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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 민간인 학살 희생에 관한 자세한 얘기들을 좀체 찾아볼 수 없었다. 영암 민간인 희생사건 관련 결정문 안에 제법 세세한 당시 상황들이 기록돼 있었다. 보도자료로 어림짐작한 것보다 훨씬 참혹한 진실들을 마주하게 됐다. 적어도 결정문에 담긴 내용만큼은 전부 게재할 요량이다. 연재 내용은 결정문에서 발췌해 정리한 것이다.<편집자주>
참고인들은 이날 ‘군경합동’ 토벌작전이라고 진술하였으나, 조사결과 출동한 부대의 소속은 알 수 없었다. 그 무렵 목포에 주둔하고 있던 해병대 제2대대가 영암지역에서 작전했음은 국방부, 한국전쟁사에 기록돼 있다.
“11월 7~8일: 목포에 주둔하고 있던 해병 제2대대 제6중대는 8일 22:00 영암에 도착하고, 곧 적의 본거지로 알려진 국사봉 가까이 방어진지 구축.
11월 10일~11일: 제6중대(장, 朴成哲 중위)는 상세한 적정파악과 부근의 주요도로 연변과 교차지점 등을 경계하면서 주력부대 도착에 대비하는 등 기초 작업에 전념.
11월 12일: 제5중대(장, 沈布學 중위)가 중대의 주력부대(제7중대 제외한 대대 주력)의 차량편 영암기동을 엄호. 대대주력은 국사봉 적 섬멸전을 벌임.
11월 13일: 국사봉 포위 공격을 계속, 적 주력은 이미 지리산과 화순 등지로 도피하였음. 영암읍내로 부대 철수 후 포로를 경찰에 인계하였음.1) ”
한편, 도갑산 포위작전과 관련하여 경찰자료인 「한국경찰대 적 동향 일일보고서」 영암경찰서가 보고한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1950년 11월 11일 오전 1시 경찰 2개 소대가 군서면 도갑사 부근에서 병력미상의 적과 교전하여 빨갱이 13명을 죽이고 엽총 1개, 탄약 상당량, 공비문서 몇 건을 노획하였다.”2)
이 기록에는 경찰이 군서면 도갑사 부근에서 1950년 11월 11일에 ‘빨갱이’와 교전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자료에 의하면 해병대는 11월 8일부터 13일까지 금정면 국사봉을 중심으로 토벌작전을 벌였고 경찰은 11월 11일 군서면 도갑사 부근에서 토벌작전을 벌이던 중 ‘빨갱이’와 교전이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참고인들은 1950년 11월 12일 도갑산 지역에서 군경 합동작전이 있었다고 진술하였는데 이날 교전은 없었고 희생자들은 마을에 남아 있던 주민들이었다고 진술했다.
따라서 도갑사 부근에서 11월 11일 ‘빨갱이’와 교전을 하였던 영암경찰은 11월 12일 도갑산 아래 도갑리 도갑사·죽정마을을 수색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제적부 확인 결과, 이만석의 경우 사망연도는 다르나 사망날짜가 10월 2일로 기재돼 있어 이 사건의 희생자 기일과 일치하였다.3) 박귀님의 경우 제적부와 족보 모두 가족관계는 기록돼 있으나 박귀님은 누락돼 있었다.4) 최덕례의 제적부에는 ‘1985년 8월 3일 사망’, 김여임은 ‘1951년 5월 10일 사망’, 최가웅은 ‘1953년 1월 20일 사망’으로 기재돼 있었다.
이 사건의 희생자로 확인된 진실규명대상자는 동구림 주민 최가웅, 도갑리 주민 이만석, 박귀님, 최덕례, 김여임 등 5명이다. 문규철이 이 사건의 희생자라는 참고인의 중복된 진술이 있었으나 유족과 제적부를 확인할 수 없어 ‘추정’ 희생자로 분류하였다.5)
다음에 계속
1) 국방부, 한국전쟁사4권, 1971, 184~191쪽.
2) 보고서 원문은 다음과 같다. “On 110100, Two Police Platoons killed thirteen(13) reds, captured one(1) Shot gun, considerable ammunition and some red documents in an engagement with enemy (strength unknown) around TOKABSA at KANSO MYON."(1950.12.3. 보고) 여기에서 KANSO MYON은 군서면을 가리킨다.
3) 참고인 이용우는 부친 이만석의 제사를 음력 10월 2일에 지내고 있다고 진술하였다. 참고인 이용우 통화보고서(2009.2.25)
4) 참고인 진술을 종합하면 박귀님(이명 박일례)은 박현기(도갑리 201번지 호주)의 장녀이고 1931년생으로 나주 반암면 정재혁과 결혼한 것으로 알려졌다. 참고인들의 진술을 토대로 군서면사무소에서 제적등본을 입수하였으나 박귀님은 기록돼 있지 않았다. 족보에도 역시 박귀님의 남편 정재혁은 박현기의 사위로 기록됐으나 박귀님에 대한 기록은 누락된 상태였다. 제적등본에서 누락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박귀님의 가족관계에 대해 중복된 참고인들의 진술이 있었고 이는 제적등본·족보 내용과 일치하여 박귀님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5) 문규철의 부친 문길상은 도갑사 부근 미륵암 스님으로 문길상·문규철 부자는 외지에서 들어왔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유족을 알 수 없었고 군서면사무소에 조사내용을 근거로 제적등본 발급을 요청하였으나 정확한 호주명을 알지 못해 검색되지 않았다. ‘영암사건 관련 제적등본 발급 협조 요청’(진실화해위 문서등록번호1680041-000242, 2009.2.24)
이민정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2026.09.29(화) 07: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