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 빛이 닿지 않는 이름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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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빛이 닿지 않는 이름들 (1)
영암군 민간인 희생사건(2) #12
  • 입력 : 2025. 10.24(금) 12:13
  • 이민정 기자


영암 민간인 학살 희생에 관한 자세한 얘기들을 좀체 찾아볼 수 없었다. 영암 민간인 희생사건 관련 결정문 안에 제법 세세한 당시 상황들이 기록돼 있었다. 보도자료로 어림짐작한 것보다 훨씬 참혹한 진실들을 마주하게 됐다. 적어도 결정문에 담긴 내용만큼은 전부 게재할 요량이다. 연재 내용은 결정문에서 발췌해 정리한 것이다.<편집자주>



진실규명불능 사건 - 군서면 사건(도갑리 사건)

▲죽정마을 박찬유(1916년생)·박경욱(1924년생) 형제가 한국전쟁 전후의 시기에 군경에 의해 희생되었다고 진실규명 신청되었다.

참고인 ○○○(당시 20세)은 “박경욱은 경미하게 부락 심부름꾼을 했다. 수복이 된 뒤에 다들 자수를 했는데 늦게까지 자수를 하지 않고 월출산에 남아 있다 1951년 초에 붙잡혀 즉결처형을 당했다. 박경욱의 형 박찬유도 함께 처형되었다”고 진술하였다.

참고인 ○○(당시 21세)도 “박경욱은 경찰 진주 이후에 산에서 붙잡혀 죽었다고 들었다. 박찬유도 박경욱으로 인해 경찰에 의해 희생되었다”고 진술하였다.

박찬유·박경욱의 조카 ○○○(1950년생)은 “박찬유·박경욱 숙부는 부역을 했는데 공비토벌작전 때 도갑산에서 사망하였고 도갑산에서 시신을 수습했다고 들었다”고 진술하였다.

조사결과 박찬유·박경욱은 ‘붙잡혀’ 죽었다는 진술과 공비토벌작전 때 산에서 사망하였다는 진술이 엇갈려 이들의 죽음이 교전 중 발생하였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다. 따라서 이 사건은 진실규명불능으로 판단된다.


▲죽정마을 박찬표(1916년생)·박정수(1932년생)는 형제인데 ‘박찬표는 1950년 2월 15일에 도갑리에서 군경에 의해 희생’되었고 ‘박정수는 1951년 12월 11일에 군경에 의해 희생’되었다고 진실규명 신청되었다.

죽정마을 참고인 ○○○(1932년생)은 “장남 박찬표는 한국전쟁 전에 부역혐의로 경찰에게 죽었고 둘째 박희용은 전주형무소 수감 중 전쟁이 발발해 행방불명되었다.1) 형들의 일로 동생 박정수는 유가족이 되어 인민군 점령기에 심부름을 하였고 이 일로 경찰에게 찍혀 살해되었다”고 진술하였다.

죽정마을 참고인 ○○(1931년생)도 같은 취지로 “박찬표·박희용·박정수 삼형제 중 박희용은 전주형무소 수감 중 한국전쟁 발생 직후 사망하였고 박찬표·박정수는 경찰이 진주한 이후 지서로 연행되어 죽었다. 막내 박정수는 박희용의 일로 인공 때 유가족이라고 대우를 받았다. 수복이 되자 이번에는 경찰에 협조를 했는데 인공 때 부역한 일이 드러나서 죽게 되었다”라고 진술하였는데 박찬표가 경찰 진주 이후 사망하였다고 진술하여 박찬표가 한국전쟁 전에 사망하였다고 진술한 참고인 ○○○과 진술이 엇갈렸다.2)

박찬표의 아들 박후성(1950년생)에 의하면 박찬표의 시신은 수습되지 않았고 박정수의 시신수습 여부는 확인할 수 없었다.

박찬표·박정수 형제는 경찰에 의해 희생되었다는 진술이 있으나, 참고인들의 진술이 전문(傳聞) 수준에 그쳐 사망시기와 경위를 구체적으로 알 수 없었다. 또한 시신도 수습하지 못했다. 따라서 이 사건은 진실규명불능으로 판단된다.


▲도갑리 민시호·민춘호 형제는 한국전쟁 전후의 시기에 군경에 의해 희생되었다고 진실규명 신청되었다.

참고인 ○○○(1932년생)·○○(1931년생)에 의하면 이들 형제는 한국전쟁 발발 이전에 좌익 협조 혐의로 민시호가 먼저 경찰에 의해 희생되었고 동생 민춘호도 경찰에 의해 희생되었다고 한다. 이들 형제는 유족이 없어 신원을 파악할 수 없었고 참고인들의 진술이 전문(傳聞) 수준에 그쳐 사망경위를 구체적으로 알 수 없었다. 따라서 이들이 경찰의 불법적인 공권력 행사로 피해를 입었는지 여부도 확인할 수 없었다.

다음에 계속


1) 박희용은 ‘광주·목포·순천·전주·군산형무소 재소자 희생사건‘ 희생자로 진실규명 결정되었다. 진실화해위원회, ‘광주·목포·순천·전주·군산형무소 재소자 희생사건‘ 진실규명 결정(2010.5.25)
2) 참고인 ○○도 박찬표가 한국전쟁 발발하고 인공이 끝난 후에 사망하였다고 진술하였다. 참고인 ○○ 통화보고서(2010.5.5)
이민정 기자 opennews@open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