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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전, 영암군청 앞 광장으로 향하는 도로에 트랙터와 트럭 행렬이 이어졌다. 금정에서는 재를 넘었고, 신북에서는 4차선 국도를 달려왔다. 시종과 미암, 삼호에서 트랙터가 앞장서고 깃발을 꽂은 트럭이 뒤따랐다.
진눈깨비가 내리는 가운데 트랙터를 몰고 온 농민들의 얼굴은 붉었다. 추위 때문만은 아니었다. 마침 영암 5일장이 열리는 날이었다. 설 명절 음식을 준비하러 나온 군민들의 눈길이 연신 도로 쪽에 머물렀다.
트랙터 60여 대와 트럭 150여 대가 몰려왔지만, 군청 앞 광장 초입이 좁아 트랙터가 다 들어오지 못했다. 광장에 들어선 트랙터들은 광장을 에워싸듯 줄지어 섰다. 트랙터마다 ‘농민을 홀대하면 천벌 받는다’, ‘영암군 농업정책 갈아엎자’라고 적힌 현수막이 달려 있었다. 그 앞으로 200여 명의 농민들이 간이 의자에 앉았고, 무대 한쪽에는 상여 하나가 조용히 놓여 있었다. 마지막 퍼포먼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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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수라고 해도 안 됩니다”
대회가 시작되기 전, 사회를 맡은 정석기 사무국장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왔다. “영암군수, 안 됩니다. 민선 8기, 안 됩니다. 군의원 누구누구, 안 됩니다”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직선거법 적용 기간에 들어선 때문이다. 비판의 대상을 이름으로 부를 수 없는 집회. 참가 농민들 사이에서 “말하고 구속되도 됩니다!”라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규탄의 대상조차 특정할 수 없는 답답함이 광장을 감쌌다.
할 수 있는 구호는 두 가지뿐이었다. ‘영암군을 규탄한다’ ‘영암군의회를 규탄한다’ 정 사무국장은 “이 단어밖에 쓸 수 없는 부분은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달라”고 했다. 농민들은 묵묵히 펼침 현수막을 들어 올렸다.
“남태령에도 이렇게 많은 트랙터는 없었다”
규탄 발언대에 가장 먼저 오른 김봉식 쌀생산자협회 영암군지부장은 “어젯밤 잠을 못 잤다”고 운을 뗐다. 한 달간 매일 출근 시간에 맞춰 혼자 군청 앞에서 비판을 이어온 그였다. 광장을 가득 메운 트랙터를 바라보며 “남태령에도 이렇게 많은 트랙터는 없었던 것 같다”고 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감격이 묻어 있었다.
발언은 10분을 훌쩍 넘겼다. 농정대전환의 허실, 청렴도 4등급, 축제 편중 예산까지. 사회자 정석기 사무국장이 “한두 줄이면 정리가 될 것 같은데 한 10분은 해버린 것 같다”고 웃었지만, “마음에는 와닿게 잘해 주신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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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고향은 장흥입니다”
오전부터 내리던 진눈깨비가 어느새 비로 바뀌고 있었다. 농민들은 우비를 꺼내 입었지만 자리를 뜨지 않았다. 광장 한켠 천막에서는 여성농민들이 삶은 계란과 어묵을 내놓아 추위와 허기를 달래 주고 있었다.
가장 조용했던 발언이 가장 무거웠다. 청년 농민 변중업 씨가 단상에 올랐다. “저는 영암 사람이 아닙니다. 장흥에서 2018년에 귀농했습니다.” 밭농사가 좋아서, 처자식을 먹여 살려보겠다는 마음으로 영암에 왔다고 했다.
3억 대출로 시작한 농사. 땅을 사고 농기자재를 갖추면 남는 건 없었다. 매년 4~5천만 원씩 원금과 이자를 갚아야 한다. “그게 연봉입니다. 도시에서 잘 나가는 연봉을 빚 갚는 데 쏟아붓고, 나머지로 생활해야 합니다.” 작년에야 아내와 세 아이를 영암으로 데려왔다. 광주에서 두 집 살림을 하며 홀로 노지 농사를 짓던 시간이 그만큼 길었다.
“영암군 청년 창업농이 약 1,500명입니다. 10명 중 1명이 겨우 자리를 잡고, 나머지 9명은 도시로 돌아가야 하나, 파산 신청을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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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여가 군청을 향했다
대회의 마지막 순서는 상여 퍼포먼스였다. 비가 점점 굵어지고 있었다. 영암군의 농업정책이 농촌을 죽이고 있다는 뜻을 상여에 실은 것이다. 젊은 농민들이 상여를 어깨에 메고 군청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군청 철문 앞에서 발이 묶였다. 경찰이 방패로 길을 막았다.
규탄 발언에서 “송전선로 철탑은 우리가 막겠다”고 선언했던 정철 대책위원장이 앞으로 나섰다. “문 좀 열어주세요. 상여만 메고 한 바퀴만 돌고 오겠습니다.” 반복되는 요청에도 방패는 물러서지 않았다. “철문은 열었는데 방패로 막겠답니다. 건장하신 분들 앞으로 오세요.” 긴장이 고조됐다.
상여가 멈췄다. 경찰 병력이 대치하고 있는 군청 입구 바로 앞이었다. 트랙터 한 대가 천천히 다가왔다. 로더가 올라갔다. 상여는 단숨에 갈가리 부서졌다.
트랙터의 시동이 꺼진 광장은 금세 조용해졌다. 그러나 박종윤 회장의 마지막 말이 남아 있었다. “오늘 투쟁을 시작으로 기나긴 투쟁의 길을 걸어가겠습니다. 그 길에 함께해 주시겠습니까?”
광장을 빠져나가는 트랙터 행렬이 다시 읍면 방향으로 흩어졌다. 시동은 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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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호성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2026.09.28(월)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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