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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 민간인 학살 희생에 관한 자세한 얘기들을 좀체 찾아볼 수 없었다. 영암 민간인 희생사건 관련 결정문 안에 제법 세세한 당시 상황들이 기록돼 있었다. 보도자료로 어림짐작한 것보다 훨씬 참혹한 진실들을 마주하게 됐다. 적어도 결정문에 담긴 내용만큼은 전부 게재할 요량이다. 연재 내용은 결정문에서 발췌해 정리한 것이다.<편집자주>
양○행, 신○사 희생 사건(2다-1129-42)
진실규명대상자 양○행(梁○行, 남, 60세, 농사), 양○행의 부인 신○사(辛○沙, 여, 59세, 가사)는 덕진면 노송리 170번지 노노동마을에서 거주하던 중, 1950. 10. 26.(음력 9. 16.), 덕진면 노송리 노노동마을에 들어온 경찰을 피해 마을 뒷산으로 피신하는 과정에서 경찰에게 총살되어 희생되었다.
신청인 정○금(양○행과 신○사의 손자며느리, 여, 1936년생)의 진술에 따르면,1) 양○행과 신○사는 1950. 10. 26.(음 9. 16.), 노노동마을에 들어온 경찰을 피해 마을 뒷산으로 피신하는 과정에서 경찰에게 총살되었다. 양○행과 신○사의 시신은 가족들에 의해 수습되어 노노동마을 뒷산에 매장되었다.2)
참고인 신○범(이웃, 1937년생)의 진술에 따르면, 양○행은 덕진초등학교 사친회장(師親會長) 등의 활동을 했고 사건 당일 부인 신○사와 함께 피난을 나갔다가 경찰에게 총살되었다. 그리고 사건 당일 마을 뒷산으로 피신하여 생존한 참고인 이○○(이웃, 여, 1929년생), 참고인 최○○(이웃, 남, 1936년생)은 양○행과 신○사가 경찰에게 총살된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제적등본에는 양○행이 ‘1950. 9. 16. 본적지(전남 영암군 덕진면 노송리 170번지)에서 사망’, 신○사는 ‘1951. 2. 5. 본적지에서 사망’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고, 양○행과 신○사의 제삿날은 음력 9. 14.이다. 이에 양○행과 신○사의 제삿날이 다른 희생자들의 제삿날과 하루 차이가 나지만 같은 사건으로 희생된 점, 제적등본에 양○행의 사망일이 사건 발생일의 음력 일자로 기재되어 있는 점을 근거로 양○행과 신○사의 희생일을 1950. 10. 26.(음력 9. 16.)로 판단하였다.
사건 당일 피신하여 생존한 참고인 이○○, 참고인 최○○, 참고인 신○범이 양○행과 신○사의 희생 경위를 인지하고 있는 점, 양○행과 신○사의 시신이 수습된 점, 제적등본에 양○행의 사망일이 사건 발생일의 음력 일자인 1950. 9. 16.로 기재되어 있는 점, 양○행과 신○사의 제삿날이 음력 9. 14.이긴 하나 다른 진실규명대상자들의 제삿날인 음력 9. 15.과 하루 차이인 점을 통해 볼 때, 진실규명대상자 양○행과 양○행의 부인 신○사는 1950. 10. 26.(음력 9. 16.), 덕진면 노송리 노노동마을에 들어온 경찰을 피해 노노동마을 뒷산으로 피신하는 과정에서 경찰에게 총살되어 희생되었다고 판단된다.
다음에 계속
1) 신청인 정○금은 진실규명대상자 양○행의 손자 양○○와 1965.경 혼인하였다.
2) 신청인 정○금 진술조서(2021. 12. 23.) 나중에 시신은 선산으로 이장되었다고 한다.
이민정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2026.09.28(월) 15: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