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영암 민간인 학살 희생에 관한 자세한 얘기들을 좀체 찾아볼 수 없었다. 영암 민간인 희생사건 관련 결정문 안에 제법 세세한 당시 상황들이 기록돼 있었다. 보도자료로 어림짐작한 것보다 훨씬 참혹한 진실들을 마주하게 됐다. 적어도 결정문에 담긴 내용만큼은 전부 게재할 요량이다. 연재 내용은 결정문에서 발췌해 정리한 것이다.<편집자주>
서구림리 강오연 희생사건
서구림리 서호정마을 강오연은 경찰에게 연행되어 1951년 2월 28일 영암면 ‘세실마을’에서 사살되었다고 한다.
강오연의 아들 조남임(당시 12세)은 “경찰 2명이 집으로 들이닥쳐 어머니를 신근정에 있는 지서로 연행해갔다. 이장 ○○○을 통해 밥을 갖고 오라고 해서 막내인 내가 지서로 밥을 날랐다. 연행된 다음날 저녁밥을 가지고 갔더니 영암경찰서로 넘어 갔다고 했다. 영암면 망호리 외가 형이 경찰서로 왔다 갔다 했는데 어느 날엔가 이미 어머니가 사살되었다고 했다. 외가에서 어떻게 소식을 듣고 영암면 세실마을에서 어머니의 시신을 수습할 때 보니 10여 구의 시신이 있었다고 했다. 어머니가 연행되던 날 아침 경찰이 가족을 마당으로 다 나오라고 했는데 그때 경찰이 누나를 희롱하려고 해 어머니가 욕을 했는데 그 일로 경찰이 어머니를 끌고 간 것 같다”고 진술하였다. 서구림 참고인 ○○○는 “강오연의 아들 조수현이 전쟁 전에 반란군과 연락했다고 하여 경찰에 죽었는데 그 모친도 전쟁이 난 뒤에 경찰에게 죽었다”고 진술하였다. 조수현은 1949년 3월 모정마을 뒷산에서 경찰에게 사살되었다.1) 강오연의 죽음이 아들 조수현(진실규명대상자)의 사망과 관련이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강오연의 제적부에는 “1958년 1월 22일 사망”이라고 기재돼 연도는 다르지만 날짜(음력)는 강오연의 기일과 일치하였다.2) 족보에는 “1951년 1월 13일 졸”로 기록돼 강오연의 추정 사망일(음력 1951년 1월 23일)과 10일 차이가 있으나 강오연이 이 무렵 사망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조사결과 강오연이 경찰에 연행되는 것을 아들 조남임이 목격하였고 이후 시신이 수습된 점, 강오연의 희생사실을 뒷받침하는 전문 참고인의 진술이 있고 제적부와 족보를 통해 다소 차이가 있으나 강오연의 제사일과 사망날짜를 확인할 수 있는 점 등으로 강오연이 군서지서로 연행된 이후 경찰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판단하였다.
도갑리 박찬일 희생사건
군서면 수복 당시 구림마을에서는 1950년 10월 17일 ‘구림첫포위 사건’과 1950년 11월 12일 ‘도갑산 사건‘ 등 경찰의 토벌작전 과정에서 주민 다수가 사망하게 되자 더 이상의 주민 희생을 막기 위해 마을유지가 앞장서 영암경찰서에 자수자를 선처하도록 주선하였고 주민 대다수가 영암경찰서에 가서 크건 작건 간에 인민군점령기 부역에 대해 자수를 하였다고 한다.3)
그러나 박찬일의 동생 박찬유·박경욱 형제가 늦게까지 자수를 하지 않고 월출산으로 몸을 숨기자 경찰은 1951년 3월 20일경 박찬일을 지서로 끌고 가 동생들의 행방에 대해 조사를 하던 중 박찬일을 살해하였다고 한다. 박찬일의 아들 박선준(1950년생)에 의하면 박찬일의 시신은 몇 년이 지난 뒤에야 현 구림초등학교 위 군서지서 자리에서 반지와 이빨 등으로 확인하여 수습되었고 제사일은 음력 2월 13일이다.4)
참고인 ○○○(당시 20세)은 “박찬일은 1951년 초에 동생 박찬유·박경욱의 행방과 관련 경찰의 문책을 받다 사망하였다. 박경욱이 부락 심부름을 하였는데 수복이 된 뒤에도 자수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찬유·박경욱은 박찬일 사망 이후 한두 달 뒤에 월출산에서 붙잡혀 즉결처형되었다”고 진술하였고 참고인 ○○(당시 21세)도 “박찬일은 사상에 열중한 사람은 아니었는데 동생 박경욱이 산에 가 있자 그것 때문에 경찰에 의해 지서로 연행되어 죽게 되었다”고 진술하였다. 참고인 ○○(당시 12세)은 ”박찬일의 3형제가 모두 한국전쟁 때 경찰한테 희생되었다”고 진술하였다.
박찬일의 제적부에는 “1960년 9월 9일 사망”으로 기재돼 있어 실제 사망일과 일치하지 않았다.
조사결과 이 사건은 경찰이 부역자의 행방을 알기 위해 가족인 박찬일을 군서지서로 연행하여 조사하던 중 적법절차 없이 살해한 사건으로 판단된다.
다음에 계속
1) 앞의 22쪽 ‘서구림리 조수현·모정리 신현탁 사건
2) 강오연의 아들 조남임은 강오연의 제사를 1월 22일에 지내고 있다고 진술하였다. 참고인 조남임 진술조서(2010.4.20)
3) 구림지 편찬위원회, 호남명촌 구림 2006, 362~368쪽.
4) 박찬일의 아들 박선준에 의하면 제사일은 박찬일이 집에서 나간 날을 기준으로 지내고 있다고 한다. 참고인 박선준 통화보고서(2008.5.15);
이민정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2026.09.29(화) 07: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