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수막 정비, 합의가 법을 대신할 수는 없다 영암열린신문 opennews@openmedia.co.kr |
| 2026년 10월 02일(금) 13:34 |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다수가 한 의견에 동의한다 해도 단 한 사람의 다른 의견을 침묵시킬 권리는 없다는 취지로 표현의 자유를 강조했다. 표현의 자유가 특별히 필요한 순간은 듣기 좋은 말이 오갈 때가 아니라 불편하고 거슬리는 말이 등장할 때다. 영암군이 현수막 정비 기준을 논의하며 꺼내 든 ‘과격한 표현’이라는 말이 가볍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불법현수막을 정비하고 철거 과정의 형평성 논란을 줄이는 일은 행정이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현수막의 설치 장소와 기간을 관리하는 것과, 그 안에 담긴 표현을 판단해 제한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영암군은 갈등조정 협의회의 주요 의제로 ‘과격한 표현이 담긴 현수막’을 제시했고, 담당자는 본지 취재에서 법적 구속요건은 이미 법령 등에 있다며 그 “법적 기준 외에” 협의할 부분을 별도의 가이드라인으로 마련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과격한 표현’이 법규상 정비 기준이 아니라는 데 있다. 현행 옥외광고물법은 표시할 수 없는 내용을 범죄행위 정당화·잔인한 표현, 음란·퇴폐, 청소년 보호 저해, 사행심 조장, 인종·성차별적 인권침해 우려, 다른 법령에서 금지한 광고 등으로 구체적으로 열거한다. ‘과격한 표현’이라는 별도의 범주는 없다. 관련 조례도 ‘비방’이나 ‘허위·혐오·비방’ 등 구체적인 용어를 사용할 뿐 ‘과격하다’는 기준을 두고 있지 않다.
물론 주민과 이해관계자들이 “이런 표현은 서로 자제하자”고 합의할 수는 있다. 그것은 사회적 약속의 영역이다. 그러나 그 합의를 근거로 현수막 게시를 막거나 이미 게시된 현수막을 철거하는 순간 이야기는 달라진다. 행정규제기본법은 규제를 법률에 근거해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규정하도록 하고, 법률에 근거하지 않은 규제로 국민의 권리를 제한할 수 없도록 한다. 주민 20명이 합의하든 200명이 합의하든, 합의가 행정에 새로운 기본권 제한 권한을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과격하다’는 말에는 객관적인 경계가 없다. 욕설이나 혐오표현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누군가는 정책을 강하게 비판하는 말이나 단체장을 실명으로 규탄하는 표현까지 과격하다고 받아들일 수 있다. 이런 평가가 실제 행정의 기준이 되면 주민은 어느 표현까지 허용되는지 예측하기 어렵고, 판단하는 공무원의 재량은 넓어진다. 옥외광고물법이 법 적용 과정에서 정치활동의 자유와 그 밖의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별도로 규정한 이유도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이미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방자치단체장을 비판한 현수막을 ‘특정 개인 또는 단체 비방’ 등을 이유로 불허한 사건에서 표현의 자유 침해라고 판단한 바 있다. 인권위는 해당 지자체에 게시 불허를 재검토하고 재발 방지교육을 하도록 권고했다. 조례에 명시된 ‘비방’이라는 개념조차 공직자에 대한 비판을 제한하는 데 함부로 넓혀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그렇다면 법규 어디에도 없는 ‘과격한 표현’은 더욱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
영암군에서도 현수막 내용을 놓고 행정의 ‘내부 판단’이 논란을 빚은 전례가 있다. 그런 상황에서 새 가이드라인은 기존 법규를 일관되고 투명하게 집행하는 장치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법에 없는 새로운 제한선을 긋는 수단으로 작동할 수도 있다. 군은 주민 의견을 협의회 안건과 불법광고물 정비 정책에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가이드라인’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실제로 어디까지 행정 판단의 근거로 쓰이느냐다.
현수막 철거를 둘러싼 갈등을 줄이려는 노력은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의견을 듣고 합의점을 찾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법이 허용한 표현의 경계를 협의회가 새로 그을 수는 없다. 가이드라인은 법의 집행을 더 투명하고 일관되게 만드는 데 쓰여야지, 법에 없는 표현 제한사유를 만드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주민 의견을 모으는 절차와 주민의 권리를 제한할 법적 권한은 끝까지 구분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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