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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 민간인 학살 희생에 관한 자세한 얘기들을 좀체 찾아볼 수 없었다. 영암 민간인 희생사건 관련 결정문 안에 제법 세세한 당시 상황들이 기록돼 있었다. 보도자료로 어림짐작한 것보다 훨씬 참혹한 진실들을 마주하게 됐다. 적어도 결정문에 담긴 내용만큼은 전부 게재할 요량이다. 연재 내용은 결정문에서 발췌해 정리한 것이다.<편집자주>
박○안 가족 희생 사건
진실규명대상자 박○안, 장○례(박○안의 며느리), 박○환(박○안의 손자), 박○임(박○안의 손녀), 박○섭(박○안의 손자), 박○열(박○안의 손자), 박○자(박○안의 손녀) 등 가족 7명은 경찰 가족이라는 이유로 1950. 10. 31.(음 9. 21.) 독천리 영흥마을 장정산(현 동아보건대학교)에서 지방 좌익에 의해 희생되었다. 마을 주민들이 박○안 가족의 시신을 수습하였고, 제삿날은 음력 9. 20.이다.
박○안의 손자 박○○(朴○○)이 경찰이었기 때문에 가족들이 희생된 것으로 판단된다. 사건 당일 박○안의 손자 박○준(신청인, 당시 12세)은 마을 친구 윤○진과 함께 마을 앞에서 놀고 있다가 할아버지와 가족들이 끌려가는 모습을 목격했으며, 시신은 희생 장소에서 마을 주민들이 수습하였다.1)
박○준의 친구 윤○진(당시 12세)은 사건 당일 박○준의 집과 본인의 집 등을 빨치산이 둘러싸는 것을 목격하였다. 윤○진은 당시 빨치산이 둘러싼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진외가로 피신하였다.2)
박○안 가족의 희생 사실은 『6.25사변피살자명부』와 『영암 피해자현황조사(2007)』를 통해 확인된다. 『6.25사변피살자명부』에는 박○안이 1950. 2. 20.에, 박○환, 박○임, 박○섭, 박○자가 1950. 2. 8. 군서면에서 희생되었다고 기재되어 있다. 『영암 피해자현황조사(2007)』에는 ‘학산면 독천리 광산마을에서 경찰 가족이라는 이유로 박○안 일가족 7명이 1950년 음력 9월 20일(양력 10월 30일) 마을 뒷산 언덕 골(현재 동아 인재대학교 부지)에서 지방 좌익들에 의해 살해’당했다고 기재되어 있다.
박○안, 장○례, 박○임, 박○섭, 박○열, 박○자 등 6명의 제적등본상 사망일은 1951. 2. 4.이고, 박○환의 제적등본상 사망일자는 1957. 9. 17.이다.3) 『영암 피해자현황조사(2007)』에 기재된 희생 시기인 1950. 10. 30.와 제삿날인 음력 9. 20.을 토대로 희생시기를 1950. 10. 31.로 판단하였다.
다음에 계속
1) 신청인 박○준 전화 녹취(2022.3.24.); 신청인은 사건 당시 12세로 박○안의 손자이다. 신청인은 조사 당시 병원에 입원 중이었기 때문에 면담 조사를 할 수 없어 전화조사로 대신했다.
2)참고인 윤○진 진술조서(2021.12.21.); 참고인 윤○진은 학산면 독천리 ‘윤○수 가족 희생 사건(2마-1129-32호)’의 신청인이다. 윤○진은 본인의 가족과 ‘박○안 가족’이 같은 날 끌려갔지만 본인의 가족과 반대방향인 ‘질팽이’에서 희생당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신청인 박○준이 희생장소와 제사일, 희생자에 대해 명확하게 진술하였다고 판단하여 희생장소는 신청인의 진술에 따라 독천리 영흥마을 장정산으로 판단하였다.
3) 제적등본에 박○환의 사망일은 1957. 9. 17, 혼인신고일은 1957. 3. 31, 분가일은 1957. 6. 13.로 등재되어 있다. 그러나 박○환의 아들 박○○의 출생일이 1950. 1. 4.로 등재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박○환의 사망일, 혼인신고일, 분가일은 사건 발생 이후 늦게 신고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민정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2026.09.28(월) 15: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