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성이 지운 문턱(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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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성이 지운 문턱(2)
영암군 민간인 희생사건(5) #01
  • 입력 : 2026. 06.05(금) 09:58
  • 이민정 기자

위 이미지는 생성형 AI를 활용하여 제작되었습니다



영암 민간인 학살 희생에 관한 자세한 얘기들을 좀체 찾아볼 수 없었다. 영암 민간인 희생사건 관련 결정문 안에 제법 세세한 당시 상황들이 기록돼 있었다. 보도자료로 어림짐작한 것보다 훨씬 참혹한 진실들을 마주하게 됐다. 적어도 결정문에 담긴 내용만큼은 전부 게재할 요량이다. 연재 내용은 결정문에서 발췌해 정리한 것이다.<편집자주>


진실규명대상자 송○영, 박○옥, 송○현, 신○임, 송○현, 송○현(2다-7330, 7331, 7332, 7333, 7334, 7335, 신청인 송○걸)

신청인 송○걸(1949년생, 송○영의 손자)의 진술에 따르면, 송○영 가족은 영암면 용흥리 143번지 탑동마을에 거주하였다. 1950. 10. 28.(음력 9. 18.) 아침, 영암경찰서 경찰이 탑동마을에 들어와 송○영의 집에 불을 지르고 가족들이 집에서 나오자 총살하였다. 이날 송○영의 가족 중 유일하게 생존한 사람은 송○영의 며느리 최○○과 손자 송○걸(신청인)로, 최○○은 그날 아침밥을 먹고 아들 송○걸을 데리고 같은 탑동마을에 있는 친정에 가 있어서 생존하였다. 경찰이 마을을 떠난 후에 최○○과 같은 마을에 살던 친척들이 송○영 등 9명의 시신을 수습하여 탑동마을 뒷산 골짜기에 매장하였다. 제삿날은 음력 9. 17.이다.

참고인 송○○(1945년생, 이웃)의 진술에 따르면, 탑동마을에 경찰이 와서 전날 밤에 빨치산이 왔다 갔는지, 빨치산을 도와줬는지 등을 마을주민에게 물어봤는데, 그 과정에서 경찰과 송○영 가족이 시비가 붙었고 송○영 가족이 경찰에 의해 희생되었다.

참고인 황○섭(1948년생, 이웃)의 진술에 따르면, 탑동마을에 살던 송○걸의 가족들이 경찰에 의해 희생되었고, 경찰이 송○걸의 집에 불을 질렀다.1)

송○영 가족이 거주했던 용흥리 탑동마을은 마을 뒤에 있는 월출산에 근거지를 둔 빨치산이 자주 내려오는 마을 중 하나였다. 그로 인해 경찰은 마을에 와서 주민들에게 빨치산에게 협조하였는지를 알아보고는 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송○영 가족이 희생된 것으로 보인다.

제적등본과 족보에 기재된 송○영 가족의 사망일은 다음과 같다.2) 족보에 기재된 경인(庚寅)은 1950년을 뜻한다.

1948년 형사사건부에 따르면, 송○현은 안녕질서에관한죄, 기부금품취체규칙위반, 포고2호, 법령19호위반 등으로 1948. 8. 10. 벌금 2만 원, 노역장 유치 100일을 받은 사실이 있다.3)

2007년 피해자현황조사에 ‘송○현, 남, 33, 영암읍 용흥리, 1950. 10. 8., 탑동마을 산야, 총살, 경찰’로 기재되어 있다.

이상의 내용을 검토한 결과, (1) 진실규명대상자들의 시신이 영암면 용흥리 탑동마을 자택 부근에서 수습된 점, (2) 진실규명대상자들의 시신을 수습한 어머니로부터 관련 내용을 전해 들은 신청인 송○걸의 진술이 구체적인 점, (3) 제삿날이 희생 전날인 음력 9. 17.인 점, (4) 족보에 기재된 사망일이 제삿날과 근접한 음력 9. 19. 또는 9. 20.인 점 등을 종합해 볼 때, 진실규명대상자 송○영, 박○옥, 송○현, 신○임, 송○현, 송○현 등 6명과 송○영의 손자 3명은 1950. 10. 28.(음력 9. 18.) 탑동마을 주민들이 빨치산에게 협조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마을에 온 경찰에 의해 영암면 용흥리 탑동마을에서 희생되었다고 판단된다.


진실규명대상자 송○록(2다-10198, 신청인 송○래)

진실규명대상자 송○록(宋○祿, 남, 1927년생, 농사)은 1950. 10. 30.(음력 9. 20.) 영암면 개신리 뒷산에서 경찰에 의해 희생되었다.

신청인 송○래(1950년생, 아들)의 진술에 따르면, 송○록은 영암면 용흥리 141번지 탑동마을에서 부모, 동생, 부인, 자녀들과 거주하였다. 탑동마을이 월출산 아래에 있고, 송○록의 아버지 송○○이 탑동마을 이장이었던 관계로 밤이면 빨치산이 송○록의 집에 자주 찾아와 먹을 것 등을 가져가곤 하였다. 그리고 낮에는 경찰이 와서 빨치산에게 왜 먹을 것을 주었냐며 빨치산과 관련 있는 것이 아니냐고 묻곤 하였는데, 그러던 중인 1950. 10. 어느 날 송○록의 동생 송○석이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이에 송○록은 자신이 가족을 대표하여 경찰서에 다녀오겠다고 경찰서에 갔다가 1950. 10. 30.(음력 9. 20.) 영암면 개신리 뒷산에서 경찰에게 총살되었다.

경찰서에 간 송○록이 돌아오지 않자 송○록의 아버지가 송○록의 소식을 알아보러 다니다가 개신리 뒷산에서 총소리가 많이 났다는 소문을 듣고 그곳으로 가서 송○록의 시신을 발견하였다. 송○록의 아버지 등 가족들이 송○록의 시신을 수습하여 탑동마을에 있는 선산 부근에 매장하였다. 송○록의 제삿날은 희생 전날인 음력 9. 19.이다.4)

참고인 송○○(1942년생, 친척)의 진술에 따르면, 1950. 10., 영암면 개신리 새박골 부근에서 송○록을 포함한 탑동마을 주민 십여 명이 희생되었다. 송○록의 시신은 가족들이 수습하였다.

참고인 송○○(1945년생, 이웃)의 진술에 따르면, 송○록의 집안은 한국전쟁 발발 이전부터 탑동마을 이장 일을 했는데, 좌익이 송○록에게 이런저런 일을 요구하였다. 송○록은 1950년에 희생되었고, 시신은 탑동마을에 매장되었다.

송○록의 사망일이 제적등본에는 ‘1970. 7. 5. 본적지에서 사망(1970. 12. 19. 신고)’으로, 족보에는 ‘1951. 7. 15. 졸(卒)’로 기재되어 있다.

이상의 내용을 검토한 결과 (1) 진실규명대상자 송○록의 시신이 영암면 개신리 뒷산에서 가족들에 의해 수습된 점, (2) 송○록의 제삿날이 희생 전날인 음력 9. 19.인 점, (3) 송○록의 시신을 수습한 할아버지 등 가족으로부터 관련 내용을 전해 들은 신청인의 진술이 구체적인 점, (4) 송○록이 경찰에 의해 희생되었고 이후 가족들이 송○록의 시신을 수습한 사실을 알고 있는 참고인들의 진술 등을 종합해 볼 때, 진실규명대상자 송○록은 빨치산에게 먹을 것을 주었다는 이유로 빨치산과 관련 있다고 의심받는 가족들을 대신해 영암경찰서에 갔다가 1950. 10. 30.(음력 9. 20.) 영암면 개신리 뒷산에서 경찰에게 희생되었다고 판단된다.

다음에 계속


1) 신청인 황○섭 진술조서(2022. 12. 14.) 황○섭은 2다-6872 사건의 신청인이다.
2) 제적등본의 사망신고일은 모두 1969. 5. 19.이다. 『여산송씨대동보(礪山宋氏大同譜)』券之6
3) 광주지방검찰청 장흥지청, 「형사사건부」, 1948.
4) 신청인 송○래 진술조서(2022. 9. 7.) 신청인 송○래는 아버지 송○록, 삼촌 송○석에 대해 진실규명신청서를 제출하였다. 송○석은 집을 나간 이후 행방불명되었는데, ‘6·25전쟁납북자명단’에 송○석이 등재되어 있어 별도 조사 중에 있다.
이민정 기자 opennews@open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