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녘에 묻힌 식구들

HOME > 기획특집 > 기획특집
들녘에 묻힌 식구들
영암군 민간인 희생사건(4) #10
  • 입력 : 2026. 05.22(금) 09:54
  • 이민정 기자

위 이미지는 생성형 AI를 활용하여 제작되었습니다



영암 민간인 학살 희생에 관한 자세한 얘기들을 좀체 찾아볼 수 없었다. 영암 민간인 희생사건 관련 결정문 안에 제법 세세한 당시 상황들이 기록돼 있었다. 보도자료로 어림짐작한 것보다 훨씬 참혹한 진실들을 마주하게 됐다. 적어도 결정문에 담긴 내용만큼은 전부 게재할 요량이다. 연재 내용은 결정문에서 발췌해 정리한 것이다.<편집자주>


사건조사 결과

희생자 수와 신원

진실화해위원회는 관련 기록과 신청인·참고인 진술을 종합적으로 검토·분석하여 진실규명대상자의 신원과 희생 여부를 확인하였다. 관련 기록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희생 관련 피해자 현황조사 용역사업 결과보고서』(1기 진실화해위원회), 「6·25사변 피살자명부」, 「6·25사변 피납치자 명부」, 「전국 순국 반공청년 운동자명부」, 등 한국전쟁 관련 명부와 진실규명대상자의 제적등본이다.

희생자 확인 기준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공적 기록인 「6·25사변 피살자명부」 등 희생자 명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희생 관련 피해자 현황조사 용역사업 결과보고서』(1기 진실화해위원회)에 희생 사실 관련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 경우 해당 진실규명대상자를 희생자로 확인하였다.

둘째, 공적 기록에서 진실규명대상자의 희생 관련 내용을 찾을 수 없는 경우 신청인과 참고인의 진술을 통해 확인하였다. 신청인 진술에 일관성, 객관성, 합리성이 있고, 참고인 진술이 이를 뒷받침하여 진실규명대상자의 희생 사실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희생자로 확인하였다.

셋째, 공적 기록에서 진실규명대상자의 희생 관련 내용을 찾을 수 없고 참고인을 확보하지 못한 경우 신청인 진술의 일관성·객관성·합리성 여부, 시신 수습 여부, 제삿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진실규명대상자의 희생 사실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희생자로 확인하였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이와 같이 관련 기록과 신청인·참고인 진술을 통해 조사한 결과 한국전쟁 전후 전남 영암군 학산면에서 적대세력에 의해 희생된 진실규명대상자 133명의 신원을 확인하였다.

관련 기록에 등재되었으면 인적사항, 희생 시기, 장소 등을 기재하였고, 등재되지 않은 경우 ‘-’로 표기하였다. 신청인과 참고인 진술 내용을 바탕으로 희생자의 시신 수습 여부, 제삿날을 기재하였고, 참고인의 이름과 전문 또는 목격 여부를 기재하였다. 확인 근거인 신청인과 참고인 진술과 희생자의 제적등본, 「6·25사변 피살자명부」 등 희생자 명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희생 관련 피해자 현황조사 용역사업 결과보고서』(1기 진실화해위원회) 등 기록이 다소 일치하지 않을 경우, 자료와 진술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판단하였다.


희생자의 특징

조사 결과 신원과 희생 사실이 확인된 진실규명대상자는 133명이다. 희생자 133명의 성별, 연령별, 직업별 분포는 다음과 같다.

본 조사 결과 확인된 희생자의 특징 중 주목할 만한 점은 10세 이하 희생자 비율이 가장 높고 50대, 60대 희생자도 적지 않다는 사실과 여성 피해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41%에 이른다는 사실이다. 가족 희생 사건이 다수 발생하여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희생되었기 때문이다. 본 조사 대상인 전남 영암군 학산면에서 발생한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 사건 89건 중 가족 희생 사건이 84건으로 전체 사건의 94%를 차지하고, 희생규모는 128명으로 전체 희생규모 133명 중 96%를 차지한다.

희생자의 직업별 분포를 보면 면사무소 직원, 전직 경찰, 이장도 포함되어 있으나 60%가 농업과 가사에 종사하였고, 15세 이하 아동이 차지하는 비율도 36%에 이른다. 즉 희생자는 대부분 농업과 가사에 종사하는 평범한 민간인이었다.


가해 주체와 희생 이유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에서 발생한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 사건의 가해 주체는 지방 좌익1)과 빨치산이다. 총 89건의 사건 중 대다수가 지방 좌익에 의해 발생했고, 이는 인민군 퇴각 이후 치안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영암 학산면 일대 지역의 실정 및 희생자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지방 좌익 활동시기인 1950년 10~11월에 집중되어 발생한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조사 결과 본 사건은 한국전쟁 발발 후 1950년 8월 초 좌익 선전에 반론을 제기했다는 이유로 용소리 천해마을에서 발생한 사건 1건 외에는 모두 10~11월에 발생하였다.

각 읍·면에서 활동하던 지방 좌익은 분주소원, 유격대원 등의 신분으로 활동하였는데, 가해 주체의 정확한 신분과 인적 사항은 확인하지 못하였다. 분주소원, 유격대원 등 여러 신분의 가해 주체가 함께 희생 사건에 관여하였고, 신청인과 참고인들이 당시 활동하던 지방 좌익의 신분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거나 진술을 꺼리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2)

한국전쟁 발발 전후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에서 적대세력에 의해 희생 사건이 발생한 이유는 복합적이다. 희생자들은 특정한 이유로 희생되었다기보다는 당시의 시대 상황과 희생자 및 가해자의 신분적 위치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작용하여 희생되었다. 희생 이유로는 경찰, 공무원, 대한청년단원 등 우익인사이거나 그 가족이라는 이유, 당시 마을에서 경제적으로 부유한 편에 속했다는 이유, 기독교인라는 이유 등을 꼽을 수 있는데, 이러한 각각의 이유가 혼재되어 희생 이유로 작용했다고 판단된다.

본 사건의 진실규명대상자들은 경찰 가족, 우익인사 및 그 가족, 기독교인이라는 이유 등으로 희생되었다. 공적 기록을 통해 가족 중 경찰이 있다고 확인되는 경우에는 경찰 가족으로 분류하였고, 경찰 가족이라는 이유로 일가족이 희생된 진실규명대상자가 65명으로 전체의 약 49%를 차지한다.

희생자 중 우익인사 및 그 가족이 약 23%를 차지한다. 신청인과 참고인은 진실규명대상자가 면사무소 직원, 군인 가족, 경찰 가족, 한청단원 및 그 가족이라는 이유로 희당되었다고 주장하나 공적 기록을 찾을 수 없는 경우 신청인과 참고인의 진술에 따라 우익인사 및 그 가족으로 분류하였다.

진실규명대상자들은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희생되기도 했다. 기록에 따르면 한국전쟁 발발 후 상월교회 교인 중 35명이 희생되었고, 진실화해위원회가 진실규명 신청사건을 조사한 결과 확인된 희생자는 16명이다. 그 외 경제적으로 부유하다는 이유로 일가족 18명이 희생되거나 좌익에 반론을 제기했다는 이유로 희생된 경우도 있다.


1) 당시 활동하던 지방 좌익이 여러 명 있었고, 그 후손 중 일부는 여전히 그 지역에 살고 있다는 진술을 확인하였다. 신청인 김○문 진술조서(2021.12.23.); 신청인 장○석 진술조서(2022.2.17.) 등
2) 신청인 김○진은 “상월리에서 못 살던 사람들이 인민군 들어오고 내 세상이라고 설치고 다녔다. 당시 인민군은 들어왔다가 금방 나가버리고 지방 출신 사람들이 학산 유격대, 리(里)단 유격대를 만들어 사람들 죽이고 다녔다. 김○○(머슴 출신)이 상월리 사람들을 거의 죽이고 다녔고, 김○○○보다 좀 더 높은 계급에 최○○이 있었고, 세포위원장이 있어서 그 사람이 지시만 하면 그 밑의 놈들이 사람들을 데려다가 죽였다.”라고 진술하였다. 참고인 김○○ 진술조서(2021.12.24.); 김○○은 『영암피해자현황조사(2007)』에 ‘1950. 12월 경 학산면 독천리에서 경찰에 의해 총살‘당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이민정 기자 opennews@open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