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이후에도 워라밸이 필요하다?!
영암열린신문 opennews@openmedia.co.kr
2025년 10월 24일(금) 11:59

정년 또는 은퇴 이후에도 일하는 사람이 많다.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일터로 나오는 사람도 있고, 노는 게 힘들어 일거리를 찾는 사람도 있다. 은퇴 이후 일보다는 즐기고 싶은 마음을 갖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동안의 노고에 대한 보답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에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이에 은퇴 이후에도 워라밸이 필요한 이유를 살펴본다.


은퇴 후 다시 일터로 나오는 이유

“아, 좀 놀고 싶은데 놀 시간이 없네요. 하하.” 정년 후 필자와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하는 어느 60대의 하소연이다. 이 사람을 포함해 6070세대 10여 명이 같은 일을 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무엇 때문에 놀고 싶은데 일터에 나왔을까?

필자가 생각하기에 6070 중장년이 은퇴 이후 다시 일터로 나오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사회적 활동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100세 시대를 맞이하여 60대에 은퇴하면 남은 인생이 생각보다 길게 느껴지는 가운데, 집을 주 활동 무대로 하기에는 육체적으로 너무 젊다. 비록 은퇴는 했지만 사회적 공간에서 뭔가를 하고 싶은 욕망이 충만한 것이다. 둘째는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은퇴 이후에도 발휘하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다. 이들이 경제활동 무대에서 퇴장하는 것은 사회적으로는 큰 손실이고, 개인적으로는 갈등의 씨앗이다. 갈등에는 개인적 갈등과 가족 내 갈등이 있다. 개인적 갈등은 일의 계속과 놀이 추구 사이의 충돌이고, 가족 내 갈등은 주로 배우자와 벌이는 눈치 싸움이다.

늘 출근하던 사람이 어느 날 집에 둥지를 틀게 되면 부부간 갈등에 불꽃이 튄다. 이는 필자의 생생한 경험담이기도 하다. 셋째는 소소하지만 용돈이라도 벌어보고 싶다는 심리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한 용돈의 논리를 넘어선다. 은퇴했다고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사그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 정도는 줄어들더라도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망은 삶이 다하는 날까지 사라지지 않는다.


한계효용의 법칙

필자가 만나본 은퇴 직전의 사람 10명 중 8~9명은 다리에 힘 빠지기 전에 열심히 놀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다리에 힘 빠지면 놀고 싶어도 놀 수 없다는 논리를 전개한다. 이런 사람 중 실제로 그렇게 하는 사람은 열에 1~2명뿐이다. 왜 그럴까? 위에서 살펴본 세 가지 이유와 함께 즐겁게 노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돈만 있다고 즐겁게 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함께 놀아줄 사람이 있어야 하고, 노는 데에는 어느 수준 이상의 기술도 필요하다. 이런 준비 없이 은퇴 이후 다리에 힘 빠지기 전까지 열심히 놀겠다는 상상은 실현되기 어려운 망상에 가깝다. 그렇다고 은퇴했는데 그 이전처럼 열심히 일하는 것은 은퇴의 의미와 괴리될 뿐 아니라 인생의 맛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수 있다.

경제학에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란 게 있다. 이는 소비자가 동일한 재화나 서비스를 추가로 소비할 때마다 얻는 만족도가 점점 줄어드는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필자가 경제학도가 되어 대학 첫 학기 경제학원론 과목에서 이 이론을 배울 때 고개를 갸웃거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경제학의 기본 전제 중 ‘인간의 욕망은 무한한데 자원은 유한하다’는 것과 충돌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다다익선이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나중에 사회생활을 하면서 심리학에도 이와 유사한 이론이 있음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심리학자 앨런 파르두치(Allen Parducci)는 큰 쾌락을 많이 경험하면 쾌락에 만족하는 기준선이 올라가 나중에는 똑같은 자극에도 감흥을 덜 느낀다는 범위 빈도이론(range-frequency-theory)을 주장했다. 돈 씀씀이에 거의 제약이 없는 재벌가 후손들이 마약에 손댔다는 뉴스를 간간이 접한다. 이들은 아무리 많은 돈을 써도 기대만큼의 쾌락을 느끼지 못함에 따라 일반인보다 무기력증이나 우울증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마음껏 즐거움을 누리자

네덜란드 역사가인 요한 하위징아(1872 ~1945년)는 인간을 ‘호모 루덴스’라 명명했다. ‘놀이하는 인간’ 또는 ‘유희(遊戲)하는 인간’이란 뜻이다. ‘생각하는 인간’이란 의미의 ‘호모 사피엔스’ 못지않게 유명한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놀이’와 ‘유희’의 공통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어사전에서는 ‘놀이’를 여러 사람이 모여서 즐겁게 노는 일 또는 그런 활동, 공기놀이와 같은 일정한 규칙 또는 방법에 따라 노는 일로 정의한다. ‘유희’는 즐겁게 놀며 장난함 또는 그런 행위로 정의한다. 두 단어에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것은 ‘즐거움’이다. 결국 ‘호모 루덴스’의 의미를 풀어보면 ‘즐거움을 추구하는 인간’이 된다. 즐거움을 마다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인간이 힘든 노동과 괴로운 삶을 견디는 것도 그 뒤에는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놀이를 통해 즐거움을 추구하고, 어떤 이는 일을 통해 즐거움을 느낀다. 전자는 전형적인 호모 루덴스이고, 후자는 워커홀릭 또는 덕업일치(德業一致)를 추구하는 자이다. 은퇴 이후에 어느 하나에 집중하는 것은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는 행위와 유사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은퇴 이후에 즐거움만 추구하는 시니어 호모 루덴스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에 걸려들 수 있고, 은퇴 이후에도 덕업일치를 주장하는 자는 인생의 묘미를 놓칠 수 있다. 시니어들이여! 은퇴 이후의 삶에도 워라밸이 필요함을 잊지 말고, 미리미리 준비하고 인생을 맘껏 누리자.

손성동 한국연금연구소장
건강소식 2025년 10월호 中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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