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여 만에 첫 공청회…주민들 “입지선정 원천 무효”

송전선로 공청회, 남은 질문 ① 입지선정

한전 15차례 설명…주민 고지는?
군이 추천한 ‘주민대표’ 9명에
한전 “추천 세부 기준 없었다”
다른 시군 위원도 통과대역 결정
주민 자문은 정해진 범위에서만

선호성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2026년 10월 16일(금) 13:25
▲ 지난 7일 영암군청소년센터에서 345kV 신해남-신장성 송전선로 건설사업 공청회가 열렸다.

345kV 신해남-신장성 송전선로 건설에 반대해 온 영암 주민들이 지난 7일 공청회에서 입지선정 절차의 원점 재검토를 요구했다. 주민들이 사업을 제대로 알기도 전에 통과대역이 결정됐고, 주민이 선출하지 않은 인사들이 대표로 참여한 위원회의 결정을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영암군청소년센터에서 열린 이날 공청회는 지난해 9월부터 사업 철회를 요구해 온 주민들이 일방적인 설명 대신 직접 질문하고 의견을 밝히겠다며 요구한 자리였다. 현장에는 지역주민과 영암군·한전 관계자, 군의원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영암군의회에서는 이만진 의장과 정선희 부의장, 정운갑·김기천·심애란 의원이 자리를 함께했다.

주민 측은 사업의 필요성과 입지선정 과정, 환경영향평가, 주민 피해 문제 등을 제기하며 한전 관계자들에게 답변을 요구했다.

갈등의 출발은 주민들이 사업을 뒤늦게 알게 된 데 있었다. 한전은 지난해 6월 송전선로가 지날 넓은 범위인 ‘최적경과대역’을 선정했지만, 통과 예정지역 주민들에게 사업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그해 8월 말부터였다. 이후 주민 반대가 이어지는 가운데 12월 4일 구체적인 노선인 ‘최적경과지’까지 선정됐다.

주민들이 문제 삼은 것은 설명이 부족했다는 사실만이 아니었다. 자신들의 생활과 지역의 미래를 좌우할 결정이 이미 진행되는 동안 누가 주민을 대표했고, 어떤 권한으로 노선을 결정했느냐는 것이었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공청회에서 기존 입지선정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는 요구로 이어졌다.


통과대역 결정 뒤에야 알게 된 사업

주민들이 송전선로 건설사업을 뒤늦게 알게 된 경위는 이번 공청회에서도 핵심 쟁점으로 다뤄졌다.

권혁주 영암군대책위 집행위원장은 지난해 8월 말 한전 직원과 입지선정위원이 카페에서 나누던 대화를 한 주민이 우연히 듣고 사업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당시에는 이미 영암을 통과하는 최적경과대역이 결정된 뒤였다. 주민들은 자신들의 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칠 입지 결정이 진행되는 동안 사업에 관한 정보조차 제대로 전달받지 못했다며 반발해 왔다.

이러한 상황은 한전이 이후 마을 이장들을 만나 자문위원회 참여를 요청하는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덕진면 운암리 박상진 이장은 지난해 8월 면장실에서 한전 관계자를 만났을 때 송전선로 사업을 처음 알았다고 증언했다. 그는 사업 내용을 제대로 알기도 전에 자문위원회 참여와 수당 지급을 위한 계좌번호 제출을 요구받았다고 주장했다.

당시 업무를 담당했던 한전 이재득 차장도 이장들과 만난 사실을 인정했다. 그는 자문위원회 구성을 위해 사업을 설명하고 참여를 요청했다며, 당시가 이장들이 사업에 대해 처음 듣는 날이었다고 밝혔다. 다만 설명이 충분했는지를 놓고는 양측의 주장이 엇갈렸다.

그러나 한전은 이보다 훨씬 앞서 행정기관을 대상으로 설명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유성웅 차장은 과거 기록을 확인한 뒤 2023년 12월부터 2024년 11월까지 영암군청과 읍면 등을 대상으로 모두 15차례 사업을 설명했다고 말했다.

최초 방문일은 2023년 12월 8일로, 당시 영암군청 지역경제과 에너지산업팀장을 상대로 설명한 기록이 있다고 밝혔다. 주민들이 사업을 본격적으로 알기 약 1년 9개월 전부터 행정기관과의 접촉이 이뤄졌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영암군은 2024년 7월 한전의 요청에 따라 입지선정위원 9명을 추천했다. 하지만 이 사실은 일반 주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본지가 지난해 9월 12일 보도할 당시 천제영 영암군 에너지산업팀장은 “마을 대표들이 읍면 주민들에게 설명해야 하는데 그것이 빠진 것 같다”고 말했다. 한전이 사업을 설명하고 군이 주민대표 추천에 관여했지만, 그 정보가 실제 주민들에게 전달되는 과정에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한전의 설명·협의 실적과 주민들이 실제로 정보를 전달받은 상황의 차이는 지난해에도 문제가 됐다.

본지가 지난해 10월 확보한 한전 내부 보고서에는 영암지역에서 60회 이상 협의한 것으로 기록돼 있었다. 그러나 세부 내역에는 입지선정위원과 자문위원, 지자체 관계자 등을 대상으로 한 접촉이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한전은 최적경과대역 선정 이후 두 차례 주민설명회를 열려 했지만, 주민들은 이미 통과대역을 정해놓은 상태에서 설명회를 진행하는 것이 사업 추진 절차를 이어가는 것이라며 개최를 저지했다. 주민들은 입지 결정을 원점에서 재검토한 뒤 설명회를 열 것을 요구했다.

이번 공청회에서도 쟁점은 최적경과대역을 선정하기 전에 실제 주민들에게 사업을 알렸느냐는 것이었다. 주민들은 한전이 내세운 15차례 설명이 송전선로 통과 예정지역 주민들에게 전달됐는지, 입지 결정 전에 의견을 낼 기회가 있었는지를 따져 물었다. 공청회 주재자 역시 행정기관을 대상으로 한 설명과 주민을 대상으로 한 설명을 구분해 달라고 요청했다.

결국 한전이 행정기관과 관계자들을 상대로 사업을 설명했다는 사실만으로, 실제 영향을 받을 주민들이 입지 결정 전에 충분히 정보를 제공받고 의견을 낼 기회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문제가 남았다.

여기에 영암군의 책임도 연결된다. 사업 정보를 전달받고 주민대표까지 추천한 군이 주민들에게 이를 어떻게 알리고 의견을 확인했는지에 관한 문제다. 정철 영암군대책위원장은 지난해 9월 군 관계자에게 사업 인지 여부를 물었을 때 담당자들도 몰랐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주장하며 책임을 따져 물었다.

공청회 주재자는 이 같은 문제 제기에 대해 영암군 차원에서 초기 설명 경위를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 지난 7일 영암군청소년센터에서 열린 345kV 송전선로 공청회에서 주민 측 의견진술자로 나선 (왼쪽부터) 권혁주 영암군대책위 집행위원장, 김혜정 지속가능발전연구센터 대표,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변호사.


주민이 뽑지 않은 ‘주민대표’

주민들에게 사업을 알리고 의견을 듣는 절차가 제대로 이뤄졌느냐는 논란은 입지선정위원회에 참여한 주민대표의 정당성 문제로 이어졌다.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지 못한 사이 입지선정위원회에서는 지역 주민대표들이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암군이 추천한 초기 주민대표 9명은 이장단장과 마을 이장, 비상대책위원장 등으로 구성됐다. 그러나 주민들은 이들을 송전선로 입지 결정을 위한 대표로 선출하거나 권한을 위임한 적이 없다고 주장해 왔다.

이 문제는 지난해 9월 첫 보도 때부터 제기됐다. 당시 한국농업경영인 영암군연합회 김원근 회장은 주민들이 입지선정위원들에게 송전선로 건설에 관한 어떠한 권한도 위임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번 공청회에서 권혁주 영암군대책위 집행위원장도 주민대표 선정에 선출이나 동의 과정이 없었다고 거듭 지적했다. 주민을 대신해 지역의 중요한 결정을 내릴 사람을 정하면서, 정작 주민들에게 그 권한을 맡길 것인지 묻는 절차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전 유성웅 차장은 전원개발촉진법에 따라 지자체장이 주민대표를 추천하고 한전이 위촉하는 절차를 거쳤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자체 추천 주민대표에 대한 세부적인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이로 인해 대표성이 부족한 인물이 주민대표로 참여할 가능성도 있다고 인정했다.

주민들의 문제 제기는 누가 추천하고 위촉했느냐에 그치지 않았다. 주민의 선출이나 동의 없이 위촉된 인사가 참여했다는 이유로 그 결정을 주민 의견이 반영된 결과로 받아들여야 하느냐는 문제였다.

권 집행위원장은 대표 선정 과정부터 문제가 있었는데도 이를 주민들에게 받아들이라고 하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그는 이러한 절차적 결함을 근거로 기존 입지선정 결정이 “원초적 무효이고 새로 해야 된다”는 주민들의 입장을 밝혔다.

주민대표를 선정한 방식뿐 아니라 이들이 참여한 입지선정위원회의 의사결정 구조도 도마에 올랐다.

주민 측은 여러 시군의 위원들이 함께 투표해 송전선로 통과대역을 결정하는 방식에 문제를 제기했다. 각 지역 위원들이 자신의 지역을 피하는 안을 선택할 가능성이 있는 데다, 다른 지역의 지형과 주민 생활을 충분히 알기 어려운 만큼 실제 송전선로가 지나갈 지역 주민들의 의사가 표결 결과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한전 이재득 차장은 여러 지역 위원이 참여하면 자신의 지역을 벗어난 구간에 대해서는 오히려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며, 집단적인 의사결정이 전체 노선의 형평성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주민대표의 선정 방식과 입지 결정 과정 모두에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결국 주민들이 따져 물은 것은 주민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결정에 주민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됐느냐는 것이었다.

공청회 주재자는 주민대표의 추천·위촉 절차에 관한 한전의 답변을 들은 뒤,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대표를 선정했는지는 영암군이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고 요청했다.


정해진 통과대역 안에서만 가능했던 자문

주민대표의 정당성 문제는 이후 운영된 자문위원회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었느냐는 논쟁으로 이어졌다. 초기 입지선정 과정에서 주민 의견을 제대로 듣지 않았다면, 뒤에 마련한 자문 절차를 통해 그 결정을 되짚을 수 있었느냐는 것이다.

한전은 주민 의견을 더 반영하기 위해 자문위원회를 운영했다고 설명했다. 이재득 차장에 따르면 네 개 후보 경과대역 가운데 하나를 최적경과대역으로 선정한 뒤, 그 범위 안에서 구체적인 송전선로 경과지를 정하기 위해 마을 이장들의 의견을 들었다.

영암읍에서는 자문위원회가 구성돼 두 차례 회의를 진행했고, 금정면·덕진면·신북면에도 참여를 요청했지만 주민 반대 등의 이유로 운영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권혁주 집행위원장은 이러한 자문이 이미 정해진 통과 범위 안에서 철탑의 위치를 조정하는 데 그쳤다고 반박했다.

그는 주민들이 문제 삼는 것은 송전탑을 앞산에 세울지 뒷산에 세울지가 아니라, 주민 의사를 묻지 않은 채 해당 지역을 통과하도록 결정한 것 자체라고 강조했다. 이미 통과대역을 정한 뒤 그 안에서 위치를 조정하라는 자문으로는 주민들의 근본적인 요구를 반영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전 역시 자문위원회의 역할이 최적경과대역 안에서 구체적인 경과지를 결정하는 과정이었다고 설명했다. 주민들이 통과대역 자체를 다시 선택할 수 있는 절차와는 차이가 있었다.

정해진 범위 안에서 구체적인 노선을 정하는 과정에서도 주민의 생활 현황이 제대로 반영됐는지를 둘러싼 문제가 제기됐다.

금정면 주민 김노연 씨는 한전의 초기 자료에 자기 집이 빠져 있었다고 지적했다. 실제 주택이 있다는 사실조차 반영되지 않은 상태에서 경과대역이 결정됐고, 이후 피해지역 주민으로 통보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기초조사부터 문제가 있었던 만큼 해당 결정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주민들에게 사업을 알리는 과정부터 대표 선정, 통과대역 결정, 구체적인 경과지 조정에 이르기까지 주민의 의사와 생활 현황을 어떻게 반영했느냐는 문제가 공청회 내내 이어진 셈이다.

주민들이 요구한 것은 기존 결정을 전제로 설명을 더 듣는 자리가 아니었다. 주민대표 선정과 입지 결정의 정당성을 다시 따지고, 문제가 있었던 결정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수 있는 책임 있는 답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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