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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욕망을 내 꿈이라 착각하며 살아갈 때, 우리 마음은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무기력’이라는 문을 닫아걸곤 한다. 어머니의 대리만족을 위해 소진된 청년의 사례를 통해, 동반 의존의 굴레를 벗어나 사소한 자발성으로 삶의 생기를 회복하는 법을 살펴본다.
억압된 욕망의 반작용, 무기력이라는 이름의 침묵
군에서 막 제대한 스물네 살의 청년이 찾아왔다. 그는 아무것에도 의욕이 일지 않는다며 극심한 무기력감을 호소했다. 과거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는 “엄마가 나를 아빠 대신으로 생각했다”라는 말을 툭 내뱉었다. 그리고 자살하고 싶다는 말을 덧붙였다.
청년의 어머니는 결혼 2년 만에 남편에 대한 기대를 접고 아들의 미래에 모든 것을 걸었다. 성격이 온순한 그는 감히 반발할 생각은 꿈도 꾸지 못한 채 어머니에게 이끌려 열심히 공부만 했고, 마침내 어머니가 원하는 특목고에 진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청년에게 무기력이 시작된 것은 바로 그때부터였다. 앞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어도 자신에 대한 어머니의 대리 욕망은 그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에 마음이 늘 바위에 짓눌린 듯 답답했다.
‘엄마가 나를 아들로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엄마의 욕망을 채워줄 수 있는 대상으로 키우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자라나자 그는 차츰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졌다. 스스로 무언가를 찾아 해보려는 자발성이 마음에서 완전히 빠져나간 것이다. 교실에 앉아 있어도 늘 허공에 붕 떠 있는 듯했고, 타인과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듯한 분리감을 느꼈다. 욕망하는 것 없이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 되어가는 것, 그것은 꿈을 강요당하면서 오히려 자신의 진짜 꿈을 잃어버린 결과였다.
동반 의존의 함정, 통제와 조종이 남긴 공허
어머니에 대한 반항은 일탈로 이어졌고, 결국 어머니가 몸져 누우면서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난 어머니는 전과는 반대로 자식에게 어떤 관심도, 간섭도 하지 않은 채 극도의 허탈감에 빠져 지냈다. 집 안은 온통 침울한 정적으로 가득 찼다.
청년은 어머니가 기대를 접어 홀가분하다고 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깊은 배신감을 토로했다. “나를 지나치게 간섭하지 말라는 거지, 관심을 완전히 끊으라는 얘기가 아니잖아요.” 이는 어머니의 태도가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 식이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자신을 외면할 때 느꼈던 감정은 자유가 아니라 ‘버림받음’이었다.
이 모자가 겪는 고통의 핵심에는 ‘동반 의존(Codependency)’이 있다. 동반 의존이란 내면에 깊은 공허감을 가진 누군가가 그것을 채우기 위해 상대방에게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이 관계에서는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통제’와 ‘조종’을 사용하다가, 뜻대로 되지 않으면 ‘경멸’과 ‘애증’으로 변질된다. 어머니는 자식에게 걸었던 욕망을 정리하지 못해 텅 빈 생을 살고, 자식은 잃어버린 애정에 다시 무기력해져 인생을 맥없이 소진하고 있는 것이다.
사소한 자발성의 회복, 삶을 깨우는 버킷 리스트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에서 주인공이 자살을 결심한 이유는 거창한 비극이 아니라 바로 ‘허무’였다. 허무가 가슴에 내려앉으면 반복되는 일상과 노쇠, 질병 등 모든 것이 죽을 이유가 된다. 만약 지금 여러분이 오늘과 내일의 차이를 모르겠고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다면 거창한 목표가 아닌, 아주 사소한 ‘버킷 리스트’를 만들어보길 권한다.
목숨 걸고 노력해야 하는 일은 적지 말자. 돈 없이, 친구 없이, 큰 의미 없이도 할 수 있는 일들만 적어보는 것이다. 예전에 살던 동네 담장에 내가 해놓은 낙서가 아직 남아 있는지 확인하기, 터미널에서 가장 빨리 떠나는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보기 같은 일들 말이다.
이런 사소한 일들을 백 개쯤 적고 무작정 밖으로 나가보자. 그 일들을 하나씩 마쳐가다 보면, 어느 순간 살아서 꼭 해야만할 것 같은 다른 일이 불쑥 떠오를지도 모른다. 그러면 다시 그 일을 하면 된다. 그렇게 순간의 자발성을 따라 살다 보면, 먼 훗날 당신의 묘비에는 이렇게 적힐 것이다.
김영아 그림책심리성장연구소 소장
건강소식 2026년 05월호 中 발췌
영암열린신문 opennews@openmedia.co.kr
2026.09.28(월) 15: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