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월교회 35인의 마지막 노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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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월교회 35인의 마지막 노래 (2)
영암군 민간인 희생사건(4) #09
  • 입력 : 2026. 05.15(금) 10:34
  • 이민정 기자

위 이미지는 생성형 AI를 활용하여 제작되었습니다



영암 민간인 학살 희생에 관한 자세한 얘기들을 좀체 찾아볼 수 없었다. 영암 민간인 희생사건 관련 결정문 안에 제법 세세한 당시 상황들이 기록돼 있었다. 보도자료로 어림짐작한 것보다 훨씬 참혹한 진실들을 마주하게 됐다. 적어도 결정문에 담긴 내용만큼은 전부 게재할 요량이다. 연재 내용은 결정문에서 발췌해 정리한 것이다.<편집자주>



상월교회 교인 임○삼 가족 희생 사건

사건 당일 끌려가던 사람 중에는 진실규명대상자 임○삼의 아들 임○○, 임○삼의 손자 임○○도 있었다. 제일 끝에서 끌려가던 임○○은 자신의 손에 묶인 줄을 풀고 도망가 생존하였고, 임○○을 잡기 위해 빨치산들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임○○도 손에 묶인 줄을 풀고 임○○이 도망간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도망가 생존하였다. 임○○은 학산면과 강진면 성전면 경계에 있던 밤재를 넘어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가 군인 혹은 경찰에게 구조되었다고 한다.

임○○와 임○○은 사건 발생 이후 마을로 돌아왔다. 임○○가 마을 주민들과 함께 희생자들의 시신을 수습하였다. 시신 수습 당시 마을 주민들이 ”시신을 보면 못 살 것이다.“라고 만류하여 임○○은 흙으로 덮인 상태의 시신만 목격하였다. 희생자 중 임○삼의 며느리 김○순은 임신한 상태였는데, 태아와 함께 희생되었다.

임○○이 사건 발생 당일 밤 같은 마을 친구인 조 씨와 낯선 사람 한 명 등 두 명이 본인을 찾아왔고, 그 낯선 사람이 본인을 묶어 사람들이 끌려와 있던 곳으로 끌고 갔다고 진술한 점으로 보아 이 사건의 가해자 중에는 학산면에서 활동하던 지방 좌익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상월교회 교인 진○위 형제 희생 사건

진실규명대상자 진○위(이명 진○울), 진○랑(진○위의 동생, 이명 진○곱), 진○식(진○위의 동생) 형제1)는 앞서 살펴본 진실규명대상자 임○삼의 외손자이다. 진○위 형제의 아버지 진○○는 방위대장을 하였고 강진군으로 피신해 있었다. 그로 인해 진○○의 부인은 좌익들에 의해 학산분주소로 끌려가 남편의 행방을 말하라는 취조를 받기도 했다.2)

그러한 상황으로 인해 진○○의 부인과 아들들은 각각 강진군과 친척 집으로 피난을 갔다. 진○○의 부인과 어린 아들 2명은 강진군으로3), 진○위·진○랑·진○식 형제는 학산면 금계리 초안마을에 있는 이모네 집으로 피난을 갔다. 진○위·진○랑·진○식 형제는 피난 가 있는 이모네 집도 안전하지 않아 다시 집으로 돌아왔는데, 집에 가족이 아무도 없자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마을 앞 논에 숨어있다가 좌익들에게 발각되어 학산면 상월리 앞 하천으로 끌려가 희생되었다.4) 진○위 형제는 외조부인 임○삼 가족이 희생되고 하루 이틀 뒤 희생된 것으로 판단된다.5)

이후 강진군으로 피난 가 있던 진○위 형제의 아버지가 경찰과 함께 마을에 돌아와 한 구덩이 안에 있던 진○위 형제의 시신을 수습하였다.

진실규명대상자 임○삼의 바로 옆집에 살았던 참고인 이○○(당시 12세)는 진실규명대상자 임○상(임○삼의 손자)과 진○위(임○삼의 외손자)의 친구였는데, 진○위의 형제들과 외갓집 식구들이 모두 상월교회 교인들과 함께 희생되었다고 진술하였다.6)


상월교회 교인 윤○전 희생 사건

상월교회 집사였던 진실규명대상자 윤○전은 1950. 11. 6.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상월교회 교인들과 함께 함께 좌익에 의해 상월리 앞산으로 끌려가 죽창에 찔려 희생되었다. 윤○전의 시신은 희생된 장소에 매장되었다.

윤○전의 외손자인 신청인 박○재(당시 4세)는 당시 좌익들이 밤에 나타나서 ‘교회 안 다니면 죽이지 않겠다’라고 위협했지만 상월교회 교인들은 신앙심이 깊어 죽음을 택했다는 말을 아버지로부터 들었다고 진술하였다.


상월교회 교인 이○조 가족 희생 사건

진실규명대상자 이○조, 서○동(이○조의 처), 이○만(이○조의 아들), 이○현(이○조의 손자) 등 4명은 1950. 11.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좌익들에게 끌려가 상월리 앞 하천에서 희생되었다.

서○동과 이○만은 상월교회 순교자기념비에 기재된 희생자 35명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조 가족의 시신은 당시 인근에 살던 이○조의 딸이 수습하였다. 이○조의 외손자인 장○석(당시 10세)은 어머니와 함께 가서 외갓집 식구들의 시신을 목격하였는데, 대창이나 칼에 찔려 있어 피투성이 상태인 시신들이 많이 있었다고 진술하였다. 이○조 가족의 시신은 수습되었고, 희생 장소에 임시로 매장되었다가 나중에 이장되었다.7)

다음에 계속


1) 신청인 및 참고인은 모두 진○위를 진○울로, 진○랑은 진○곱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제적등본에는 진○위(陳○熨), 진○랑(陳○郞)으로 기재되어 있다.
2) 신청인 진○한 진술조서(2022.3.4.) 신청인 진○한은 어머니를 따라 학산분주소에 갔을 때 좌익들이 죽창 등을 들고 서 있던 기억이 난다고 진술하였다.
3) 신청인 진○한 진술조서(2022.3.4.) 신청인 진○한은 당시 강진으로 피난 갈 때 어린 동생을 어머니가 업고 있었는데, 곳곳에 빨치산들이 있어 위험한 순간이 있었지만 어린 동생이 울지 않아서 무사히 강진으로 갈 수 있었다고 진술하였다.
4) 신청인 진○한 진술조서(2022.3.4.); 참고인 임○○ 진술조서(2022.4.7.) 참고인 임○○은 학산면 상월리 유천마을 임씨 일가족과 진○○ 씨 아들이 희생되었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진술하였다. 임씨 일가족은 임○삼 가족을, 진○○ 씨 아들은 진○위, 진○랑, 진○식을 말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5) 신청인 진○한 진술조서(2022.3.4.); 참고인 김○문 진술조서(2021.12.23.) 신청인 진○한은 형인 진○위, 진○랑, 진○식은 외갓집 식구들(임○삼 가족)이 희생되고 하루 이틀 뒤에 희생되었을 것이라고 진술하였다. 참고인 김○문은 상월교회 교인들이 같은 날 희생된 것이 아니라 몇 차례에 걸쳐 희생되었다고 진술하였다.
6) 참고인 이○○ 진술조서(2021.12.22.) 참고인 이○○는 2마-1635-53의 신청인 배○심의 남편이다.
7) 신청인 장○석 진술조서(2022.2.17.); 신청인 장○석(당시 10세)은 당시 외갓집과 10분 거리에 살았고, 어머니(이○조의 딸)가 무서워서 혼자 가지 못하고 본인을 데리고 갔는데, 외할아버지 얼굴이 피투성이였고 시신도 많이 있어서 겨우 시신만 수습하여 대충 그 자리에 묻어 두었다가 나중에 이장했다고 진술하였다.
이민정 기자 opennews@open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