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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 민간인 학살 희생에 관한 자세한 얘기들을 좀체 찾아볼 수 없었다. 영암 민간인 희생사건 관련 결정문 안에 제법 세세한 당시 상황들이 기록돼 있었다. 보도자료로 어림짐작한 것보다 훨씬 참혹한 진실들을 마주하게 됐다. 적어도 결정문에 담긴 내용만큼은 전부 게재할 요량이다. 연재 내용은 결정문에서 발췌해 정리한 것이다.<편집자주>
삼호면 산호리 김재심 희생추정사건
신청인 김재회(당시 24세)는 여동생 김재심이 1950년 10월 18일(음력 9월 8일) 발생한 ‘솟대봉 사건’ 피해자라고 신청하였다. 또한 1차 신청인 조사 당시 같은 진술을 하였다.1)
그러나 2007년 피해자현황조사에는 김재심의 사망일이 ‘음력 10월 29일’이라고 기재돼 있어2) 확인해 본 결과 신청인 김재회는 “동생은 병이 있어서 다리를 쩔뚝거리고 다녔는데 경찰이 젊은 여자니까 붙잡았나 보다. 1950년 12월 9일(음력 11월 1일) 동생은 당시 경찰 주둔지 모가두와 500m 떨어진 용앙리 ‘샘건너마을’ 야지에서 사살되었다. 작은 아버지가 시신을 수습해 근처에 묻었으나 지금은 많이 변해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제사는 음력 10월 그믐에 내가 지내주고 있다”고 진술을 번복하였다.
참고인 ○○○(당시 17세)은 “진주 당시 군인이 김재심을 이유 없이 잡아가서 죽였다고 들었다”고 진술하였다.
산호리 주민 ○○○(당시 17세)는 “김재심은 군경한테 총살되었다고 들었다. 김재심은 야무졌는데 아마도 인민군점령기에 무슨 일을 했나 의심을 해서 잡아간 것 같다”고 진술하였다.
참고인 ○○○(여·당시 16세)은 “김재심이 머리 쓰는 데3) 다니다가 경찰한테 총살되었다고 들었다”고 진술하였다.
김재심의 제적부에는 ‘1952년 3월 7일 사망’으로 기재돼 있다.
조사결과 김재심의 시신이 수습되었고 인공 당시 부역행위를 의심받아 수복 후 군경에 의해 희생되었다는 점에서는 다수 참고인의 진술이 일치하였으나 김재심이 경찰에 연행되는 장면이나 사살되는 것을 목격한 사람이 없고, 가해주체에 대해서도 ‘군인’, ‘경찰’로 진술이 갈려 특정할 수 없었다. 따라서 김재심을 ‘추정’ 희생자로 분류하였다.
군서면 사건
영암군의 서쪽이라 해서 이름 붙여진 군서면은 월출산을 끼고 있으며 남쪽은 월출산과 학산면과 접하고 서쪽은 서호면, 북쪽은 영산강을 사이에 두고 도포면, 동쪽은 영암읍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1973년 이후 송평리가 영암읍으로 편재되면서 군서면은 현재 11개 리로 편재되어 있으나 한국 전쟁 당시 군서면은 12개 리였다. 한편 영산강 하구 둑을 축조하면서 늘어난 농토는 사건 당시에는 바다였다.4)
군서면의 대표적인 마을로는 월출산을 끼고 있는 동구림리, 서구림리, 도갑리를 합한 ‘구림마을’을 들 수 있다. 구림마을의 동쪽에 있는 월출산은 천황봉(808m), 구정봉(738m), 도갑산(375m) 등으로 이루어졌다. 월출산은 1947년 이후 월출산 유격대의 근거지가 되었고 1948년 14연대 반란군이 국군의 토벌작전으로 지리산으로 후퇴하면서 일부가 월출산 유격대에 합류하였다. 또한 1950년 9·28 서울 수복 이후에는 영암 이남, 즉 목포, 무안 등 타 지역의 인민군과 좌익들이 후퇴 또는 월출산 입산을 위해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구림마을은 일제강점기에 영암지역에서 3·1운동의 근거지가 되면서 많은 항일운동 인사들을 배출하였는데 이들은 점차 사회주의와 연계되었다. 해방 이후 ‘건국준비위원회’와 ‘인민위원회’에 참여하였던 구림마을 출신 인사들은 미군정에 의해 인민위원회가 해산되고 일부 인사가 구속되면서 좌파로 자리 잡게 된다.5)
이렇듯 좌익세가 강한 지역으로 각인된 구림지역에서는 한국전쟁 발발 이전부터 좌익혐의 또는 빨치산 협력 등 부역혐의로 경찰에 체포되거나 즉결처형되는 사건과 월출산을 근거지로 활동하는 빨치산에 의한 민간인 희생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양상은 한국전쟁 이후에도 반복되었다.
2010년 6월,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진실규명 결정을 내린 군서면 지역 희생자는 ‘영암 구림 첫포위사건’ 희생자 44명6) , ‘영암군 민간인 희생사건(1)’ 희생자 15명7) , ‘영암지역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사건’ 희생자 61명8) , ‘영암 국민보도연맹사건’ 희생자 5명9) , ‘광주·목포·순천·전주·군산형무소 재소자 희생사건’ 희생자 3명10) 등 모두 128명이다.
(한국전쟁 이전 사건) 서구림리 조수현·모정리 신현탁 희생사건
서구림리 서호정마을 조수현과 모정리 모정마을 신현탁은 경찰에 연행되어 1949년 3월 12일 모정리 모정마을 뒷산에서 사살되었다고 한다.
신현탁의 연행을 목격한 신현탁의 제수 문대임(여·당시 20세)은 “시숙63)이 친구와 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순경 2명이 와서 시숙을 끌고 나갔다. 그 모습을 보고 너무 무서워 벌벌 떨었다. 그날 밤에는 식구들 모두 어떻게 해 보질 못했다. 다음날 아침 양장리와 경계인 마을 뒷산에서 나는 총소리를 듣고 부근 주민들이 알려주었다. 남편과 시아버지와 함께 현장에 가보니 시숙과 위아래로 구림마을 청년이 죽어 있었는데 머리, 가슴 등에 총을 맞았는지 너무 많은 피를 흘린 채 죽어 있는 시숙의 시신을 보고 내가 그 자리에서 쓰러져버렸다”고 진술하였다.
신현탁의 사촌동생 신현소(당시 20세)는 “신현탁은 팔로군 출신으로 일제강점기에 만주에서 지뢰폭발 사고로 다리를 잃어 쇠로 다리를 만들어서 ‘쇠다리’라 불렸다. 경찰이 빨치산 사상을 가졌다고 해서 종형과 서구림 조수현을 총살하였다”고 진술하였다.
조수현의 동생 조남임(당시 10세)은 “형이 ‘비합법’ 일을 했다고 들었다. 형은 자수를 하고 집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경찰이 형과 모정마을 ‘쇠다리’를 모정에서 죽였다는 말을 듣고 어머니가 이웃 사람들을 불러 시신을 찾으러 갈 때 나도 따라나섰다. 전쟁 후에 설립되었다가 지금은 폐교가 된 학교 자리 부근에서 형의 시신을 수습하였다”고 진술하였다.
동구림리 참고인 ○○○(당시 22세)은 “조수현은 큰 활동을 하지 않았는데 한국전쟁 이전에 경찰에게 살해되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모정마을 신씨는 가짜 다리를 하고 다니던 사람인데 한국전쟁 이전에 경찰에게 죽었다고 들었다”고 진술하였다.
서구림리 참고인 ○○○(당시 22세)는 “조수현은 반란군과 연락을 했다는 이유로 경찰에게 사살되었다”고 진술하였고 모정리 참고인 ○○○(당시 22세)는 “신현탁은 장애가 있었어도 똘똘하고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었는데 좌익과 관련이 있었는지 경찰이 사상가라 해서 잡아갔다고 들었다”고 진술하였다. 이들의 제사일은 음력 2월 12일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조수현의 제적부에는 ‘1957년 3월 15일 사망’, 신현탁의 제적부에는 ‘1952년 10월 15일 사망’으로 기재돼 실제 사건발생일과 달랐다. 유족과 참고인들의 진술을 종합하면 신현탁과 조수현은 빨치산에 협조하였거나 좌익활동을 한 혐의로 경찰에게 연행되어 살해된 것으로 판단된다.
다음에 계속
1) 사건번호 다-7756호 신청서; 신청인 김재회 진술조서(2008.3.26); 김재심의 부친 김성춘은 1950년 10월 18일 사건 희생자로 진실규명 결정되었다. 진실화해위원회, ‘영암군 민간인 희생사건(1)’ 진실규명 결정(2008.12.30)
2)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진실화해위원회,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희생관련 피해자현황조사 개인별 피해자 신상카드 영암군 삼호면 편」, 2007.
3) 영암지역에서는 ‘좌익활동’을 ‘머리를 썼다’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있었다.
4) 영암군지편찬위원회, 영암군지상, 1998, 642~647쪽.
5) 정근식, 「한국전쟁 경험과 공동체적 기억 - 영암 구림권을 중심으로」 역사문화학회, 179~198쪽.
6) ‘영암 구림 첫포위사건’ (2007.11.20. 진실규명 결정)
7) ‘영암군 민간인 희생사건(1)’ (2008.12.30. 진실규명 결정)
8) ‘영암지역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사건’ (2008. 12. 30. 진실규명 결정)
9) ‘전라남도 국민보도연맹 사건 2 - 영광․무안․영암․장흥․진도군 -’ (2009.8.25. 진실규명 및 불능 결정)에서 영암지역 국민보도연맹 사건으로 10명의 희생자가 확인되었다.
10) ‘광주·목포·순천·전주·군산형무소 재소자 희생사건’(2010.5.11. 진실규명 및 불능 결정)에서 영암군 주민 4명이 희생자로 진실규명되었다.
이민정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2026.09.29(화) 07: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