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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 민간인 학살 희생에 관한 자세한 얘기들을 좀체 찾아볼 수 없었다. 영암 민간인 희생사건 관련 결정문 안에 제법 세세한 당시 상황들이 기록돼 있었다. 보도자료로 어림짐작한 것보다 훨씬 참혹한 진실들을 마주하게 됐다. 적어도 결정문에 담긴 내용만큼은 전부 게재할 요량이다. 연재 내용은 결정문에서 발췌해 정리한 것이다.<편집자주>
박○현·임○자 부부 희생 사건
진실규명대상자 박○현과 임○자(박○현의 처)는 좌익 관련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1950. 9. 21.(음력 8. 10.) 용소리 집으로 찾아온 지방 좌익들에게 끌려가 마을 인근에서 죽창에 찔려 희생되었다. 가족이 시신을 수습하였고, 제삿날은 음력 8. 10.이다.
박○현과 임○자의 제적등본상 사망일은 1950. 9. 21.(음력 8. 10.)이고, 제삿날은 8. 10.로 제적등본상 사망일과 제삿날이 일치하였다.
박○현과 임○자가 희생당하기 6개월 전 두 사람의 아들 박○○1)가 학산지서에 끌려가 경찰에게 희생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박○○는 좌익 활동을 하는 본인의 처가 인척 때문에 좌익에 가담했다는 의심을 받은 것이다. 박○현은 아들 박○○가 학산지서 경찰에게 희생당하자 “우리 아들은 좌익도 아닌데 왜 경찰이 죽였냐, 진짜 좌익은 미암면에 있는데.”라는 말을 자주 하였고, 이 말로 인해 한국전쟁 발발 후 처 임○자와 함께 미암면에서 활동하던 좌익들에 의해 희생당했다. 가족들이 수습한 박○현과 임○자의 시신은 용소리 앞산에 매장되었다가 후일 선산으로 이장되었다.2)
사건 발생 당시 박○현과 임○자 부부와 같은 마을에 거주하였던 참고인 김○○(당시 10세)은 이름은 모르지만, 평소 안면이 있던 미암면 두억리 출신 좌익 10여 명이 학산면 용소리 끝자락에 있는 박○현의 집으로 들어가 박○현과 임○자를 끌어내 집 밖으로 끌고 가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진술하였다.3)
신청인과 참고인 진술, 제적등본상 사망일자 등을 통해 진실규명대상자 박○현과 임○자가 좌익가담 혐의로 경찰에 의해 희생된 아들의 죽음에 대해 토로하면서 좌익 관련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1950. 9. 21. 학산면 용소리 집으로 찾아온 좌익들에 의해 희생된 것으로 판단하였다.
곽○원 가족 희생 사건
진실규명대상자 곽○원, 곽○호(곽○원의 손자, 이명 곽○호), 김○례(곽○원의 손주며느리), 곽○수(곽○원의 증손자), 곽○채(곽○원의 증손자), 곽○규(곽○원의 증손자), 곽○철(곽○원의 증손자) 등 가족 7명4)은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공무원 가족이라는 이유 등으로 1950. 10. 18. 경 용소리 천해마을에서 지방 좌익에 의해 희생되었다.5)
곽○원 일가족이 모두 희생되어 제사를 지낼 유족이 없고, 신청인은 진외증조부 등 진외가 가족의 희생 사건이 발생한 정확한 일자를 특정하지 못했다. 신청인의 형인 참고인 배○○은 진외가6) 가족의 희생 시기를 10월 말로 기억하고 있다. 곽○원 가족의 제적등본상 사망일과 사망 장소는 ‘1950. 10. 18, 학산면 묵동리 209’ 이고, 『영암 피해자현황조사(2007)』에 기재된 희생 시기는 ‘10월경’이다. 제삿날과 진술을 통해 희생 일자를 특정할 수 없어 제적등본상 사망일을 희생일자로 판단하였다.
곽○원 집안은 학산면에서 상당히 부유한 편이었다. 곽○원의 손자 곽○호는 면사무소에 근무했던 것으로 추정되고,7) 외손녀 배○임8)의 남편 현○○는 경찰9)이었다.
곽○원 가족은 사건 발생 전 학산면 묵동리에서 거주하였다. 면사무소에 근무했던 곽○원의 손자 곽○호는 묵동리에서 살다가10) 면사무소로 출퇴근하기 멀어 용소리 천해마을로 이사하였고, 이때 곽○원 부부도 큰 손자 곽○호 가족과 함께 묵동리에서 천해마을로 이사하였다.
좌익들은 곽○호·김○례 부부, 부부의 아들 곽○수, 곽○채, 곽○규, 곽○철 등 6명을 집에서 죽인 뒤 집을 불태웠다. 시신은 불탄 곳에서 나온 뼈를 모아 합장하였다.11) 곽○원은 용소리 천해마을에서 묵동리 가는 방향의 궁막골에서 지방 좌익 옥 씨에게 희생되었다.
곽○원 가족이 묵동리에 거주할 때 같은 마을에 거주하였던 참고인 고○○(당시 13세)은 당시 좌익 옥 씨가 곽○원을 죽인 뒤 묵동리에 와서 “늙은이(당시 86세였던 곽○원)가 뼈다귀가 세서 그런지 칼날이 나가버렸다.”라고 하는 말을 아버지와 함께 들었다고 진술하였다. 역시 같은 마을에 거주하였던 참고인 고○○(당시 11세)는 “곽○호의 형 곽○호가 면사무소 호적(총무)계장을 했고 그 집이 아주 부자였는데 부자라는 이유로 좌익들이 죽였다” 라고 진술하였다.
참고인 배○○(당시 12세, 신청인 배○성의 형)은 곽○호의 이명이 곽○호라고 진술하였고12) 참고인 고○○는 곽○호의 형 이름을 ‘곽○호’로 기억하고 있다. 『영암 피해자현황조사(2007)』에 기재된 ‘곽○호 일가 희생 사건’ 의 희생자 이름, 연령, 거주지, 희생 시기 등으로 판단할 때 ‘곽○호’와 제적등본에 곽○호의 형으로 등재되어 있는 ‘곽○호’는 동일 인물이라고 추정된다. 동(同) 기록에 희생자 인적 사항이 ‘곽○호의 부모, 곽○호의 조부, 곽○호의 처’ 등으로 기재되어 있어 참고인 진술과 당시 거주지, 나이, 희생 시기와 장소 등을 통해 곽○원 일가족의 희생 사실을 확인하는 데 참조하였다.
다음에 계속
1) 신청인 박○업은 조부모인 박○현과 임○자의 희생 사건 뿐 아니라 부친 박○○의 희생 사건에 대해서도 진실규명 신청하였다. 박○○ 희생 사건은 현재 ‘영암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 사건’으로 분류되어 조사 중이다.
2) 신청인 박○업 진술조서(2021.10.27.) 신청인 박○업은 박○현의 손자로 사건 발생 당시 3세였다. 박○업은 조부모의 희생 사건에 대해서는 어머니로부터 전해 들었다. 신청인은 사건 당시 용소리 같은 마을에서 거주하던 큰아버지가 조부모의 시신을 수습했을 것이라고 진술하였다.
3) 참고인 김○○ 진술조서(2021.10.27.); 참고인 김○○은 박○현이 “우리 아들은 좌익활동하지 않았는데 왜 죽였냐, 진짜 빨갱이는 미암면 두억리에 사는 사람들 아니냐”는 말을 했다고 진술하였다. 또한 “박○○의 형 박○○는 마을 이장이었고, 박○○는 일본 유학을 하고 와서 면사무소에서 일하며…(중략)… 마을을 위해서 열심히 일했던 분......박○○의 처가 쪽에 좌익활동하는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이 박○○의 집에 오면 밥을 해주곤 했는데 그로 인해 좌익 쪽에 가담했다는 의심을 받고 경찰에 의해 학산지서로 끌려가서 총 개머리판에 맞아 희생당했다.”라고 진술하였다. 김○○은 진실규명대상자 박○현과 임○자의 아들 박○○의 시신 수습 장면을 목격하였다.
4) 신청인은 곽○원 가족 7명 외 곽○훈·이○진 부부, 곽○호·고○순 부부 등 4명도 함께 신청하였다. 곽○호·고○순 부부는 2마-2417-42에서 중복신청되었고, 조사 결과 ‘묵동리 고○환 가족 희생 사건’과 동일사건으로 판단하여 ‘묵동리 고○환 가족 희생 사건’으로 병합하였다. 곽○훈·이○진 부부(2마-44-2)도 조사 결과 ‘묵동리 고○환 가족 희생 사건’으로 병합하였다.
5) 신청인 배○성 진술조서(2021.11.19.). 사건 당시 6세였던 신청인은 진외증조부 곽○원 등 가족의 정확한 희생 시기를 모르고 일가족이 희생당하여 자손들이 없어서 제사도 지내지 않는다고 진술하였다.
6) 진외가(陳外家)는 아버지의 외가, 즉 할머니의 친정집이다.
7) 신청인 배○성 진술조서(2021.11.19.); 참고인 고○○ 진술조서(2022.3.4.); 참고인 고○○ 진술조서(2022.4.6.); 「학산면사무소 재직사실 및 경력사항 확인 협조 요청」, 진실화해위원회 조사2과-499, 2022. 4. 13.; 「영암군 재직사실 및 경력사항 확인결과 제출」, 총무과-8797, 2022. 4. 25. 신청인 배○성과 참고인 고○○, 고○○, 배○○은 곽○호가 면사무소에 근무했다고 진술했다. 영암군청에 곽○호의 재직 기록을 조회하였으나 기록을 찾지 못했다.
8) 곽○원의 외손녀 배○임은 2마-12405호 진실규명대상자로 1950. 10. 2. 남편 현○○가 경찰이라는 이유로 학산면 학계리 광암마을 제정골에서 좌익에게 희생되었다. 관련 내용은 본 보고서 ‘학산면 학계리 희생 사건’에서 정리하였다.
9) 신청인 배○성 진술조서(2021.11.19.); 「경찰 경력사항 확인 협조 요청」, 진실화해위원회 조사2과-500, 2022. 4. 13.; 「경찰 경력사항 확인 협조 요청 관련 회신」, 경무기획정보화장비과-8516, 2022. 4. 18. 곽○원의 외손녀 배○임의 남편 현○○가 1946.1.17.~1953.5.8. 영암경찰서, 독천분서 등지에서 경찰로 재직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현씨 집성촌인 학계리 출신 현○○ 집안은 곽○원 집안과 사돈 관계로 연결되어 곽○원 가족의 희생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10) 곽○호는 조부모인 곽○원 부부와 함께 용소리 천해마을에서 살았고, 곽○호의 부모인 곽○훈·이○진 부부는 묵동리에서 계속 거주하다가 아들인 곽○호·고○순 부부, 사돈인 고○환 가족 9명과 함께 희생된 것으로 판단된다. 관련 내용은 ‘묵동리 고○환 가족 희생 사건’에서 정리하였다.
11) 신청인 배○성 진술조서(2021.11.19.); 참고인 배○○ 진술조서(2022.6.28.) 참고인 배○○은 천해마을에 진외가(할머니 곽○○의 친정) 제일 웃어른(곽○원)이 살고 계셨고 곽○호(할머니의 조카, 곽○호라고 불림)가 면사무소에 근무했다고 알고 있으며, 학계리 광암마을로 시집간 고모(2마-12405호 진실규명대상자 배○임)가 경찰 가족이라는 이유로 먼저 희생되었고, 진외가 식구들이 희생되었다고 진술하였다. 배○○은 지방 좌익들이 진외가 식구를 죽이고 집도 불태웠고, 할머니 곽○○이 천해마을이 보이는 금계리 뒤쪽 밭에서 친정인 곽○원 집이 불타는 것을 목격했다고 진술하였다. 배○○의 부친은 배○○, 배○○의 모친이 곽○○이다. 제적등본에 곽○○의 부친은 곽○원(郭○元)이 아니라 ‘곽○빈(郭○彬)’으로 등재되어 있지만 제적등본 등 ‘곽○빈’과 관련된 다른 기록을 찾지 못했다. 족보에는 ‘곽○원’이 등재되어 있고, ‘곽○원’의 사위가 배씨라고 등재되어 있다. 이런 점 등을 고려할 때 곽○○의 제적등본에 부친으로 등재된 ‘곽○빈’은 ‘곽○원’의 오기로 판단된다.
12) 참고인 배○○ 진술조서(2022.6.28.); 족보에 곽○호는 ‘주호(○鎬), 戊午生’으로 등재되어 있다. 무오생은 1918년으로 곽○호가 태어난 해와 일치한다.
이민정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2026.09.28(월) 15: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