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조각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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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군 민간인 희생사건(2) #13
  • 입력 : 2025. 11.14(금) 11:30
  • 이민정 기자


영암 민간인 학살 희생에 관한 자세한 얘기들을 좀체 찾아볼 수 없었다. 영암 민간인 희생사건 관련 결정문 안에 제법 세세한 당시 상황들이 기록돼 있었다. 보도자료로 어림짐작한 것보다 훨씬 참혹한 진실들을 마주하게 됐다. 적어도 결정문에 담긴 내용만큼은 전부 게재할 요량이다. 연재 내용은 결정문에서 발췌해 정리한 것이다.<편집자주>



진실규명불능 사건 - 삼호면 사건(산호리 배폰길 사건)

산호리 중촌마을 배폰길(1919년생)은 ‘동생 배폰담과 함께 1950년 10월 18일 ‘솟대봉’에서 군경에게 사살되었다’고 신청되었다.

신청인 배복남(배폰길의 아들·당시 2세)은 당시 나이가 어려 들은 이야기로 부친 배폰길이 숙부 배폰담과 함께 ‘솟대봉’에서 군경에게 희생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진술하였다. 이중 배폰담은 ‘솟대봉 사건’ 희생자로 진실규명 결정되었다. 같은 마을 참고인들은 배폰길의 여동생 배길애가 ‘솟대봉 사건’이 발생한 날 총상을 입자 배폰길은 여동생을 업고 목포에 치료하러 다녀온 뒤에 누군가에게 끌려가 죽었고 시신은 가족에 의해 수습되었다고 진술하였다.1)

하지만 배폰길을 끌고 가 살해한 가해주체에 대해서는 ‘군경’과 ‘지방좌익’으로 엇갈렸다.

참고인 ○○○(당시 17세)은 “목포 병원에 다녀온 뒤에 군경에게 끌려가 총살되었다고 들었다”고 진술하였고, 참고인 ○○○(당시 17세)와 ○○○(여·당시 16세)은 “배폰길이 목포에 가서 무슨 연락을 했다고 의심해서 좌익 쪽에서 데려가 죽였다고 들었다”고 진술하였다.

조사결과 배폰길이 솟대봉 사건 후 누군가에게 끌려가 살해된 것은 사실이나 가해주체에 대해 참고인의 진술이 엇갈리고 있는데 배폰길이 적대세력에 의해 희생되었다는 참고인 2인의 진술이 일치하여 이 사건은 적대세력에 의한 사건일 개연성이 높다. 그러나 참고인들의 진술이 전문에 그쳐 구체적인 사망경위를 확인할 수 없었다. 따라서 이 사건은 진실규명불능으로 판단된다.


(산호리 염재두 사건)

신청인 염재호(1969년생)에 의하면 삼포리 엄포마을 염재두(염재호의 백부·1924년생)는 전쟁이 발발하고 나서 1951년 1월 12일 경찰에게 연행된 후 행방불명되었다고 한다.

제사는 연행된 날인 음력 12월 5일에 지내고 있었다.

염재두의 처 김재심(여·당시 26세)은 한국전쟁 당시 남편 염재두가 경찰에 잡혀갔으나 시아버지가 면회를 가지 못하게 하고 시아버지만 면회를 다녀온 일은 있었다고 진술하였다.

삼포리 주민 ○○○(1930년생)는 “염재두는 전쟁 전부터 좌익활동으로 경찰에 쫓겨 다녔다. 경찰이 진주할 무렵 염재두는 집에서 지내지 못했는데 경찰에게 붙잡혀 죽었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진술하였다.

조사결과 염재두의 시신을 수습하지 못했고 참고인 ○○○ 전문 진술 외에 염재두의 연행경위나 연행사실을 목격한 참고인이 없어 염재두의 구제적인 사망경위를 파악할 수 없었다. 따라서 이 사건은 진실규명불능으로 판단된다.

다음에 계속


1) 신청인과 중촌 주민들에 의하면 배폰길의 처 강야모가 고령인데다 집안에 장애인과 중환자가 있어 오랫동안 고생한 탓에 심신이 지쳐 있다고 하였는데 여러 번 연락을 하였으나 연결이 되지 않았다.
이민정 기자 opennews@open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