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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 민간인 학살 희생에 관한 자세한 얘기들을 좀체 찾아볼 수 없었다. 영암 민간인 희생사건 관련 결정문 안에 제법 세세한 당시 상황들이 기록돼 있었다. 보도자료로 어림짐작한 것보다 훨씬 참혹한 진실들을 마주하게 됐다. 적어도 결정문에 담긴 내용만큼은 전부 게재할 요량이다. 연재 내용은 결정문에서 발췌해 정리한 것이다.<편집자주>
학산면 묵동리 희생 사건
묵동리 고○환 가족 희생 사건
진실규명대상자 고○환, 최○심(고○환의 처), 고○열(고○환의 아들), 고○재(고○환의 손자), 고○인(고○환의 아들), 고○순(고○환의 딸), 곽○호(고○환의 사위), 곽○○, 곽○○(곽○호와 고○순의 아들, 딸) 등 고○환 가족 9명과 고○환의 사돈인 곽○훈·이○진 부부1) 등 11명이 고○환의 아들 고○○2)이 경찰이어서 경찰 가족이라는 이유로 1950. 11. 4.(음 9. 25.) 묵동리 마을 앞산에서 지방 좌익에 의해 칼에 찔려 희생되었다. 마을 주민들이 한 구덩이에 묻혀 있는 이들의 시신을 수습하였고, 제삿날은 음력 9. 24.이다.
사건 당시 고○환 가족과 고○환의 사돈인 곽○훈·이○진 부부는 묵동리에 거주하였다. 이 사건이 발생하기 전 1950. 10. 18. 경 고○환의 사돈인 곽○원 가족 7명이 용소리에서 부유하고 공무원 가족이라는 이유 등으로 희생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3) 사건 당시 마을 주민들이 고○환의 손자인 고○○를 빼내어 ‘반공굴’에 숨겨 고○○가 살아남았고, 마을 주민들은 고○환 가족의 시신도 수습하였다.4)
사건 당시 묵동리에 거주하던 고○○(당시 13세, 남)은 고○환 가족 9명이 좌익들에게 끌려가는 모습을 목격하였다. 고○○은 당시 고○환의 딸 고○순이 아이 한 명은 업고 한 명은 손을 잡은 채 끌려갔으며, 고○순의 시부모인 곽○훈·이○진 부부도 고○환 가족과 함께 희생되었다고 진술하였다.
고○환 가족의 희생 사실은 『6.25사변피살자명부』와 『영암 피해자현황조사(2007)』를 통해 확인된다. 『6.25사변피살자명부』에는 고○환 가족이 ’1950. 10. 10, 학산면, 묵동리‘에서 희생되었다고 기재되어 있다. 『영암 피해자현황조사(2007)』에는 ’1950. 10월 경 학산면 묵동리 고○재 씨 일가족 6명’이 희생당했다고 기재되어 있다. 희생자 이름이 ‘고○환, 고○환의 처, 고○렬’이라고 되어 있는 등 희생자 인적 사항이 진실규명대상자 인적 사항과 다소 차이가 있지만 고○환 가족 희생 사실을 확인하는 데 참고하였다.5)
고○환 가족의 제삿날은 음력 9. 24.이고, 곽○훈·이○진 부부는 자녀들이 모두 희생되어 제사를 지내지 않아 제삿날을 확인할 수 없다. 고○환 가족의 제적등본상 사망일과 장소는 ‘1950. 10. 10. 학산면 묵동리 229’이고, 곽○훈·이○진 부부의 제적등본상 사망일과 장소는 ‘1950. 10. 18. 학산면 묵동리 209’이다. 사건 발생 전날 제사를 지낸다는 신청인의 진술에 따라 제삿날 다음날인 1950. 11. 4.(음 9. 25.)을 희생 시기로 판단하였다.
다음에 계속
1) 곽○훈·이○진 부부의 아들 곽○호가 고○환의 사위이다.
2) 고○○(高○○)은 1948. 11. 25.~1959. 4. 21. 전남 함평 등지에서 경찰로 재직하였다. 「경찰 경력사항 확인 협조요청」, 진실화해위원회 조사2과-500, 2022. 4. 13.; 「경찰 경력사항 확인 협조요청 관련 회신」, 경무기획정보화장비과-8516, 2022. 4. 18.
3) 관련 내용은 ‘학산면 용소리 곽○원 가족 희생 사건’에서 정리하였다.
4) 참고인 고○○ 진술조서(2022.4.6.); 고○○(1938년생)는 신청인(2마-2417-31) 고○학의 아버지다.
5) 진실화해위원회, 「영암군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피해자 명단」(별표), 앞의 책, 2007.
이민정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2026.09.28(월) 15: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