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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그러운 신록처럼 <건강소식> 독자 여러분의 가정에도 푸릇한 생기와 웃음이 만발하기를 기원합니다. 올 11월이면 제 아이도 화촉을 밝히게 됩니다. 자녀의 결혼을 앞두고 있고, 주변에서 날아드는 청첩장을 자주 마주하다 보니, 요즈음 제 삶의 궤도에 자연스레 ‘손주’라는 단어가 자주 맴돌곤 합니다. 그래서 이번 호에서는 황혼육아의 딜레마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제는 내 인생을 즐기고 싶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그의 저서에서 “자식과는 알게 모르게 이해관계가 얽혀 섭섭할 때도 있지만, 손주와는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어 온전하고 무한한 내리사랑이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그야말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맹목적인 사랑의 대상이 바로 손주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요즘 우리나라 시니어들에게 손주 돌보기는 마치 ‘계륵(鷄肋)’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듯 합니다. 예쁘고 사랑스럽지만, 내 한 몸 희생하며 돌보기에는 너무나 큰 부담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육체적으로 고단하기도 하거니와, 그 시간에 나의 꿀 같은 노후생활을 즐겨야 한다는, 이른바 ‘코호트 심리(세대 공통의 심리)’가 우리 안에 강하게 작동하고 있습니다. SNS나 공중파 방송 매체에서도 “황혼육아는 피하는 게 상책”이라며 이러한 회피 심리를 은연중에 부추기는 경향이 다분합니다.
얼마 전 참석한 시니어 모임에서도 이와 비슷한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70대에 막 접어든 한 지인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아휴, 손주 돌보는 게 얼마나 힘든데. 난 절대 못 해요. 내 인생 즐기고 놀 시간도 부족한 마당에 무슨 기저귀를 또 갈아.”
그러자 주변에 앉아 있던 많은 시니어가 깊이 공감하며 동조했습니다. 그 모습을 씁쓸하게 지켜보던 저는 조심스레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우리, 너무 이기적인 건 아닐까요? 나라에서는 연일 저출산이 제일 큰 문제라고 떠들고 우리도 걱정하면서, 막상 손주 돌보는 일에는 ‘나 몰라라’ 선을 그어버리면 과연 우리 자식들이 맘 편히 아이를 낳고 싶을까요?”
순간, 왁자지껄하던 모임 장소에 묘한 정적이 흘렀습니다. 저는 그때 깨달았습니다. 현역 시절 ‘워라밸’이라는 단어조차 모른 채 밤낮없이 일만 했고, IMF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등 숱한 위기를 온몸으로 버티며 이겨냈던 우리 세대!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어린 시절 배고픔에서 해방되고, 성인이 되어서는 취업걱정 없이 고도성장의 열매를 오롯이 누릴 수 있었다는 점에서 저는 감히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혜택받은 세대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은퇴 후 젊은 시절 못다 한 워라밸을 한꺼번에 다 누리려는 조급함 때문에 가장 이기적인 시니어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전 국민이 합심해 저출산 해소에 전력을 다해도 부족할 판입니다. 그런데 그 해결의 열쇠 중 하나를 쥐고 있는 시니어들의 태도가 이러하다면, 과연 이 국가적 위기가 해소될 수 있을까 하는 무거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손주라는 이름의 ‘인생 보너스’
반면, 전혀 다른 목소리도 분명 존재합니다. 최근 아들을 장가보낸 한 선배에게 슬쩍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선배님, 나중에 손주 생기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많이 보고 싶으실 텐데, 혹시 돌봐주실 마음도 있으신가요?”
선배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그럼!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핏줄인데, 맘껏 볼 수만 있다면 내 시간 쪼개서 얼마든지 돌봐줄 마음이 있지.”
이처럼 요즘 시니어 중에는 손주 돌보기와 확실히 선을 긋는 분들과, 내심 적극적으로 돕고 싶어 하는 분들로 나뉘는 것 같습니다. 후자의 경우, “왜 늙어서 사서 고생이냐”는 사회적 분위기와 왠지 내 노후가 힘들어질 것 같다는 의구심 때문에 선뜻 속마음을 꺼내지 못할 뿐입니다.
최근 한 맘카페와 SNS에서 화제가 되었던 60대 할머니의 글이 생각납니다.
“친구들은 늙어서 손주 보는 것만큼 미련한 짓이 없다고 날 말렸어. 내 청춘 다 바쳐 애들 키웠는데 이제 와서 또 육아냐고. 그런데 어제, 우리 꼬맹이가 고사리 같은 두 팔로 내 목을 와락 끌어안으며 ‘할머니,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라고 속삭이는데, 평생 날 괴롭히던 어깨 통증이 씻은 듯이 사라지더라. 이 벅찬 기쁨은 그 어떤 명품 가방이나 크루즈 여행과도 바꿀 수 없는 내 인생 최고의 선물이야.”
서양의 격언 중에는 “손주를 안아보는 것은 신이 노년에게 허락한 최고의 보너스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단순히 기저귀를 갈고 밥을 먹이는 육체노동을 넘어, 새로운 생명이 자라나는 과정을 지켜보며 얻는 영혼의 충만함이 그 안에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희생이 아니라 ‘함께 나누는 돌봄’
물론 시니어들의 무조건적인 희생만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에게도 여유롭게 ‘백세청춘’을 즐길 권리가 충분히 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 삶의 일부를 떼어 기꺼이 자녀들의 짐을 나누어지겠다는 넉넉한 마음, 그것이 바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 진정한 어른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번 주말에는 자녀들에게 먼저 다정하게 전화 한 통 걸어보면 어떨까요. “너희가 원한다면, 엄마 아빠가 언제든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마”라고 말입니다. 지난달 제가 말씀드렸던 ‘디지털 세상’이 우리의 반경을 넓혀주는 도구라면, 내 품 안에서 자라나는 손주의 온기는 우리의 굳은 마음을 녹이고 남은 생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아름다운 기적이 될 것입니다.
손성동 경영학 박사·백세청춘연구소장
건강소식 2026년 06월호 中 발췌
영암열린신문 opennews@openmedia.co.kr
2026.09.28(월) 15:17


















