고 진술했다. 대부분의 가옥은 불에 타버렸다.
이날 냉천마을에서 희생된 사람 중 신원이 밝혀진 수는 75명이었다. 이 중에는 12세 이하의 어린이가 25명 포함되어 있었고, 50대 이상의 노인도 12명이었다. 임산부 3명을 포함한 여성이 44명으로 희생자의 59%를 차지했다. 가족 단위 희생자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19) 반면 20∼40대 남자는 9명으로 12%에 불과했다.
다음에 계속
1) 신청인 하영철 진술조서(2008.4.22.). “모두 죽게 되었으니까 사람들이 울부짖고 있는데 2∼3m 앞에서 남자를 먼저 쏴서 죽였다. 나는 몸이 작은 편이라 여자들 틈 속으로 들어가 앉아버렸다. 서로 부둥켜안고 있는데 여자들을 쏘기 시작했다. 이쪽에서 쏘면 반대쪽으로 밀리고 그렇게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고 그랬다. 그 통에 나는 쓰러져 한동안 눈밭에서 시체에 짓눌린 채 누워 있었다.”
2) 참고인 김순례 통화보고서(2008.9.25.). “한 달 된 남동생을 집에 놔두고 나왔다가 집이 불타서 애기가 불에 타 죽었다. 도로 앞에서 큰아버지(김춘기)도 시신 속에 쓰러져 있는데 우리 아버지(김내문)가 “형”하고 부르니까 큰아버지는 안 죽은 줄 알고 군인이 도로 와서 죽일까봐 아버지에게 “가만 있거라, 참아라” 하고 나직이 말하셨단다. 밤이 되서 얼핏 댓님을 보니 우리 아버지인 것 같아 시신을 들춰 보려는데 갑자기 총소리가 나서 도망가 버리셨단다. 나중에 아버지 시신을 찾으려 했는데 못 찾겠더라고 그러셨다.”; 참고인 조일남 통화보고서(2008.9.25.).
3) 참고인 이이천 통화보고서(2008.9.26.); 참고인 이이순 통화보고서(2008.9.26.). “식구들이 다 마을 앞 신작로에서 죽었다. 아버지(이봉춘) 발목에 짚을 놔두고 그냥 도망갈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아버지, 할머니(최근덕) 시신 있는 곳을 내가 삼촌한테 알려주었다. 삼촌이 시신수습할 때 보니 모친은 젖먹이 남동생을 업은 채로 돌아가셨고 여동생은 할머니 옆에 있었다고 했다. 친정으로 피난 온 고모 아들(당시 3세)도 총에 맞아 죽어 포대기로 싸서 묻었다.” 이이순(여·당시 8세)은 이때 현장에서 총상을 입었다. “김순례 엄마(이만례)가 애기를 집에 놔두고 나왔는데 그 양반의 얼굴을 쏘았다. 나는 그 치마 속에 숨었는데 따뜻한 것이 흘러내렸다. 총알이 내 머리도 스쳐 지나갔다.” 최근덕(이봉춘의 모친)의 제적부에는 “1950년 11월 10일 사망”으로 실제사망일(음)과 일치한다.
4) 신청인 하영철 진술조서(2008.4.22.). “어머니는 한길에서 뭉텅이로 몰려 있다가 사살되었다.”; 참고인 김병선 통화보고서(2008.4.17.).
5) 신청인 윤영균 진술조서(2008.2.29.). 윤영균(당시 13세ㆍ윤채복의 조카)은 “부모와 함께 시신을 찾으러 냉천마을에 가서 숙부(윤채복)와 윤갑임의 시신을 마을 앞에서 찾았다”고 진술하였다.; 신청인 윤갑순 통화보고서(2008.9.29.); 참고인 김남례 진술조서(2008.11.5.).
6) 참고인 조일남 통화보고서(2008.9.25.). “부모님, 누나 2명, 여동생, 남동생이 마을 앞 도로에서 다 죽었다. 나만 살았다. 하지만 시신은 못 찾았다.”
7) 참고인 김정임 통화보고서(2008.9.24.); 신청인 윤영균 진술조서(2008.2.29.). 김용금의 제적부에는 “1951.11.10. 사망”으로 되어 있어 연도는 다르나 실제사망일의 음력 날짜와 일치한다.
8) 참고인 김삼차 통화보고서(2008.9.30.); 참고인 강연례 통화보고서(2008.9.30.). 박맹임은 제적부에 “1950년 11월 10일 사망”으로 기록되어 실제사망일(음력)과 일치한다.
9) 참고인 김순례 통화보고서(2008.9.25.). “큰집 식구, 고모네 식구 다 한동네 살았는데 큰집에서는 큰아버지(김춘기)가, 우리 집에서는 내가, 고모(김호녀ㆍ조판종의 처)네 식구 중에선 오빠(조일남)만 살아남았다. 큰아버지 김춘기가 큰엄마(김순이) 시신은 도로가에서 수습했고 딸 3명의 시신은 찾아 어디다 묻었다고 했으나 큰오빠(김금순)의 시신을 못 찾아 새로 들어오신 큰엄마가 꿈에 오빠가 나와 자꾸 아파서 굿을 했었다. 그날 큰집 식구 6명, 우리 집 3명, 막내삼촌(막기ㆍ미혼), 그리고 고모네 식구 6명이 몰살했다.”; 참고인 김남례 진술조서(2008.2.27.). “3남매가 나란히 엎드린 채 죽어 있던 것을 아저씨(김춘기)가 지게에 짊어지고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그날 김춘기 가족은 부인하고 아이들하고 7명이 죽은 것으로 알고 있다.”; 김두호 통화보고서(2008.9.25.)
10) 참고인 김남례 진술조서(2008.2.27.). “앞산으로 올라가면서 보니 우리 집 일꾼 조병조하고 그의 형 조병열은 논물에 이미 죽어 있었다.”
11) 참고인 백형기 진술조서(2008.2.27.). “피난 갔다가 돌아오니까 동생 형열(형진이와 쌍둥이), 형심(여)이가 살아남은 마을주민과 막천을 치고 불을 쬐고 있었다. 동생들 말을 듣고 논바닥에서 어머니(채처례)와 동생 형임, 형진이의 시신을 수습해 매장했다.”; 신청인 윤영균 진술조서(2008.2.29.).
12) 참고인 김순례 통화보고서(2008.9.25.). “시신 속에 쓰러져 있는데 ‘산 사람은 나와라’ 해서 또 나갔다. 산꼭대기로 데려가서는 도로 내려가라고 밀어내서 내려오는데 뒤에서 총을 쏴버렸다. 똑바로 내려오면 총을 맞았을 텐데 나도 모르게 죽지 않으려고 골짝으로 내려오다 눈밭에 엎어졌다. 컴컴해져서야 마을로 내려와 대밭에 숨었다. 부모가 다 죽었지만 울면 나 있는 걸 알고 와서 죽일까봐 울지도 못했다.”
13) 참고인 김순덕 통화보고서(2008.9.25.). “나는 마을 앞 도로에서 총탄이 쏟아지는 속에 살았다. 그런데 살려준다고 올라가자고 해서 마을 앞산 꼭대기까지 올라갔는데 다시 내려가라고 해놓고 뒤에서 총을 쏘았다. 동생 김삼석의 처(임신 5개월)는 나하고 손잡고 내려오다 총알에 맞았다. 어머니(당시 63세)는 산꼭대기에서 죽었고 아버지(당시 63세)는 엉금엉금 내려오다가 총에 맞았다. 큰언니(오빠 김금석의 부인)는애기들을 안고 산골짜기 파진 곳에 숨었는데 거기에다 총을 쏴버렸다. 큰조카(김형규·당시 19세)는 앞산 골짜기로 도망치다 사살되었고 오빠(김금석)는 허벅지와 손에 총상을 입어 손이 떨어졌지만 유격대가 치료해줘서 살았다.” 참고인 김남례 진술조서(2008.2.27.); 참고인 김황기 진술조서(2008.5.1.); 나춘자 통화보고서(2008.3.4.); 참고인 이이천 통화보고서(2008.9.26.); 참고인 조일남 통화보고서(2008.9.25.).
14) 신청인 하영철 진술조서(2008.4.22.); 참고인 김병선 진술조서(2008.4.17.); 신청인 윤영균 진술조서(2008.2.29.). “형(윤영일)의 시신을 도가재에서 찾았다. 사건 다음날 바로 부모를 따라 시신을 찾으러 갔는데 빨치산들이 위험하다고 막았다. 결국 5일 정도 지나서야 시신을 수습할 수 있었다. 냉천마을은 지긋지긋하다. 시체를 너무 많이 봐서 내가 넋이 나갔다. 사람이 무 잘리듯 잘려서 구덩이에 파묻혔으니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놀라 뛴다.”
15) 참고인 오융부 진술조서(2008.5.1.). “할머니(조부 오인관의 작은 부인)가 냉천마을 조그만 오두막에서 혼자 사셨다. 할머니가 자기는 손도 없고 가족도 없이 혼자 사는 불쌍한 사람이라고 살려달라고 애원했는데도 쏘아버렸다고 그날 냉천마을에서 부상을 입고 살아난 분이 알려주었다.” 냉천마을 주민 참고인 백형기가 전화통화로 이를 확인해주었다. 오융부의 가족은 연산마을에 거주하였다.
16) 참고인 김삼만 통화보고서(2008.9.26.). “어머니는 소식 듣고 온다고 먼저 나갔다가 죽고 말았다. 군인이 집에 와서 소랑 우리를 끌고 갔다. 나는 막둥이동생(당시 3세)를 업고 10살 동생 손을 붙들고 할머니는 노인이라 자빠지면서 눈밭을 가는데 군인이 앞 사람을 부르면서 보내주면 어떻겠냐고 물으니까 공포를 쏘면서 빨리 돌아가라고 했다.”; 신청인 윤영균 진술조서(2008.2.29.).
17) 윤채복 일가족 5명과 윤채복의 조카 모두 6명은 “1950년 12월 7일 오전 11시 사망”·김창조 일가족 4명과 김창조의 조카 2명 모두 6명은 “1950년 11월 7일 오전 11시 사망”·김승열, 안맹금 부부는 “1950년 11월 7일 사망”·김춘기의 처와 자녀 3명, 김춘기의 동생 김내문 부부 모두 6명은 “1960년 5월 7일 사망”·조판종 일가족 4명 모두 “1950년 5월 8일 사망”으로 기록돼 있다.
18) 참고인 김남례 진술조서(2008.2.27.). 김남례가 제출한 냉천마을 희생자 명단에 의하면 김창조 가족 6명·백원종 가족 3명·윤채복 가족 7명·김판길 가족 2명·나대평 가족 3명·조별종 가족 6명·하복진 가족 3명·이봉춘 가족 6명·김남수 가족 3명·김춘기 가족 7명·김창석 가족 2명·조병열 가족 2명·김철귀 가족 2명·이방올 가족 5명·박용기 가족 4명·김억량 가족 6명·박기병 가족 6명·김금석 가족 9명·윤채문 가족 1명·김일봉 가족 6명·최동열 가족 4명·김상수 가족 9명·김내문 가족 3명·영보 최씨 가족 3명·윤봉영 가족 2명·김만두 가족 4명·김천두 가족 1명 등 희생자는 총 125명이다. 가족 대표는 호주이며 희생자인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하영철 진술조서(2008.4.22.) “당시 냉천마을은 35여 호 가구였다. 127명이 죽었다는 말을 들었다.”
19) 75명 중 2명을 제외한 희생자가 모두 가족 단위 희생자로 19가족이었다.
선호성 기자 opennews@open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