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나주 한전 본사 앞. 농기계 200대를 몰고 온 영암군민 250명이 2m 높이 송전탑 모형을 부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실제로는 50m 높이의 철탑이 마을을 관통한다는 계획을, 주민 대부분이 2년 가까이 몰랐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 에너지 정책 결정 과정의 심각한 문제를 드러낸다.
345kV 신해남-신장성 송전선로 건설사업은 2023년 4월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반영됐다. 이후 입지선정위원회가 4차례 열렸지만, 정작 주민들은 올해 8월 말에야 이 사실을 알게 됐다. 영암군의회 부의장조차 “며칠 전에야 알았다”고 할 정도다. 절차상 하자는 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민주적 행정인가.
주민들의 분노는 단순히 송전탑 자체에 대한 반대만은 아니다. 서울은 송전선로의 89.9%가 지중화된 반면, 왜 농촌에는 철탑만 세우려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동해안 280km 구간은 주민 동의를 얻어 지중화로 진행되고 있다.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증거다.
10년 전 귀농한 김노연 씨의 사례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한전 직원이 “집 팔 생각 없냐”고 물었다가 “농담”이라고 번복했다는 일화는, 주민들의 삶을 대하는 관료적 태도를 보여준다. 신북면의 경우 7개리가 송전선로에 관통된다.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는 생존권의 문제다.
물론 국가 전력망 확충이 필요없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방식이다. 왜 항상 인구가 적고 정치적 목소리가 작은 농촌이 희생되어야 하는가. ‘전원개발촉진법’이라는 1970년대식 접근법으로 21세기 에너지 전환 시대를 맞을 수 있는가.
영암군이 제시한 ‘지산지소형 에너지 분권’은 고려해볼 만하다. 전남에서 생산되는 재생에너지를 굳이 수도권까지 보내는 대신, RE100 산업단지를 생산지 인근에 조성하는 것이다. 지방소멸 위기 극복과 국토균형발전이라는 과제와도 맞닿아 있다.
한전의 소통 부재도 아쉽다. 국민 세금으로 적자를 메우는 공기업이라면, 더욱 투명하고 민주적인 의사결정이 필요하다. 영암군 역시 2년간 주민들의 알권리를 방치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밀양 송전탑 갈등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주민 동의 없는 일방적 사업 추진은 결국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된다. 10월 국정감사를 앞두고 주민들이 재집회를 예고한 상황이다. 갈등이 더 확산되기 전에 대화와 소통이 필요하다.
정부와 한전은 사업을 일단 중단하고 주민 의견을 제대로 수렴해야 한다. 지중화를 포함한 다양한 대안을 투명하게 검토하고, 그 과정을 주민과 공유해야 한다. 농촌을 더 이상 ‘전기 공급 통로’로만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로 인식하는 전환이 필요하다. 그것이 진정한 에너지 정의의 시작이다.
영암열린신문 opennews@openmedia.co.kr
2026.09.29(화) 03:4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