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 빛이 닿지 않는 이름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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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빛이 닿지 않는 이름들 (2)
영암군 민간인 희생사건(2) #12
  • 입력 : 2025. 10.31(금) 13:47
  • 이민정 기자


영암 민간인 학살 희생에 관한 자세한 얘기들을 좀체 찾아볼 수 없었다. 영암 민간인 희생사건 관련 결정문 안에 제법 세세한 당시 상황들이 기록돼 있었다. 보도자료로 어림짐작한 것보다 훨씬 참혹한 진실들을 마주하게 됐다. 적어도 결정문에 담긴 내용만큼은 전부 게재할 요량이다. 연재 내용은 결정문에서 발췌해 정리한 것이다.<편집자주>



진실규명불능 사건 - 군서면 사건(도갑리 사건)

▲죽정마을 박상노(1927년생)는 ‘1950년 10월 5일 군경에 의해 희생’되었다고 진실규명 신청되었다.

박상노의 희생경위에 대해 참고인 ○○(1940년생)과 ○○○(여·1931년생)는 박상노가 한국전쟁 발발 이전에 좌익혐의로 몰려 경찰에게 희생되었다고 진술하였는데 참고인 ○○○(1932년생)은 박상노가 “입산하여 행방불명”이라고 진술했고 ○○(1931년생)은 “한국전쟁 발발 이후 행방불명”되었다고 진술하였다.

조사결과 참고인 진술(전문)에도 박상노가 ‘경찰에게 희생되었다’는 진술과 ‘입산하여 행방불명되었다’는 진술이 엇갈렸다. 따라서 이 사건은 진실규명불능으로 판단된다.


▲죽정마을 최규택(당시 26세)은 ‘1949년 2월 15일에 군경에 의해 희생’되었다고 진실규명 신청되었다.

최규택은 1947년 3.1절 기념행사와 관련 군정 포고령 위반으로 목포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출소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1) 호남명촌 구림에서는 이 사건에 대해 “‘배바위’에서 있었던 3.1절 행사에서 경찰이 시위대에게 발포한 사건 이후 좌익 조직은 비합법 단체가 되어 지하로 숨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2) 최규택은 출소 이후에도 경찰의 주시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인 ○○○(당시 18세)은 “최규택은 부역자로 도피하던 중 한국전쟁 이전에 경찰에게 죽었다”고 진술하였고, 참고인 ○○(당시 19세)은 ”최규택은 좌익으로 알려졌는데 처가가 있는 미암면에서 미암지서 경찰에게 붙잡혀 죽었다고 들었다”고 진술하였다.

참고인 ○○○(당시 16세)는 ”한국전쟁 이전에 입산하여 활동하다 경찰의 토벌작전 때 당시 ‘트’라고 불렀는데 미암면 소재 굴에서 잡혀 사망하였다”고 진술하였다.

조사결과 최규택3)의 사망사실은 인정되나 ‘붙잡혀’ 죽었다는 진술과 입산하여 굴에 숨어 있다 공비토벌작전 때 사망하였다는 전문 참고인들의 진술이 엇갈려 최규택이 경찰에게 붙잡힌 뒤 적법절차 없이 살해된 것인지 공비토벌작전 또는 교전 상황에서 사망한 것인지 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다. 따라서 이 사건은 진실규명불능으로 판단된다.


▲평리마을 박율(1926년생·이명 박정상)은 한국전쟁 이전 시기에 군경에 의해 희생되었다고 진실규명 신청되었다.

평리 주민 ○○○(당시 22세)는 “1949년 음력 8월경 월출산 도갑사 부근에 군경 토벌작전이 있었는데 그때 박율 씨가 희생되었다”고 진술하였다.

참고인 ○○(당시 16세)은 “한국전쟁 이전에 박율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인데, 빨치산이 같이 가자고 끌고 가니까 월출산에 올라가서 도갑사 굴에 있다가 경찰에게 발각되어 총살되었다고 한다. 시신도 찾지 못했다”고 진술하였다.

박율의 딸 박찬임(당시 2세)은 “낮에는 경찰, 밤에는 다른 사람들이 오가던 틈에서 아버지가 행방불명되었다고 들었다. 그래서 제사는 임의의 날짜인 음력 7월 6일에 지내고 있다”고 진술하였다.

조사결과 박율이 월출산에서 토벌작전 중 사망하였다는 진술은 있었는데, 유족이 박율의 시신을 수습하지 못했고 제사도 사망일을 기준으로 지내지 않아 박율의 사망날짜와 구체적인 사망경위를 확인할 수 없었고 경찰의 불법적인 공권력 행사로 인해 피해를 입었는지 여부도 확인할 수 없어 진실규명불능으로 판단된다.

다음에 계속


1) 국가기록원에 의뢰하였으나 최규택 명의의 판결문을 찾을 수 없었다. 진실화해위원회, 「자료 검색 및 사본 요청」(1680058-000484, 2010.5.19)
2) 구림지 편찬위원회, 호남명촌 구림2006, 363쪽.
3) 최규택의 형 최규복은 인천형무소 수감 중 전쟁이 나자 행방불명되었다고 한다. 이 사건은 ‘전국형무소재소자사건’으로 분류되어 조사 중에 있다. 동생 최규환은 ‘영암군 민간인 희생사건(1)’의 희생자로 진실규명 결정되었다. 진실화해위원회, ‘영암군 민간인 희생사건(1)’ 진실규명 결정(2008.12.30)
이민정 기자 opennews@open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