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문화재 배제하고 특혜 논란…영암 가야금산조에 무슨 일이? 선호성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2024년 06월 12일(수) 20:04

국가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보유자 양승희 명인과 전남 영암군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20여 년간 가야금산조의 맥을 잇고 영암을 ‘가야금 본향(本鄕)’으로 이끈 양 명인이 영암군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사태의 발단은 민선 8기 우승희 영암군수 취임 이후 양승희 명인에 대한 각종 지원 중단과 배제 조치에서 비롯됐다. 전수교육 지원 중단, 명예관장직 해촉, 개인 소장품 반출 등이 대표적이다. 영암군은 “예산 투입 대비 성과 미흡”을 명분으로 내세웠다(영암군 입장문, 2024.6.11.).


반면 양 명인 측은 100여 명의 전수자 배출, 무형문화재 지정, 전수교육관 건립 등의 성과를 근거로 “가야금산조 전승에 막대한 기여를 했다”고 반박했다(양승희 명인 기자회견, 2024.6.12.). 나아가 “김창조-김죽파-양승희로 잇는 가야금산조 정통 계보를 단절시키려 한다”며 영암군의 처사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에 영암군은 “가야금산조 진흥이라는 대의에 인간문화재 개인의 이해관계가 우선할 순 없다”는 입장이다(영암군 입장문, 2024.6.11.). 양 명인에게 집중됐던 지원을 다양한 전승자에게 배분함으로써, “건전한 문화 생태계 조성”에 나선다는 논리다. 일련의 조치들이 “공정한 절차에 의한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사실은 이렇습니다' 영암군 반박 자료, 2024.6.11.).


쟁점 1 : 영암군의 지원 중단과 배제 조치, 타당한가?

영암군이 내세운 ‘성과 미흡’이란 명분은 설득력이 약해 보인다. 양 명인이 이뤄낸 100여 명의 전수자 배출, 무형문화재 지정, 전수교육관 건립 등은 가야금산조 전승에 지대한 공헌으로 평가받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2019년 제정된 ‘가야금산조기념관 관리·운영 조례’는 “김창조·김죽파·양승희로 이어지는 가야금산조 계승·발전”을 명시하고 있다. 당시 영암군의회 회의록에 따르면 조례 제정은 “가야금산조 창시자 김창조, 인간문화재 김죽파, 인간문화재 양승희로 이어지는 가야금산조를 문화예술 유산으로 계승 발전시키고 기념관의 효율적인 관리 운영을 도모코자” 하는 취지였다(제268회 영암군의회 자치행정위원회 회의록, 2019.9.20.). 불과 3년 만에 행정 기조가 크게 변화한 배경에 대한 소명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 제268회 제1차 자치행정위원회 회의록

쟁점 2 : 정선옥 예술감독 지원을 둘러싼 특혜 의혹

양승희 명인의 지위 약화와 함께 정선옥 예술감독에 대한 지원이 꾸준히 이어져 온 정황이 포착되면서 특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양 명인에 따르면, 정 감독은 과거 자신의 제자로서 “5년간 해야 하는 이수 과정을 1년 만에 끝내달라” 요구한 바 있으며, “자신과 우승희 군수가 오래전부터 친분이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양승희 명인 인터뷰 녹취록, 2024.6.12.).

실제 지난해 우 군수 취임 100일 토크콘서트에는 정 감독의 공연이 이뤄졌고, 영암 지역 행사에 정 감독의 팀이 꾸준히 참여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 정 감독이 이끄는 (사)한국전통문화연구회 영암지부는 현재 상주단체로 지정돼 월 1회 지역민 대상 가야금 교육을 진행 중이며, 이 과정에서 영암군의 예산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사실은 이렇습니다’ 영암군 반박 자료, 2024.6.11.).

나아가 정 감독이 운영하는 사설 교습소가 ‘트로트 가요센터’ 건물에 자리 잡은 사실도 특혜 의혹에 힘을 싣고 있다. 영암군은 “합법적 상주단체 활동으로서, 공모 과정을 거쳐 문화재단 지원사업에 선정된 것”이라고 해명했으나(‘사실은 이렇습니다’ 영암군 반박 자료, 2024.6.11.), 양 명인 퇴출 이후 정 감독에게 각종 특혜가 집중된 정황상, 의혹을 말끔히 해소하기엔 역부족으로 보인다.

▲ ‘사실은 이렇습니다’ 영암군 반박 자료

쟁점 3 : 전승 단절 위기, 누가 책임질 것인가?

가장 우려되는 지점은 가야금산조 전승 기반의 훼손이다. 양승희 명인의 전수교육이 중단되면서 국립무형유산원에 등록된 100여 명의 전수자들이 자격을 상실할 위기에 처했다. 특히 올해 4명의 이수자 배출을 앞둔 상황에서 빚어진 일이라 파장이 더욱 크다(양승희 명인 기자회견, 2024.6.12.). 이대로라면 전수교육관 건립, 다수의 전수자 배출 등 그간의 성과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판이다.

정선옥 감독의 전수교육으로는 가야금산조의 전형을 잇기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설득력 있게 들린다. 그의 교습소에서 배운 10여 명의 전수자가 자격을 인정받지 못한 사례가 이를 방증한다. 결국 영암의 130여 명에 달하는 국악 꿈나무들의 앞날이 막막해질 판이다.

여기서 영암군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김창조 가락이 끊어지는 건 영암의 수치를 넘어 대한민국의 손실”이라는 양승희 명인의 호소가 공허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야금산조의 맥을 잇고 지역 문화 브랜드 가치를 높인 장본인을 배제한 채, 그 위상마저 훼손하는 행태에 대해 도덕성을 따져야 한다.

역대 영암군수들은 오랜 기간 인간문화재의 권위와 자존심, 예술혼을 존중해 왔다. 그런데 민선 8기 들어 돌연 그 기조가 사라졌다. ‘가야금 산조의 메카’로 영암의 이름을 높인 주역에 대한 예우가 실종된 것이다. 군은 ‘제도에 따른 행정’을 강조하지만, 적어도 무형문화 분야에선 인간문화재와의 소통과 협력이 최우선돼야 한다. 양 명인을 일방적으로 배제하는 행태는 결코 ‘가야금산조의 진흥’과 양립할 수 없다.


한편, 양승희 명인은 지난 5월 27일 우승희 영암군수를 ‘무형문화재보존 및 진흥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고소했고, 6월 11일 오후에는 목포경찰서에 출석해 고소인 진술을 마쳤다. 이어 12일 오전 영암군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영암군의 일련의 조치에 대한 강력 대응 방침을 밝혔다(양승희 명인 기자회견, 2024.6.12.).

이 과정에서 영암군청 군정홍보과 이 모 팀장이 기자회견 후 양승희 명인과 기자단의 대화 내용을 기자들 뒤편에서 사전 동의 없이 몰래 녹음한 정황이 포착되기도 했다. 공개된 장소였다 하더라도 녹음 당사자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녹음 행위는 통신비밀보호법상 위법 소지가 있는 만큼, 이는 영암군 행정의 신뢰성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는 사안이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