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다 정해놓고 무슨 설명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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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다 정해놓고 무슨 설명회냐
- 한전 송전선로 주민 설명회 무산 -

주민 50여명 집단 항의에 한전 측 설명회 무산 선언
“2년간 몰래 추진” 절차 문제 제기 vs “이미 결정”
대책위, 15일 대통령실 방문·23일 국감 압박 예고
  • 입력 : 2025. 10.17(금) 11:38
  • 선호성 기자

“이미 선까지 다 그어놓고 이제 와서 주민 설명회를 한다고요? 이게 설명회입니까, 통보입니까?”

14일 오전 10시, 한국전력공사(한전)가 주최한 ‘345kV 신해남-신장성 송전선로 건설사업’ 주민설명회장은 시작 전부터 주민들의 거센 항의로 가득 찼다. ‘송전탑 건설 반대 영암군대책위원회’(대책위) 소속 주민 50여 명은 “거짓말 하지 마십시오”, “도시에 지으십시오”를 외치며 설명회장에 진입했고, 결국 설명은 시작도 못한 채 1시간여 만에 무산됐다.


주민들 “백지화 없인 설명회 불가”

주민들의 분노가 폭발한 가장 큰 이유는 절차적 정당성 문제였다. 대책위 권혁주 집행위원장은 “2년 전에 했어야 할 설명회를 이미 다 정해놓고 이제 와서 하는 게 무슨 의미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다수 주민들은 이 사업을 9월 초에야 알게 됐다고 주장했다. 권 집행위원장은 “작년 5월부터 입지선정위원회가 진행됐지만 군민은 아무것도 몰랐다”며 “모든 추진 계획을 백지화한 다음에 설명회를 하겠다고 하면 그때 인정하겠다”고 못 박았다.

한 주민은 “송전선로가 지나가는 당사자 주민인데도 오늘 사업설명회를 진행하는 것조차 몰랐다”며 “먼저 타당성 있는 걸 이야기하고 선도 긋고 입지도 선정하는 것이지, 이건 다 해놓고 얘기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날 설명회는 서남권에서 생산된 신재생에너지를 경기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공급하기 위한 345kV 송전선로 건설 계획을 알리는 자리였다. 권 집행위원장은 “영암군에 고압 송전선로가 진행되면 약 20km 정도 되고, km당 20억씩 총 440억 원을 준다고 한다”며 “그럴 돈이 있으면 차라리 땅 파고 땅속으로 묻고 가라”고 비판했다.

10년 전 귀농했다는 한 주민은 “이미 송전탑과 풍력발전소가 집 옆을 지나가는데 이제 345kV 송전선로 2개가 더 지나간다”며 “도대체 얼마큼 더 희생해야 하느냐. 어디서 살란 말이냐”고 울분을 토했다.



“사업 철회 불가” 한전, 결국 퇴장

한전 오효근 입지선정부장은 “이 사업은 이미 결정된 사업으로 뒤로 갈 수는 없다”며 주민들의 백지화 요구를 거부했다.

오 부장은 “설명을 듣고 난 다음에 반대하셔도 된다”며 “하지만 이 자리에서까지 반대하신다면 들어보지도 못하고 몇몇 사람들의 호도에 넘어가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듣지도 않고 반대하면 그 피해는 오로지 여러분들한테 피해가 전가될 것”이라며 설명회를 들을 것을 거듭 요청했다.

하지만 권 집행위원장은 “당신들이 하는 주민설명회 우리 다 필요 없다. ‘여러분 보상해 줄 테니까 이대로 갑시다’ 그게 주민 설명회냐”며 맞받아쳤다.

양측이 팽팽하게 대치하던 중, 한 주민이 “345kV 송전선로가 두 개 다 지나간다. 1억을 주면 40년을 살 수 있습니까? 10억을 주면 살 수 있습니까?”라고 절규하자 현장 분위기는 더욱 격앙됐다.

결국 오 부장은 “여러분들의 방해로 설명회가 무산됐음을 알린다”고 선언하며 한전 관계자들과 함께 현장을 떠났다.



전국 연대 투쟁 선언…갈등 장기화

설명회 무산 후 밖으로 나온 주민들 앞에서 권 집행위원장은 “송전선로 철탑 건설 계획을 전면 백지화한 다음에 주민 설명회를 해라. 그리고 사업을 시작한다면 우리가 언제든지 이야기해 주겠다”고 밝혔다.

대책위는 15일 대통령실 앞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투쟁에 나설 계획이다. 권 집행위원장은 “내일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이 있고, 끝나고 국회에서 국회의원들이 주관하는 토론회가 있다”며 “이 문제와 관련해서 전국적으로 대책기구를 논의해서 막으려고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23일 한전 국정감사를 주요 고비로 보고 있다. 권 집행위원장은 “국정감사에서 한전에 대한 국정감사가 오전 10시에 있는데, 이거 관련해서 질의를 할 수 있도록 국회의원들 접촉 중”이라며 “이 사업이 정치권 차원에서 막아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책위는 또한 신북면사무소 앞에 천막 농성을 설치하는 등 지역 내 투쟁도 이어가기로 했다. 조광호 신북면 대책위원장은 “신북면은 7개 마을이 거의 남북으로 관통당한다”며 “철탑 건설이 철회될 때까지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고압 송전선로를 둘러싼 한전과 영암 주민들의 갈등은 장기화될 전망이다.

선호성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키워드 : 송전선로 | 영암군 | 주민설명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